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끝인가”···‘고문기술자’ 이근안이 남긴 불편한 질문[설명할경향]

지난 25일 이근안 전 경감(88)이 사망했습니다. 그는 군사정권 시절 악랄한 고문 수사를 자행해 ‘고문기술자’란 악명이 붙은 인물입니다. 국가폭력을 상징했던 한 개인의 죽음. 그의 사망으로 ‘어둠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시대를 누린 ‘이름 없는 고문기술자’
이근안이란 이름은 1985년 김근태 당시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의장 측이 고문 경찰들을 고발하고 이를 언론이 추적하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그전까진 고발장에도 ‘이름 모를 전기고문 기술자’라고 쓰일 만큼 베일에 싸인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이름이 없었을 뿐 그는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물고문·전기고문·날개꺾기 등 악랄한 수법으로 허위 자백을 받아내는 인물로 말이죠.
국가는 그의 ‘공로’를 인정했습니다. 1986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이근안에게 옥조근정훈장을 수여했습니다. 이근안은 각종 기업을 돌며 100회가 넘는 안보 강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고문은 악명이 아닌 ‘명성’이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조작된 사건 뒤, 사인 모를 죽음들
이근안이 시대의 빛을 보는 동안 그가 가한 고통들은 가려졌습니다.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이근안에게 고문받은 이재문씨는 대법원에서 사형 판결을 받은 이듬해인 1981년 후유증으로 옥사했습니다. 이근안이 조작한 1982년 김제 가족 간첩단 사건 피해자 최을호씨는 1985년 사형당했고 최낙교씨는 구치소에서 의문사했으며 최낙전씨는 석방된 지 4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1971년 어로작업 중 납북됐다가 감시 속에 살았던 김성학씨는 1985년 12월 이근안에게 전기고문을 당한 뒤 척추 디스크가 다 녹아내려 장애 판정을 받았습니다.
사인 모를 죽음과 평생을 따라온 고통, ‘기술’이라 불린 행위의 결과였습니다.

처벌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은 책임
이근안도 민주화의 흐름을 끝내 거스르진 못했습니다. 수사가 시작되자 그는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두고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말을 남긴 박처원 당시 대공수사처장의 지시에 따라 약 11년간 도피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이후 “동료들의 형량이 생각보다 가벼웠다”며 자수했죠. 고문과 불법 구금죄로 그에게 선고된 형량은 징역 7년과 자격 정지 7년. 2006년 출소 뒤 그는 목사가 되어 다시 사회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간증과 설교에서 반성을 언급했지만 언론 인터뷰에서는 자신의 행위를 ‘예술’이라 표현했습니다. “지금 당장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이 일할 것”, “당시에는 애국이었다”는 발언도 남겼습니다. 2012년 출간한 자서전에서도 같은 주장을 반복했습니다. 2024년엔 납북어부 고 박남선씨 사건에서 불법 연행과 고문이 인정돼 배상 판결이 내려졌지만 그는 재산이 없다며 끝내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과거’는 사라졌지만 폭력은 ‘현재진행형’
이근안은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국가폭력의 ‘상징’일 뿐이었습니다.
지난 1월 검찰은 법원의 판단 이후에야 국가폭력 피해자에 대한 기소유예 처분을 ‘혐의없음’으로 바로잡았습니다. 재심을 준비하는 유족들이 수사기록을 요청하고도 1년 넘게 받지 못하는 일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개인은 사라졌지만 책임을 미루는 구조와 태도는 남아 있습니다.
상징은 사라졌고 폭력은 남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향해 분노해야 할까요?
https://www.khan.co.kr/article/202603242034015
https://www.khan.co.kr/article/202508250600101
https://www.khan.co.kr/article/202602110700001
우혜림 기자 sa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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