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잃은 생존자들의 길고 고요한 투쟁과 애도…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영어판(영어제목 ‘We Do Not Part’)이 미국의 권위 있는 도서상인 전미도서비평가협회(NBCC)상을 받았다. 한국 작가의 작품이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은 것은 2023년 김혜순 시인의 시집 ‘날개 환상통’(영어제목 ‘Phantom Pain Wing’) 이후 두 번째다.

한 작가는 이날 시상식에 직접 참석하진 않았고, 출판사 편집장을 통해서 대신 수상 소감을 밝혔다. 한 작가는 “감사하고 영광스럽다. 이 책을 위해 내 모국어인 한국어에서 영어로 놀라운 연결을 만들어준 두 번역가 이예원과 페이지 모리스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불가능한 이별 대신 작별을 고하지 않기로 결심한 이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끈질긴 아침 속에 머무르기로 선택한다”며 “그들은 칠흑 같은 밤의 심연 속에서 바다 밑에 촛불을 밝힌다”고 작품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나는 여전히 우리들 안에 깜빡이는 빛을 믿고 싶고, 희망을 품은 채 끈질기게 그 빛을 붙들고 앞으로 나아가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가족을 잃은 생존자들의 고요한 투쟁과 애도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벌판의 한쪽 끝은 야트막한 산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등성이에서부터 이편 아래쪽까지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었다. 여러 연령대의 사람들처럼 조금씩 다른 키에, 철길 침목 정도의 굵기를 가진 나무들이었다. 하지만 침목처럼 곧지 않고 조금씩 기울거나 휘어 있어서, 마치 수천 명의 남녀들과 야윈 아이들이 어깨를 웅크린 채 눈을 맞고 있는 것 같았다.”

한강은 소설에서 단순히 비극의 재현에 머무르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이 감당해야 했던 침묵과 상실, 그리고 끝나지 않은 애도의 시간을 집요하게 응시한다. 역사의 비극에서 만난 연대와 애도의 마음을 눈이 시리도록 선연한 이미지와 유려하고 시적인 문장으로 담아냈다는 평가다.
한강은 2024년 12월 스웨덴 한림원 강연에서도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인선의 어머니인 정심이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뒤, 사랑하는 사람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내 장례를 치르고자 싸워온 사람, 애도를 종결하지 않는 사람, 고통을 품고 망각에 맞서는 사람, 작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2021년 발표된 ‘작별하지 않는다’는 연작소설 ‘채식주의자’,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등과 더불어 한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2023년 ‘불가능한 작별(Impossibles adieux)’이란 제목으로 프랑스에서 출간돼 메디치 외국문학상과 에밀 기메 아시아 문학상을 연이어 받기도 했다.
◆부커상에 이어 노벨문학상까지...한국 문학의 기수 한강
1970년 광주에서 소설가 한승원의 딸로 태어난 한강은 1993년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시 ‘서울의 겨울’ 외 4편을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등단 이후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휜’, ‘작별하지 않는다’ 등을,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 등을,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을 발표했다.

◆김혜순 이어 한강 택한 NBCC…비평가가 뽑는 작품성 중심 문학상
한 작가가 이번에 수상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NBCC)은 미국 비평가들이 직접 각 부문 최고의 책을 선정하는 문학상이다. 전미도서비평가협회는 1974년 미국 언론·출판계 도서 평론가들이 설립한 비영리 단체로, 뛰어난 저작을 기리고 독서와 비평, 문학에 관한 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출범했다. 현재 800명이 넘는 비평가, 작가 등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NBCC상은 매년 영어로 출판된 도서를 대상으로 소설, 논픽션, 전기, 자서전, 시, 비평 등 6개 부문에 걸쳐 최우수 도서를 선정해 시상한다. 비평가들이 직접 선정한다는 점에서, 작품의 문학적 완성도와 비평적 가치가 인정됐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 같은 평가 방식으로 퓰리처상, 전미도서상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주요 문학상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들 미국 비평가들이 닿은 곳은 어디일까. 경하의 마음에서 시작해 친구인 인선을 거쳐, 다시 인선의 어머니 정심의 지극한 사랑으로 나아가지 않았을까.
“엄마가 쪼그려 앉길래 나도 옆에 따라 앉았어. 내 기척에 엄마가 돌아보고는 가만히 웃으며 내 뺨을 손바닥으로 쓸었어. 뒷머리도, 어깨도, 등도 이어서 쓰다듬었어.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작별하지 않는다’, 310-311쪽)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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