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와 면역계의 은밀한 대화[김우재의 플라이룸](74)

뇌는 오랫동안 면역계로부터 격리된 성역으로 여겨졌다. 혈뇌장벽이라는 물리적 방어선 뒤에 숨어 면역세포들의 침입을 원천봉쇄하는 요새. 그 개념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지만, 뇌와 면역계는 서로 완전히 격리된 2개의 독립 왕국이 아니었다. 오히려 끊임없이 신호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상태를 점검하고, 때로는 서로를 파괴하기도 하는 복잡한 짝패로 진화했다. 그리고 이 관계가 무너질 때,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이 찾아온다는 증거가 쌓이고 있다.
뇌는 고독하지 않았다
면역학 교과서를 처음 펼쳤을 때, 뇌가 ‘면역 특권 기관’이라는 표현을 배웠다. 마치 외교관처럼 면역계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받는 특별한 지위. 하지만 이는 절반의 진실이었다. 뇌 안에는 이미 소교세포와 성상세포라는 이름의 면역 감시자들이 상주하고 있고, 이들은 신경세포와 긴밀하게 소통하며 뇌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맡는다. 문제는 이 감시자들이 만성적으로 활성화되면,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파괴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이야기가 뇌 안에서만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장에서 분비된 사이토카인이 혈액을 타고 뇌로 흘러 들어가고, 뇌에서 만들어진 염증 신호가 근육을 망가뜨리고 장의 면역 환경을 뒤흔든다.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 환자들이 왜 소화기 문제, 체중 감소, 근육 약화 같은 비신경학적 증상을 보이는지는, 뇌를 격리된 장소가 아니라 면역계와 연결된 짝패라는 관점에서 볼 때 비로소 설명된다. 신경퇴행성 질환은 뇌만의 문제가 아니라 몸 전체의 문제였던 셈이다. 과학자들은 이 현상을 ‘신경면역 상호작용’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 분야는 지금 전 세계 신경과학계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 중 하나가 됐다.
종종 이런 거대한 분야의 전환이 이루어질 때, 역설적으로 단순한 생물이 가장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인간의 뇌와 면역계는 너무나 복잡해서 하나의 신호 경로를 망가뜨리면 다른 수십개의 경로가 대신 나타난다. 이 ‘면역 중복’의 미로 속에서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은 극도로 어렵다. 그런데 초파리는 다르다.
초파리가 가진 단순함의 힘
초파리의 면역계는 포유류와 달리 적응면역이 없다. 항체도 없고, T세포도 없고, 학습하는 면역 기억도 없다. 오직 선천면역(innate immunity)만 있다. 처음 이 사실을 접한 사람들은 초파리가 면역 연구에 뭔 도움이 되냐고 묻는다. 하지만 바로 그 단순함이 초파리를 강력한 도구로 만든다. 복잡한 적응면역이 없으니, 선천면역 신호 경로 하나를 망가뜨렸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훨씬 선명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11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선천면역의 활성화 메커니즘을 밝힌 쥘 호프만, 브루스 보이틀러 그리고 수지상세포를 발견한 랄프 스타인만에게 돌아갔다. 호프만의 업적은 초파리에서 나왔다. 1996년 그의 연구실이 발표한 Cell 논문은 초파리의 Toll 수용체가 곰팡이 감염에 대한 선천면역의 핵심 스위치임을 증명했고, 보이틀러는 포유류의 TLR4가 세균 내독소를 인식한다는 것을 밝혀 이 연결고리를 완성했다. 초파리에서 시작된 Toll 경로의 발견이 인간 면역학의 근간을 바꾼 것이다.
초파리의 면역계는 크게 세 가지 축으로 이뤄진다. 뇌 안의 신경교세포(glial cell), 혈림프를 순환하는 혈구세포(hemocyte), 그리고 지방체(fat body)가 그들이다. 이 세 체계는 끊임없이 신호를 주고받으며 몸 전체의 면역 반응을 조율한다. 놀랍게도 이 구조는 인간의 뇌-면역-간 축과 구조적으로 놀라운 유사성을 가진다. 초파리의 지방체는 인간의 간과 지방조직에 해당하고, 혈구세포는 대식세포와 기능적으로 동일하며, 신경교세포는 소교세포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신호 경로도 보존돼 있다. 인간의 NF-κB가 초파리에서는 Relish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고, 인간의 IL-6 사이토카인은 초파리에서 Unpaired 3라는 분자로 대응된다. JAK/STAT 경로도, MAPK 경로도, JNK 경로도 모두 초파리에서 동일하게 작동한다. 이것은 단순한 유사성이 아니다. 수억년의 진화를 거쳐서도 이 경로들이 보존돼 있다는 것은, 이것들이 생명에게 근본적으로 중요하다는 뜻이다.

최근 초파리 연구들은 신경면역 크로스토크의 인과관계를 직접 증명하기 시작했다. 초파리 뇌에서 알츠하이머의 주범인 Aβ42 단백질을 발현시키면, 뇌에서 만들어진 Upd3 사이토카인이 혈액을 타고 골격근으로 이동해 미토콘드리아 기능 장애를 일으킨다. 뇌의 병리가 어떻게 몸 전체의 쇠약으로 이어지는지, 분자 수준에서 처음 증명된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장-뇌 축이다. pirk 유전자를 잃은 초파리는 장의 NF-κB 신호가 과활성화되고 만성 장염이 생기면서, 단백질 응집체 같은 고전적 원인 없이도 뇌에 병변이 생기고 운동 능력이 떨어진다. 이 파리들을 무균 환경에서 키우면 신경학적 증상이 상당 부분 구제된다는 사실은, 장내 미생물이 신경퇴행의 핵심 변수임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단순함에서 복잡함으로, 초파리에서 인간으로
물론 초파리 연구가 인간 의학으로 직접 연결되지는 않는다. 초파리에는 적응면역이 없고, 신경교세포의 다양성도 포유류에 비해 훨씬 단순하다. 약물의 흡수, 분포, 대사도 다르다. 이 한계를 무시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정직하지 않다. 그러나 초파리 연구의 가치는 임상적 예측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과관계의 확립에 있다. 포유류 모델에서는 하나의 경로를 조작하면 수십개의 보상 경로가 활성화돼 무엇이 진짜 원인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초파리는 그 인과의 실타래를 선명하게 잘라낼 수 있는 모델이다.
가끔 초파리 연구자로서 이 작은 생물에게 묘한 감사함을 느낀다. 초파리는 우리에게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볼 수 있는 시각을 훈련시킨다. 신경계와 면역계의 상호작용이라는 복잡다단한 문제도, 초파리라는 렌즈를 통해 보면 그 핵심적인 원리가 훨씬 선명하게 드러난다. Upd3가 JAK/STAT를 활성화하고, Relish가 항세균펩타이드를 만들고, Draper가 죽은 신경세포를 청소하는 이 단순한 회로들이, 사실은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서 일어나는 것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과정이라는 사실에서, 진화는 한번 좋은 것을 만들면 버리지 않는다는 통찰을 발견할 수 있다.
뇌와 면역계가 단순히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근본적으로 조형하며, 그 관계의 파탄이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그 밝혀지는 자리마다 2㎜짜리 초파리가 있다. 수조원의 예산이 거대한 AI와 장비에 투입되고 있지만, 가장 큰 질문의 답이 가장 작은 생물에 숨어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과학자인 나를 설레게 한다.
김우재 낯선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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