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도의 음악기행 <105> 2월 독일 공연 관람기] 삶과 피아노 소리에도 그림자가 존재한다

안종도 2026. 3. 2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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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아름다운 소리만 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빛 뒤에 드리운 그림자까지 받아들일 때 더 완전해지는 것인지 모른다. 그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을 때 소리는 더 나다워지고 완전해지는 것 같다.
/사진 셔터스톡
안종도 - 연세대 피아노과 교수,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 전 함부르크 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지난 2월 잠시 독일에 체류할 일이 있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한 연주회를 관람하러 갔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눈을 감고 연주자가 무대에 등장하는 기척을 들으며 피아노의첫 음이 울리기를 기다렸다.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건반에서 떨어져 나오는 한 음 한 음이 너무도 맑고 영롱했다. 각각의 음은 수정처럼 투명하게 울렸다. 그 음이 흘러가는 세계는 완벽하게 아름다웠다. 음악이 시간예술이 아니라면, 그 음 하나하나를 조각처럼 남겨 어딘가에 오래 보관하고 싶을 만큼 그렇게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모든 음이 너무도 완벽하게 아름다웠기 때문에, 바로 그 아름다운 세계 속에서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다움’이라는 감각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너무나 모든 것이 아름다웠기 때문에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며 방황하고 있다니, 나 자신도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이었다.

그 낯선 감각은 연주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며칠 동안 나는 그 경험을 곱씹듯이 생각하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산책하다가 문득 그 연주가 다시 떠올랐다. 겨울이 막바지에 접어든공원이었고, 호수 옆 산책로에는 얇게 눈이 쌓여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계절이었지만 풍경은 이상하게도 평온하고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강아지를 데리고 천천히 산책하고 있었고, 발걸음 소리가 눈 위에서 조용히 울렸다.

그런데 조금 더 자세히 보니 그 풍경 속에는 아름답지 않은 것도 함께 있었다. 길가에는 담배꽁초가 몇 개 떨어져 있었고 눈 위에는 종잇조각이 붙어 있었다. 새똥도 보였고 강아지가 남긴 흔적도 있었다. 조금 떨어진 도로에서는 차들이 지나가며 귀를 스치는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그 모든 것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겨울 풍경과 사소하게 지저분한 흔적, 고요한 공기와 멀리서 들려오는 소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장면은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들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내가 느끼는 아름다움은 더 또렷했다. 아름답지 않은 것이 있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더 선명하게 드러났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그날 연주회에서 느꼈던 낯선 감각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나는 모든 순간이 완벽하게 아름다웠기 때문에 더는 아름다움과 완벽함을 구분할 수 없게 됐던 것인지도 모른다. 내 미적 감각이 잠시 길을 잃었던 것이다.

물론 그 연주를 평가하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연주는 혼란스럽고 소음 가득한 세상 속에서 그렇게 맑고 영롱한 소리가 한 시간 동안 울려 퍼졌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귀하고 놀라울 만큼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다만 그 지속되는 아름다움 속에서 나는 문득 이런 질문을 떠올리게 됐을 뿐이다. ‘아름다움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 빛 뒤에 드리운 그림자까지 받아들일 때 완벽해지는 아름다움

이 생각은 어느새 내 삶으로 이어졌다. 나역시 학생 시절, 어린 마음에 내가 존경하던 피아니스트나 선생님들의 화려한 이력과 프로필을 보며 내 인생도 그렇게 정리되기를 바라던 때가 있었다. 그들의 이력이 한 줄 한 줄 쌓여 있는 것을 보면서, 그 한 줄 뒤에 수십 배에 달하는 시행착오와 좌절, 긴 시간의쓴맛이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그저 성공이 이어지기를 바랐고 실패는 없기를 바랐다. 좌절 없는 곧은 길을 걸어가기를 바랐던 것이다.

요즘 소셜미디어(SNS)나 유튜브를 보면 ‘이렇게 해서 성공했다’ ‘이 방법으로 돈을 벌었다’ ‘이 루틴으로 두세 달 만에 인생이 바뀌었다’ 같은 이야기가 넘쳐난다. 어쩌면 나 역시 한때 그런 식으로 삶이 흘러가기를 은근히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내가 실제로 걸어온 길은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물론 몇 번의 성공도 있었지만 내 인생의 길은 반듯하게 이어진 아스팔트라기보다 구덩이가 많은 돌길에 가까웠다. 여기저기 검은 얼룩이 남아 있는 길이었다. 처음에는 깨끗한 흰옷을입고 인생을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은 여기저기 해지고 얼룩이 묻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내 인생의 흔적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 얼룩과 상처 덕분에 그 옷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무늬를 갖게 됐는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한 뒤 나는 다시 연습을 하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아름다운 소리’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

어쩌면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내가 아름다운 소리만 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빛 뒤에 드리운 그림자까지 함께 받아들일 때 조금 더 완전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림자를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다. 때로는 너무 불편하고, 어떤 순간에는 내 몸에 이가 기어다니는 것 같은 감각처럼 견디기 어려울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불편함과 균열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일 때 내 소리는 조금 더 나다워지고 조금 더 완전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현대인의 삶도 이와 비슷한 지점에 서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점점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조금만 지루하거나 힘들어도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조금만 흔들리면 다른 선택지를 찾는다. 더 강한 자극을 추구하는 ‘도파민 중독’이라는 말도 이제 낯설지 않다. 성공과 완벽한 삶의 이미지가 넘쳐나는 SNS 속에서 많은 사람이 오히려 삶의 방향을 더 자주 잃어버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느 때보다 편리한 사회에 살고 있지만, 정작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더 자주 묻게 되는 시대인지도 모른다.

철학자 니체는 이런 말을 남겼다. “춤추는 별을 낳기 위해선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 완벽하게 정리된 세계에서는 새로운 별이 태어나기 어렵다. 어쩌면 삶도, 예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들 내가 피아노 앞에 앉을 때마다 무엇이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내 연주가 극적으로 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여전히 같은 건반 앞에 앉아 같은 고민을 반복하고, 어제와 비슷한 실수를 하기도 한다.

다만 예전보다 조금 더 바라게 된 것이 있다면, 이 소리를 통해 나 자신을 조금 더 알아가고 싶다는 마음일 것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도 여전히 있다. 하지만 그것조차 어쩌면 또 다른 오만일지 모른다. 인생이란 생각보다 훨씬 자주 우리 기대를 비껴가고 우리는 다시 좌절을 만나기도 하니까.

그래서 요즘 나는 다른 것을 바라게 된다. 어떤 순간이 오더라도 그 순간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그리고 쓰게 느껴지는 순간마저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와 용기 같은 것 말이다. 빛이 있을 때 그림자가 생기듯, 아마 삶도, 피아노 소리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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