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이 멈춘 자리에 문학이 흐르도록”…DMZ세계문학페스타 2026 개막

최재봉 기자 2026. 3. 27.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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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DMZ 캠프그리브스에서 막 올려
노벨상 수상작가 알렉시예비치 등 참가
28일 북페어에 문재인 전 대통령도 나와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벨라루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27일 오전 비무장지대(DMZ) 캠프그리브스에서 개막한 ‘DMZ세계문학페스타 2026’에서 기조 강연을 하고 있다. DMZ세계문학페스타 조직위원회 제공

“(2020년 이후)현재까지 약 2천명이 벨라루스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체포되어 수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체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나는 목소리를 찾고 있습니다. 목소리를 내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침묵 역시 나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무서운 존재입니다.”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벨라루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한반도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DMZ, 디엠제트)에 섰다. 27일 오전 캠프그리브스에서 개막한 ‘DMZ세계문학페스타 2026’ 기조 강연에 나선 알렉시예비치는 2020년 8월 벨라루스에서 대선 결과에 항의해 일어난 대규모 시위의 배경과 진행 과정을 설명하고, 자신이 수집한 시위 참가자들의 증언을 소개했다. 시위를 지켜보면서 “벨라루스 국민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동료 시민들의 저항의 목소리를 책으로 쓰기로 결심”했다는 그의 강연은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긴 ‘목소리 소설’ 장르의 힘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건강 악화로 개막식에 오지 못해 송경동 시인(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이 대독한 기조 강연에서 작가 황석영은 자신이 다섯살 나이에 아버지 등에 업혀 삼팔선을 넘던 기억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1988년 민족문학작가회의(한국작가회의의 지난 이름)가 남북 작가회담을 제안했으나 좌절한 데 이어, 1989년 3월 그 자신이 북한의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초청을 받아 북한을 방문했던 일, 체포와 투옥 우려 때문에 곧바로 귀국하지 못하고 독일 베를린에 머무르며 직접 목격한 그해 11월의 베를린 장벽 붕괴, 그리고 2005년 7월 평양에서 분단 뒤 60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 작가회담을 열었던 과정을 되짚은 뒤, 그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반도 핵 위기의 연원과 해법을 제시했다.

그는 “한반도의 핵 위기는 1991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고 남북에 대한 미·일·중·러 나라들의 교체 승인이 실현되지 않은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시작되었다”며 “비핵화와 북·미 수교를 맞바꾸면 되는 단순명료한 문제”가 미국과 일본의 대북 수교 연기로 꼬였다고 비판했다. “현대 세계사에 아무런 죄를 지은 적 없는 민족이 75년 동안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분단을 강요받고 있다”고 지적한 그는 그럼에도 희망 섞인 전망으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우리는 평화로 나아가는 몇개의 계단을 쌓아 올렸고 이제 마지막 계단을 만들었습니다. 바로 저 앞의 문을 열면 밝은 빛이 보일 것입니다!”

27일 오전 비무장지대(DMZ) 캠프그리브스에서 열린 ‘DMZ세계문학페스타 2026’ 개막식에서 공동조직위원장인 도종환 시인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DMZ세계문학페스타 조직위원회 제공

기조 강연에 앞서 이번 행사를 주최한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김대순 부지사가 대독한 개회사에서 “DMZ를 ‘평화·문화·생명’의 상징 공간으로 확장하고, 총성이 멈춘 자리에 문학과 예술, 담론이 이어지는 구조적 기반을 차근차근 강화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도종환 공동조직위원장도 개회사에서 “전 세계 작가들의 이 만남을 통해 전 지구적 전쟁과 내전, 분쟁에 대한 세계 작가들의 문학적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를 만들고자 한다. 올해를 시작으로 전 세계 작가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매년 평화의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고 소개했다.

27일 오전 비무장지대(DMZ) 캠프그리브스에서 열린 ‘DMZ세계문학페스타 2026’ 개막식에서 공동조직위원장인 독일·인도계 영국 작가 프리야 바실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DMZ세계문학페스타 조직위원회 제공

오전 개막식에 이어 점심을 먹고 캠프그리브스 일대를 둘러본 작가들은 오후에는 ‘분단’과 ‘평화’ 세션으로 나누어 발표와 토론을 이어 갔다. 특히 전쟁의 여파가 이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에서 극적으로 합류한 아흘람 브샤라트와 시에라리온 소년병 출신 작가 이스마엘 베아 등이 발표자로 나선다.

이튿날인 28일은 파주출판도시 지혜의 숲으로 장소를 옮겨 행사를 이어 간다. 오전 세션에서는 ‘민주주의’를 주제로 사르지 라케스타(필리핀)와 주킬레 자마(남아공), 그리고 소설가 김홍 등이 발표와 토론을 벌이고, 오후에는 ‘디아스포라’와 ‘마이너리티’를 주제로 한 세션이 동시에 열린다. 마리아 로사 로호(아르헨티나), 제인 정 트렌카(북미·한국), 김수우, 박금산 등이 디아스포라 세션에 참가하고, 프리야 바실(독일·영국), 호시노 도모유키(일본), 최진영 등이 마이너리티 세션에 참가한다. 두 세션과 별개로 전국 70개 동네 책방이 생명·평화·공존의 메시지를 담은 책을 모아 선보이는 북페어 ‘사이에서’도 마련된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28일 자신이 운영하는 평산책방 1일 책방지기로 나와 작가들을 격려하고 독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또 이날 오후에는 알렉시예비치와 소설가 정지아가 소설가 정보라의 사회로 ‘침묵의 땅에서 생명의 언어로’를 주제로 평화 대담을 나눈다.

작가들은 마지막 날인 29일 오전에는 DMZ 평화 투어와 북페어 참여 등을 거쳐 폐막식과 환송 리셉션을 끝으로 올해 행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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