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아버지 돌봄을 떠맡는 게 부당하다고 느꼈어요

박주연 2026. 3. 27.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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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없는 시대』를 펴낸 차해영 구의원

유년 시절, “침대방과 공부방, 피아노방까지 갖춰진 집”에서 보냈던 시간은 부모의 이혼으로 한 순간에 사라졌다. 딸의 일상은 공장 사무실에서의 생활로 변경됐다. 외도로 이혼을 맞이한 아빠는 이후에도 여러 여자들과 만났고, 그렇게 ‘가족’도 매번 바뀌었다. 딸은 혼란스러운 청소년기를 지나 “어쩌다 독립”했고, 홀로 ‘가족’에서 벗어난 삶을 꾸려갔다.

그런데 어느 날, “예고 없이 닥친 돌봄”을 마주하게 됐다. 심상치 않은 아빠의 행동은 결국 ‘치매’ 판정을 받았고, 돌봄은 딸 혼자의 몫이 됐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장례와 상속처리 등의 일도 마찬가지였다.

책 『가족 없는 시대』의 저자, 차해영의 이야기다. 현재 서울 마포구의회 의원이기도 한 그는 ‘청년’ 정치인으로서, 이전엔 지역 활동가로서 1인가구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다. 차해영 구의원은 지난 얼마의 시간 동안 예상치 못한 일들의 겪으며, 한국 사회의 ‘가족’과 돌봄에 관련된 문제, 비어있는 제도, 필요한 장치들에 대해 더욱 각성하게 됐다.

▲ 서울 마포구의회 의원실에서 차해영 의원을 만나 책 『가족 없는 시대- 혼자의 삶을 지키는 돌봄의 기록』(오월의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일다

예기치 않게 치매 아버지의 보호자가 되어야 했던 딸

돌봄, 장례, 상속 문제까지 거치며 ‘가족 제도 정말 바꿔야 한다’ 깨달아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아버지 돌봄을 하고, 이후 돌아가시고 상속 문제까지 겪으면서 너무 ‘부당하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이걸 혼자서 감당하는 게 말이죠. 특히 두 가지가 그랬는데요. 하나는 아버지가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했을 때, 보호자가 2명 있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물론 보호입원 할 때 보호자가 1명이 아닌 이유(가족에 의한 강제입원 문제로 법이 개정됨)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나 말고 보호자가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그렇다는 게 답답했어요.

그리고 상속 포기를 할 때, 나 혼자 한다고 끝이 아니니까(4촌 이내 혈족에서 채무가 승계될 수 있음),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아버지의 사촌들한테 알려줘야 하잖아요. 그래서 아빠의 친가 쪽 친족(할아버지 형제자매의 자녀), 외가 쪽 친족(할머니 형제자매의 자녀)을 파악해야 했는데, 한국의 가족제도가 부계혈통주의에 기반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할머니 쪽 정보를 제가 찾아볼 수 없더라고요.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거기다 상속 범위가 4촌이나 된다는 것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봐요. 요즘 누가 아빠의 사촌까지 아나요?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지?’ 분노의 마음이 컸어요. 가족 제도를 정말 바꿔야 하는구나 싶었죠. 일단 그에 대한 책을 써보자고 생각했어요.

 

-책 읽으면서 해영님한테 여러 힘든 일이 많았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요. 아버지의 돌봄 과정과 그 이후의 일들도요. 그 중에서도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은 무엇이었나요?

일단 아빠한테 인지증이 올 지 몰랐다는 거. 물론 나이가 들면 여러 질병이 생길 수 있으니까 그런 일도 생길 수 있겠다 생각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갑자기 닥칠 줄은 몰랐죠. 그리고 아빠가 나이 들면 내가 돌봄 노동을 어느 정도는 하게 될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이렇게 전담을 하게 될 줄 몰랐고요. 아빠에게 파트너가 있었고, 그 사람과 아빠가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저도 그렇고, 아빠도 그렇고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없어서 입원한다는 것 자체도 너무 낯설었고, 그때 뭐가 필요한지도 몰랐어요. 또, 신체가 건강한 남성 인지증 노인을 받아 주는 요양시설이 별로 없다는 것도요. 특히 폭력성이 있는 인지증이어서 돌봄 회피 대상이더라고요. 내가 돌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거죠. 겨우 한 곳을 찾아서 입원을 시켰는데 한 시간 만에 연락이 왔죠. 도저히 데리고 있을 수 없으니 퇴소시키겠다고요. 그나마 아빠가 요양시설에 들어가면 나를 좀 지키면서 돌봄을 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게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공공에 도움 요청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게 너무 많았다

“보호자가 나밖에 없는데, 보호입원 시 2명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런 막막한 시기에 도움이 된 게 있었나요?

마포에서 지역 활동을 계속 해왔으니까, 그 (인적) 자원을 그래도 쓸 수 있었다는 점이요. 지역 돌봄 네트워크 하는 분들, 무지개의원(마포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병원) 선생님한테도 남성 인지증 환자에 대한 정보를 물어볼 수 있었죠. ‘이런 이런 행동을 하는데 이게 인지증인가요?’ 이런 것들부터요. 요양시설 알아볼 때도 주변에 물어볼 수 있어서 분명이 도움이 됐어요.

다만 ‘외부인’에게 받을 수 있는 도움이 한정적이라는 거죠. 실질적으로 날 도울 수 있진 않은 거에요. 내가 시간이 안 될 때 나 대신 보호자 역할을 해 주지는 못하는 거죠. ‘힘내’라는 말을 하거나 밥 한끼 사주거나... 그것도 물론 고마운 일이지만요. 정말 도와줄 마음이 있어도 내 일에 개입할 수 없다는 것, 제도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게 답답했어요.

그래도 전 활동하면서 쌓아온 지역 네트워크가 있었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구의원이기도 하니까 제도나 행정을 아는 사람인 거잖아요. 어떤 방법이 있다는 걸 알고, 적어도 그걸 찾아볼 수 있었죠. 하지만 이런 네트워크가 정보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에게 이런 일이 닥쳤다면? 정말 누군가는 죽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이런 기록을 남겨두는 게 필요하겠다 생각한 거죠.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요.

▲ 책 『가족 없는 시대 -혼자의 삶을 지키는 돌봄의 기록』(차해영 저, 오월의봄) 표지

-지금 구의회에서 일하고 있는 게 도움이 됐군요?

그렇죠. 원래 복지 쪽에 관심이 있었으니까 어르신 정책도 많이 보기도 했고요. 그래서 아빠 행동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치매노인’ 관련 지역 정책과 제도를 찾아봤어요. 장기요양등급도 확인해 봤고요. 이런 걸 찾아보고 주변에 물어볼 수 있다는 건 분명 큰 도움이었어요.

그런 점에서 전 ‘공공’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죠. 어떤 지원체계가 있고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아니까, 그래도 거기에 빠르게 진입한 거죠. 하지만 이런 정보가 없으면, 아예 시작점이 다른 거에요. 사실 큰 차이죠.

 

-그렇게 관련 제도들을 깊이 들여다 보게 됐잖아요. 좋은 것도 있을 것 같고, 아쉬운 점이나 미비하다고 생각한 부분도 있었을 것 같아요.

우선 무료 상담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건 분명 좋았어요. 공공에서 지원하는 기본적인 무료 상담이요. 저도 지역의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전화해서 정신병원에 응급입원은 어떻게 하냐 이런 거 물어봤거든요. 초반에 정말 아무 것도 모를 때 정보를 얻기 좋았어요.

안 좋았던 건... 안 되는 게 너무 많다는 거에요. ‘뭐는 여기까지밖에 안 된다, 이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선 어떤 상황이 있어야 한다...’ 등의 말을 늘 들어야 했어요. 응급입원을 시키려고 했던 때도 ‘그 사람이 자신이나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정도여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아빠가 날 해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건지... 너무 답답했어요.

또 아빠는 경기도에 있었는데 그 지역은 1인가구 병원 동행 서비스가 없더라고요. 서울시는 지금 자치구마다 다 있는 상황인데, 그런 제도가 전국적으로 시행되고 있진 않다는 것도요.

 

정치인 대다수가 ‘1인가구’ 아니고 돌봄이 자기 문제가 아니라서…

혼인과 혈연에 기대지 않는 동반자, 보호자‘들’이 필요하다

 

-1인가구 증가는 꽤 전부터 이야기된 부분이잖아요. 1인가구 정책이나 제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고요. 그럼에도 여전히 이를 고려한 제도가 부족한 이유는 뭘까요?

정치인들의 관심이 크지 않기 때문이죠. 1인가구 이야기하면 ‘결혼하면 되는데, 왜 그렇게 결혼을 안 하려고 해요? 요새 청년들은 참 이기적이야’ 이런 말을 하거나, ‘1인가구 지원체계가 필요하다’고 말은 하는데 실상을 모르거나요. 왜냐면 그들은 1인가구가 아니거든요. 그것이 자신의 삶이 아닌 거죠. 한국 사회의 정책 결정권자의 대다수가 여전히 ‘정상가족’으로 사는 이들이기 때문에, 그것이 아닌 이들의 삶을 몰라요. 뭐가 필요한지도 모르고요.

 

-앞으로 1인가구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잖아요. 결혼한다고 해도 꼭 출산하는 것도 아니고, 한 명만 낳는 경우도 많고요. 가족의 규모가 점점 작아지고 있어서, 돌봄을 ‘가족’ 내에서 해결하라고 한다면 정말 힘들 것 같아요.

맞아요. 그래서 지금 관련 제도를 논의해야 한다고 봐요. 우리 세대부터요. 제가 1986년생인데 주변 친구들 보면 외동 아니면 형제자매가 1명 더 있어요. 외동이어도 부모돌봄이 힘들지만, 둘이어도 힘들더라고요. 서로 어떻게 돌봄을 분배해야 할지 다툼이나 갈등도 늘어나고요. 이런 일이 점점 더 많아지겠죠. 그러니까 가족에게만 기대는 부분을 바꿔야 한다는 거죠. 주변에 내가 정말 신뢰하는 친구에게 돌봄을 부탁할 수 있어야 해요. 또, 돌봄을 주고 받는 건 단순히 ‘선의’로 할 수 있다기보다 어떤 소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사회가 그런 걸 갖출 수 있도록 해야겠죠.

제도나 법이 어떤 유연성을 가져야 하는지도 논의하고 싶어요. 정신병원 보호입원도 안전망으로 ‘2명의 동의’라는 장치를 넣은 건데, 저같은 경우는 또 한 명의 보호자를 찾는 게 거의 불가능했으니까요. 이런 예외, 다양한 사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은 논의가 필요해요.

 

-지금 내가 가족과 돌봄에 관련된 제도를 설계한다고 한다면, 가장 먼저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요?

생활동반자법과 비슷한 건데요. 다만 저는 일대 일의 관계라기보다 다수의 사람을 나의 보호자로 지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결혼이나 사실혼의 경우에도 여튼 파트너인 1명에게 돌봄의 역할이 가는데, 그렇게만 되면 안 되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임의후견제도’(본인이 직접 신뢰할 수 있는 후견인과 재산관리·신상보호 대리권을 계약(공증)으로 정해두는 제도)처럼 누군가를 지정해 두는 거죠. 그치만 그게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어야 한다고 봐요.

저는 혈연에 기대지 않은 ‘사촌’들을 만들고 싶어요. 공동체에서 마음이 맞고, 서로 돌봄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 누군가 죽었을 때 장례를 치르고 유품 정리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요. 그걸 위해선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어디까지 부탁할 수 있는가?’ 이런 이야기도 많이 나눠봐야겠죠. 우리에겐 그런 경험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린 ‘돌봄이 필요한 몸’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 몸을 상상해 보지도 않고요. 이런 이야기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여전히 ‘청년’으로서 내가 늘 건강하고, 경제력이 있고, 내 삶의 모든 걸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고, 돌봄을 상상했을 때도 여전히 그걸 ‘기본값’으로 상상하는 것 같거든요. 사실 그동안 1인가구 정책을 논의할 때도 그랬던 것 같아서, 나 또한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지금까지 논의했던 정도로는 안 된다고요.

 

-이번 경험이 삶에 많은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아빠가 끝까지 나한테 미션을 주고 간 건 같아요. 날 평생 힘들게 하더니, 마지막에도 이렇게 과제를 주고 갔구나 하고요.(웃음) 어렸을 때 이혼가정에서 살면서 다른 부분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이 생겼고, ‘가족’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죠. 이번엔 실제 돌봄 현장이 어떤지, 제도적 허점과 틈새를 경험하게 됐잖아요? 이걸 바꾸라는 건가 보다 해요.

 

-그렇게 힘겨웠던 경험들을 승화하신 거군요.(웃음)

어떤 소수자로 살다 보면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의 삶이 되는 것 같아요. 남들 보다 어떤 일들을 먼저 겪는 거죠. 그 역할을 해 보려고요.

 

-이 책을 어떤 독자들을 생각하며 썼나요? 누가 읽으면 좋을 것 같나요.

저처럼 외동인 사람, 가족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책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공공에 어떤 서비스가 있는지, 무엇을 이용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 보고 미리 체크해 보고요. 인터넷서점 판매를 보면 40대 여성이 제일 많이 읽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역시 동년배들이 읽는구나 싶은데, 더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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