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發 나프타 쇼크…농가 비닐 수급 ‘5월 대란’ 우려
농협 “적자에도 비닐 만들었는데…사태 장기화땐 가격 급등”

26일 찾은 광주시 광산구 하남산단 광주원예농협 농업용필름공장. 한참 비닐을 찍어내는 기계 소리가 시끄러워야 할 시간이었지만, 대다수 기계가 꺼져 있어 한산한 모습이었다.
주원료인 LLDPE(선형 저밀도 폴리에틸렌)가 쌓여 있어야 할 창고 공간도 절반 이상 비어 있는 상태였다. 대형 원료 포대는 일부 구역에만 쌓여 있었고, 그 사이로 넓은 우레탄 바닥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가을 농번기를 대비해 기계를 속도 높여 가동해야 할 시기인데, 남은 LLDPE가 500여t에 불과해 4월 중순부터 공장을 멈춰야 할 상황이라는 것이다. 최근 3년간 아무리 적어도 달마다 200여t 이상 원료를 들여 왔는데 다음달에는 기본 물량조차 확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내비쳤다.
김종화 광주원예농협 농업용필름공장 생산관리팀 주임은 “이대로면 한 달도 버티기 어려워 5월이 더 걱정된다. 공장이 멈추면 농가뿐 아니라 직원들도 직장을 잃게 되니 생계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비닐뿐 아니라 비료 포대를 만드는 데 쓰이는 페인트 수급도 문제가 생겨 관련 생산 자체가 차질을 빚고 있다”고 덧붙였다.
원예농협의 농업용필름공장은 농민들을 위해 적자를 감수하면서 운영해온 공장으로, 공장이 멈춰서면 농민 피해는 그만큼 커질 수 밖에 없다.
이 필름 공장의 경우 32년 간 공장을 가동하는 내내 흑자를 본 게 14번에 머물 정도로, 원가 경쟁력이 없지만 낮은 가격으로 농민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가동해온 시설이다.
하지만 중동 전쟁 여파로 비닐 등의 원료인 ‘나프타’ 공급 차질이 장기화될 경우 공장 가동을 멈춰야 한다는 게 농협 설명이다.
광주원예농협의 농업용 필름공장 관계자는 26일 “나프타를 공급하던 주요 석유화학 업체들이 잇따라 가동을 중단하거나 축소해 원료 수급이 안 돼 가동 중단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나프타는 플라스틱, 비닐 등 제품을 만드는 핵심 소재 ‘에틸렌’의 원료다. 농업용 필름을 만드려면 우선 에틸렌을 가공해 LLDPE, LDPE(저밀도 폴리에틸렌), EVA(에틸렌 초산 비닐) 등 석유화학 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문제는 나프타를 공급해 줄 매입처 LG 계열 공장이 줄줄이 가동을 멈췄고, 한화 계열 공장도 일부 생산라인을 중단해 공급량이 뚝 끊겼다는 점이다.
현재 확보된 원료 재고로는 4월 생산분까지 버틸 수 있지만,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질 경우 5월부터는 공장 가동 중단이 불가피하다는 게 필름공장 관계자 판단이다.
이주연 광주원예농협 농업용 필름공장장은 “농업용 필름은 주문 생산 방식이라 생필품과 달리 미리 대량 생산해 쌓아둘 수 없는 구조”라며 “당장 원료 수급이 정상화되더라도 최소 2~3개월, 길게는 반년까지 정상 가동이 지연될 수 있다. 원료 수입이 막히면 공장 가동이 멈추고 결국 농민들에게 제품을 공급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료 가격이 급등하면서 비닐 가격도 급등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나프타 가격이 t당 140만~150만원 수준에서 45% 이상 올랐기 때문이다.
이 공장장은 “현재 ㎏당 5000~6000원 수준인 비닐하우스용 비닐을 7000원까지 올리는 안을 검토 중이다. 멀칭용 필름 등 기타 제품도 2500~3000원 수준에서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라면 4월에 17만6000여t, 5월에는 32만3000여t의 원료를 써야 할텐데, 당장 수급이 안 되니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민간 업체 상황은 더 심각했다.
담양에서 농업용 멀칭 필름을 생산하는 A업체의 경우, 성수기에 한 달 100t의 원료를 확보해야 하는데 남은 물량이 10t 남짓으로 뚝 떨어져 일주일도 버티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2주 내 원료 공급이 이뤄지지 않으면, 공장을 ‘셧다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A업체 관계자는 “한화솔루션 여천공단에서 원료를 받아오는데 공급이 끊기면서 압출기 라인이 멈출 위기”라며 “다음 달 원료가 들어올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어 마냥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멀칭용 필름 역시 3월 기준 30여% 인상된 데 이어 4월에는 최대 50%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농민들도 파종기를 앞두고 농업용 비닐 수급에 비상이 걸리면서 파종 일정이 늦춰지고 생산비가 증가하는데, 생산량은 감소하지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무안군 현경면에서 고구마·감자·당근 농사를 짓는 강행원(53)씨는 “비닐 가격이 많이 올랐다. 미리 준비한 농가는 괜찮지만 늦게 준비한 농가들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현재 수급 상황은 이번 주 상황을 더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완도에서 애플망고를 재배하는 김미란(여·40)씨도 “지금은 비닐 가격을 따지기 앞서 구매할 수 있는 업체조차 찾기 힘든 상황”이라며 “비닐하우스를 설치하려면 미리 자재를 확보해야 하는데 공장 가동이 줄어들면서 업체 연결이 쉽지 않다. 이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몰라 막막한데 정부가 서둘러 대책을 세워 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글·사진=서민경 기자 minky@kwangju.co.kr
/김혜림 기자 bridge@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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