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과의 전쟁 6개월…공정위 칼날, 왜 CJ에 꽂혔나[박상영의 경제본색](15)

2026. 3. 27.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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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0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밀가루 판매대에서 한 소비자가 CJ제일제당의 밀가루를 집어들고 있다. 연합뉴스

기업에 대한 온정주의적 처벌, 이른바 ‘솜방망이 처벌’을 강하게 비판한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한 지 6개월가량이 지났다. 주 위원장 체제 아래 공정위가 가장 날카롭게 향한 곳은 어디일까.

공정위에 따르면 주 위원장 취임 이후 공정위가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 격)를 발송하거나 최종 제재를 확정해 발표한 사례 중 CJ그룹이 총 4건으로 가장 많았다. 최근 개인정보 유출 및 납품업체 갑질 의혹으로 국정조사까지 치른 쿠팡(2건)이 그 뒤를 이었다.

설탕·돈육 이어 밀가루까지

CJ에 대한 첫 제재는 지난 2월 발표된 ‘설탕 가격 담합’이었다. 공정위는 CJ제일제당이 삼양사, 대한제당과 공모해 2021년부터 약 4년간 설탕 원료가 상승 시기에는 가격을 즉각 올리고, 하락기에는 인하 폭을 최소화했다는 이유로 150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지난 3월 12일에는 이마트 돈육 납품 과정에서 입찰가를 담합한 CJ피드앤케어(CJ제일제당에서 분사)가 제재를 받았다. 일반육 입찰과 브랜드육 견적 제출 과정에서 경쟁사와 사전에 가격을 밀약한 사실이 드러났다.

밀가루와 전분당 담합도 잇달아 적발돼 조만간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제재 여부와 수위가 결정될 전망이다. 공정위 심사관 측은 이들 담합 행위와 관련한 매출액이 각각 5조8000억원, 6조2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대한 위반 행위로 인정된다면 CJ제일제당은 많게는 수천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CJ의 담합 사실이 잇달아 적발되자 주 위원장은 최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이례적으로 CJ제일제당을 언급하며 “너무 실망스럽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담합 같은 행위를 하지 않도록 막는 기업 내부의 준법감시시스템인) 컴플라이언스(compliance)는 경영의 기본”이라고 비판했다.

CJ그룹에 대한 조사는 모두 ‘담합’에 집중됐다. 이는 민생경제와 직결되는 먹거리 물가를 인위적으로 조작한 행위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는 정부의 정책 기조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CJ는 설탕, 밀가루, 전분당 등 기초식품 소재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어 이들의 담합은 곧바로 전방위적인 가공식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는 구조적 특성이 있다. 국내 굴지의 식품 대기업인 CJ가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된 셈이다.

공정위의 감시망이 먹거리에서 교복, 주유소 등 서민 생활과 밀착된 전 분야로 확대됨에 따라 내수를 기반으로 한 기업들에 대한 제재는 잇따를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이재명 대통령은 “물가 안정이 곧 민생 안정”이라며 부당 담합에 대한 전방위적 점검을 지시함에 따라 공정위는 현장 조사에 나서며 제재를 예고했다.

공정위는 관련 제도 개선도 추진 중이다. 담합 과징금 기준을 관련 매출액의 20%에서 30%로 높이고, 현재 40억원으로 돼 있는 정액 과징금 한도를 100억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추진했다. 여기에 2006년 이후, 약 20년 만에 ‘가격 재결정 명령’ 카드도 꺼냈다. 단순히 과징금만 내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부당하게 올린 가격을 다시 정상적인 수준으로 내리라고 압박하는 것이다.

이처럼 새 정부 출범 직후 6개월간 공정위의 제재 흐름은 해당 정부의 경제 정책 기조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로 꼽힌다. 이재명 정부 초기 공정위가 담합 등 불공정행위에 대한 조사와 제재를 적극적으로 확대했던 것과 달리, 윤석열 정부 출범 초기에는 관련 제재 건수가 눈에 띄게 감소했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2월 12일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당 등 3개 설탕 제조 판매 사업자의 담합사건 심의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권마다 뒤바뀐 공정위 기조

실제 공정위에 따르면 윤석열 집권 초인 2022년 전원회의와 소회의를 통해 처리된 안건 수는 총 465건으로, 전년(536건) 대비 13.5% 줄었다. 같은 기간 공정위가 처리한 전체 사건 수도 2021년 2733건에서 2022년 2172건으로 20.5% 감소했다.

이 같은 감소세는 단순한 사건 축소라기보다 조사·제재 기조 변화와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윤석열 정부 초기 공정위는 시장 자율을 강조하며 직권 조사보다는 자진 시정 유도와 사전 예방 중심의 정책을 확대했다. 이에 따라 대형 담합 사건에 대한 집중 조사보다는 기업의 자율적인 법 준수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했다.

이러한 정책 기조는 공정위의 제도 개편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공정위는 조사 과정에서 ‘이의 제기 절차’를 신설해 과도한 자료 제출 요구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기업이 공식적으로 이견을 낼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했다.

또 피조사 기업에 구체적인 조사 대상과 범위를 명확히 고지하는 등 기업의 방어권을 대폭 강화했다. 이와 함께 대기업 총수(동일인)의 친족 범위도 기존 혈족 6촌, 인척 4촌에서 각각 4촌, 3촌으로 축소하며 규제 부담을 덜어내는 데 집중했다.

문재인 정부 초기 공정위는 재벌개혁에 집중했다. 가장 상징적인 조치는 2017년 9월 신설된 ‘기업집단국’이다. 기존 ‘과 단위’였던 조직을 ‘국 단위’로 확대하고 서면 실태 조사를 진행했다. 서면 실태 조사는 직권 조사로 이어져 하이트진로, 효성의 일감 몰아주기를 제재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문 정부의 재벌개혁은 단순 조사를 넘어 이후 제도 개선으로도 이어졌다. 2020년 40년 만에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을 이끌어내며 사익편취 규제 대상 기준을 강화하고,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율 요건을 상향하는 등 대기업의 자발적인 소유 구조 개선을 압박했다.

이처럼 공정위의 칼날은 역대 정부의 정책 기조에 따라 방향이 바뀌었다. 이러한 기조 변화는 공정위가 단순한 규제 기관을 넘어, 국민 실생활과 직결된 경제 현안을 책임지는 기관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러한 공정위의 조치가 단순히 기업 옥죄기에 그치지 않으려면 정교한 집행이 뒷받침돼야 한다. 물가 안정을 명분으로 한 개입이 일회성 과징금 부과에 그치고 근본적인 시장 구조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기업들은 이를 단순한 ‘기회비용’으로 치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 사례를 보면 수천억원의 과징금 처분 이후에도 독과점 지배력이 유지되면서 그 비용이 소비자 가격에 전가되는 부작용이 반복되기도 했다.

취임 6개월을 맞은 주 위원장의 ‘민생 파수꾼’ 실험은 이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공정위의 강력한 제재가 고질적인 담합의 고리를 끊어내고 실질적인 물가 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시장은 주 위원장의 다음 타깃이 어디로 향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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