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린 적 없는 그림, 내가 쓴 적 없는 글[IT 칼럼]

2026. 3. 2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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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엔비디아는 DLSS 5라는 신기술을 발표했다. 그러자 게임 커뮤니티는 분노로 들끓었다. DLSS란 딥러닝 슈퍼샘플링의 약어로,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해상도를 높인다거나, 프레임을 생성 후 삽입해줘 부드럽게 해준다. 내가 지닌 보통 장비로도 고급 장비로 그린 듯한 결과물을 보여주는 기특한 일을 해왔다. 그 기술의 버전 5니 개선판일 텐데 무슨 일일까 싶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기술이 선을 넘어버린 모양이다.

컴퓨터 그래픽을 실사처럼 보이게 하려고 게임이 그린 골격 위에 실시간으로 생성형 이미지를 덧씌우는 필터를 만들어버린 것. 엔비디아는 DLSS 5야말로 게임 그래픽에 있어서 ‘챗GPT 모멘트’가 될 것이라며, 생성형 AI가 시각적 사실감을 극적으로 도약시킬 것이라며 자신만만해했다.

데모를 볼 때 그 의도는 명확해 보인다. 게임이 아닌 영화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던 것. 신기하긴 하다. 그런데 여기엔 여러 문제점이 있었다. 우선 이런 디지털 화장술에 사람들은 지쳐 가고 있었다는 점. 영어엔 ‘야시파이(Yassify)’라는 신조어가 있다. 미용 필터로 이목구비를 바비처럼 보정해 원판과 멀어지는 걸 비꼬는 말이다. 게임이 야시파이드됐다거나, 이건 야시피케이션이라는 식으로 부정적 기류가 형성돼버렸다.

아무리 게임 캐릭터에 눈가 주름을 만들고 피부를 거칠게 해도 그 캐릭터들은 실물 인간이 아니다. 인간과 유사한 존재를 볼 때 생기는 기괴하고 불쾌한 감정을 나타내는 말로 기분 나쁜 골짜기(Uncanny Valley)도 있다. 어색하게 흉내 내면 본능적 거부감이 드니 아예 다른 것만 못한 일이 벌어진다. 애착을 느끼고 싶은 곰 인형 대신 어설픈 인조인간을 선물 받는 느낌을 떠올리면 좋다.

인간은 아티스트나 디자이너가 의도한 색감, 구도, 질감, 화풍 등 다양한 선택을 다시 뇌에서 재조합해 이를 감상한다. 하나하나가 어쩌면 다 의도다. 단순한 선화로부터도 우리의 상상은 자극된다. 하지만 AI는 학습된 세상의 평균적인 무난함을 찾으려 든다. 여기선 이런 빛, 이런 피부, 이런 눈이겠거니 하면서 자동으로 그려버린다. 어쩌면 디자이너는 픽셀이 모자라서 그런 눈빛을 그린 것이 아닐 텐데 AI는 어느 사진에선가 학습한 눈으로 바꿔 그린다.

기름을 붓는 격으로 DLSS 5 홍보에 쓰인 게임의 개발자들은 그 사실을 발표 당일에야 일반 대중과 함께 알았다고 한다. 엔비디아가 자기 주식을 부양해주는 AI만 챙기고 정작 자신을 키운 게임은 쇼케이스로 전락시켰다고 배신감을 느낄 만하다.

망치를 손에 들면 뭐라도 두드리고 싶어진다. 구글도 검색 결과 헤드라인을 AI가 직접 수정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AI의 힘으로 이제 수동적 정보 중개자에서 능동적 데스크가 되는 꿈을 꾸는 듯하다. 그러나 풍자나 반어법을 긍정적 홍보 문구로 바꾸는 등 평균적 무난함은 그 한계를 드러낸다.

그럼 AI는 어디에 써야 할까? DLSS의 초심은 힌트를 준다. 창작자는 자신이 뜻한 바 그대로의 그림과 영상을 게이머의 평범한 PC에서도 비슷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AI라면 고마워한다. 하지만 내가 그린 적 없는 그림으로, 내가 쓴 적 없는 글로 허락 없이 덮어쓰기 한다면 기분 좋을 창작자는 없다. 의도를 지닌 작품을 영혼 없이 덮어쓴 것이 제아무리 정교한들 ‘AI 구정물(슬롭)’일 뿐이다.

김국현 IT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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