[현장에서] 퇴직연금 2%대 수익률 ‘제자리’…기금형 전환 논쟁 본격화

박지수 기자 2026. 3. 27.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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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 운용 한계”…수익률 2%대 머물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관에서 '해외 사례를 통해 본 올바른 퇴직연금기금화 방향 토론회'가 열렸다.(박지수 기자 jsp@)

퇴직연금이 노후소득 보장의 축으로 자리 잡았지만, 낮은 수익률과 구조적 한계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특히 개인 책임 중심의 운용 구조와 분절된 시장 환경이 장기적으로 노후소득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기금형 전환' 논의가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해외 사례를 통해 본 올바른 퇴직연금기금화 방향 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박홍배, 남인순, 오기형, 모경종, 박희승 의원 주최로 열렸다.

지난 2월 6일 고용노동부와 노동계, 경영계가 모여 기금형 활성화와 퇴직급여 사외적립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노사정 공동선언 이후 실제 제도 설계와 입법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노사정 TF는 최근 퇴직연금 제도의 구조 개편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기금형 도입을 포함한 개선 방향에 합의한 바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학계와 정책, 노동·경영계 전문가들이 참여해 제도의 한계와 해외 사례, 도입 시 과제를 집중적으로 짚었다.

“자율·분절·고비용”…퇴직연금 구조적 한계 지적

서은숙 상명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교수(박지수 기자 jsp@)


서은숙 상명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한국 퇴직연금의 구조를 "자율·분절·고비용 구조"로 규정하며 문제의 출발점을 짚었다. 그는 "가입자에게 상품 선택과 운용을 맡기다 보니 원리금 보장형으로 쏠리고, 그 결과 장기 저수익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계좌가 분산되고 상품이 난립하면서 규모의 경제를 만들지 못하고, 복잡성과 사각지대가 확대되는 구조"라며 "이 같은 구조가 결국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제도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해법으로 자동가입, 저비용 디폴트, 수탁자 책임 강화를 제시하며 "개인 선택에 맡기는 구조에서 벗어나, 공적 표준을 통해 시장 실패를 교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익률 2%대”…기금형 전환 필요성 제기

정창률 단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박지수 기자 jsp@)


정창률 단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수익률 격차를 근거로 제도 전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퇴직연금 수익률은 2%대 초반인데, 국민연금은 5%대 후반"이라며 "같은 기간 두 배 이상의 격차가 나는 것은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또 "개인이 투자 결정을 하는 구조에서는 전문성이 부족해 원리금 보장형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며 "기금형은 전문가 운용을 통해 보다 효율적인 운용을 가능하게 하는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기금형은 계약형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지를 추가하는 것"이라며 "시장 방임과 과도한 통제 사이에서 한국 현실에 맞는 규제 수준을 찾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덧붙였다.

노동계 “사각지대 해소·연합형 기금 필요”

노동계는 기금형 도입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사각지대 해소와 연합형 기금 중심 설계를 강조했다.

류제강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사각지대 해소와 기여 구조 설계는 이제 구체적으로 논의할 단계"라며 "연금화를 강제하기보다 유도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석환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금융기관 중심 구조가 되면 노동자 이익이 훼손될 수 있다"며 "연합형 기금을 우선적으로 도입하고 정착시킬 입법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영계 “현장 수용성·인프라 구축 필요”

임영주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실장(박지수 기자 jsp@)


경영계는 제도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현장 수용성과 기반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임영주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실장은 "영세 사업장 비중이 높은 현실에서 제도 안착을 위해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며 "예산과 인력, 공시 체계 등 인프라가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제도 확대 초기에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가입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 “자율 한계…의무화·개편 추진”

정부는 현행 제도의 한계를 인정하며 제도 개편 의지를 분명히 했다. 남성욱 고용노동부 퇴직연금복지과장은 "자율에 맡겨서는 도입 확대에 한계가 있다"며 "단계적 의무화와 정부 지원 방안을 함께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기금형뿐 아니라 기존 계약형 제도도 정상화해 전체 퇴직연금 체계를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공공 “연금화·지배구조 설계가 핵심”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박지수 기자 jsp@)


전문가와 공공기관은 제도 설계의 핵심 과제로 '연금화'와 '지배구조'를 꼽았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퇴직연금의 목적은 자산이 아니라 노후소득"이라며 "연금 지급 구조를 포함하지 않으면 제도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그는 "운용과 지급이 단절되지 않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유진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대표는 "기금형은 만능 해법이 아니라 수단"이라며 "수익성과 안정성의 균형, 그리고 신뢰 확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미경 근로복지공단 퇴직연금국장은 "기금은 집합 운용인 만큼 투명성과 감독 체계가 핵심"이라며 "가입자가 수익과 비용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기금형 도입 넘어 ‘설계’가 핵심 쟁점으로”

퇴직연금 개편 논의는 이제 기금형 도입 여부를 넘어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의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퇴직연금을 단순한 금융상품이 아닌 노후소득 보장 제도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지만 실제 제도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는 적지 않은 변수들이 남아 있다. 자동가입 도입, 연금화 유도 방식, 지배구조 설계, 재정 지원 등 핵심 쟁점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 간 입장 차이가 뚜렷한 상황에서 성급한 제도 도입은 또 다른 '형식적 제도'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과거 퇴직연금이 낮은 수익률과 방치 구조 속에서 머물렀던 경험이 반복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시장과 공공의 역할을 어디까지 나눌 것인지, 가입자의 신뢰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 없이 추진된다면 기대와 달리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보다 신중한 제도 설계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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