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이란 전쟁과 美 공수사단

박영서 2026. 3. 27.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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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수부대가 대(對)이란 지상전에 투입된다. 미 NBC 방송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육군 최정예 제82공수사단(82nd Airborne Division) 소속 병력 1000명 이상의 중동 지역 투입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하늘에서 투입되는 공수부대는 그동안 미군 작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번에도 다시 한 번 존재감을 발휘할 지 주목된다.

◆美 공수전력의 두 축, 82·101 공수사단

미국 공수사단의 역사는 현대 전쟁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낙하산을 타고 적진 깊숙이 침투하는 공수부대는 단순한 병력 이동 수단을 넘어, 전장의 판도를 바꾸는 전략적 도구로 자리 잡았다. 그 출발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낙하산을 전투 목적으로 처음 사용한 나라는 옛 소련이었다. 1932년 공수여단을 만들고 대규모 강하 훈련을 실시했다. 소련 공수부대원들의 공수작전 시연을 본 ‘나치 공군의 설계자’ 헤르만 괴링은 강한 자극을 받았다. ‘전격전’(Blitzkrieg) 전략을 보완할 수단으로 공중에서 병력을 투입하는 개념에 주목한 것이다. 괴링은 1936년 1월 공군 산하에 낙하산 부대를 창설하고, 수송기와 글라이더를 활용한 공중 침투 전술을 발전시켰다. 독일 공수부대(팔슈름야거)는 노르웨이·프랑스·네덜란드· 벨기에 전장에서 큰 전과를 올렸다. 팔슈름야거는 현대 공수전의 개념을 사실상 처음 완성한 부대로 평가된다.

이에 자극받은 미국도 공수부대 조직에 나섰다. 1917년 창설된 보병사단 제82사단이 1942년 미군 최초의 공수사단으로 재편됐다. 제82공수사단은 ‘올 아메리칸’(All American)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데, 이는 창설 당시 미국 전역에서 모은 장병들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이어 제101공수사단(101st Airborne Division)도 창설되며 미군 공수전력의 양대 축이 형성됐다.

두 사단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실력을 발휘했다. 82공수사단은 1943년 7월 시칠리아 상륙 작전에 투입됐다. 독일군의 방어가 예상보다 강력해 희생이 컸다. 전술적으로는 실패했지만 전략적으로는 공수부대의 가치를 입증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미군은 낙하 정확도, 통신, 아군 식별 체계 등을 대폭 개선했다. 이는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훨씬 정교한 공수작전으로 이어지게 된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101공수사단은 적진 깊숙이 낙하해 교량과 도로를 확보하면서, 독일군의 증원과 반격을 차단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에서 육군 레인저 부대 소속 밀러 대위와 대원들이 적진에 들어가 구한 ‘라이언 일병’이 바로 101공수사단 소속이다.

101사단은 같은 해 겨울 벌어진 벌지 전투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벨기에 바스토뉴에서 독일군에 포위된 101공수사단 장병들은 혹한과 보급 부족 속에서도 끝까지 버텨냈다. 이는 HBO 미니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2001)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공중강하에서 공중기동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 공수사단의 역할은 변화했다. 한국전쟁에서도 제한적으로 공수작전이 활용됐다. 미8군 사령관을 맡은 매튜 리지웨이는 2차대전 때 82공수사단 사단장 출신이었다. 공수부대 출신 지휘관의 등장은 대규모 공중강하 작전을 떠올리게 했지만, 전선이 고착화되면서 대규모 공수 투입의 필요성은 크게 줄어들었다. 리지웨이는 보병 중심으로 육군을 이끌었다.

한국전쟁이 끝나자 미군은 헬리콥터를 활용한 공중기동 개념을 발전시켰고, 이에 공수부대의 개념도 확장됐다. 베트남전에서 이러한 변화가 본격화됐다. 미국의 공수사단은 낙하산 투입 대신 헬리콥터를 활용한 ‘에어 모빌’(Air Mobile) 부대로 재편되어 베트남 전투에 투입됐다. 공중강습사단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는 공수부대가 시대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냉전이 끝난 이후 공수사단은 신속 대응군으로서의 역할이 강화됐다. 걸프·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에서 공수사단은 초기 투입 전력으로 활용되며 주요 거점을 신속히 장악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초기에는 특수부대와 공수부대가 결합된 형태로 작전이 진행되면서 공수전력의 현대적 활용이 재조명됐다.

오늘날 미국 공수사단은 단순한 낙하부대를 넘어 ‘신속 기동 타격군’으로 자리잡았다. 18시간 안에 세계 어디든 전개할 수 있는 신속대응 능력을 갖추고 있다. 작전도 갈수록 입체화되고 있다. 82공수사단 신속대응군의 경우 2020년 바그다드 주재 미국 대사관 피습 대응, 2021년 아프가니스탄 철수 작전에 투입됐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에는 폴란드에 급파된 적이 있다.

미국 공수사단의 역사는 기술과 전술이 어떻게 결합해 새로운 전투 방식을 만들어냈는지를 보여준다. 공수부대는 속도와 기습, 그리고 결단의 상징이다. 이번에도 그 공식이 통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박영서 기자 py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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