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 확 트인 인천 '최고 산' [초보기자의 거침없이 하이킹]

인천지하철 1호선 계산역 5·6번 출구로 나와 건물을 끼고 돌면 북쪽으로 시원하게 뻗은 대로가 눈앞에 펼쳐진다. 인천시내를 관통하는 주부토로는 계양산을 만나며 끝이 난다. 도로 왼편에는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식당들이 줄지어 있고, 오른편 체육공원과 계산고등학교에서는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사이로 캐주얼한 옷차림의 등산객들이 비탈길을 따라 산자락을 향해 걷는다. 이곳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지대가 낮아 이렇다 할 명산이 없는 인천 도심에서 산과 녹음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는 곳이다.
"계펠탑 보러 가자."
해발 395m라는 높이만 보고 계양산을 얕잡아 보는 서울 토박이에게 '계양산 정상에 에펠탑이 있다'고 하면 코웃음을 친다. 그러나 정말로 있다. 흔히 '계펠탑(계양산+에펠탑)'으로 불리는 송신탑은 계양산의 트레이드마크. 사실 '계펠탑'은 평범한 송신탑에 지나지 않지만, 계양산은 한 번쯤 가볼 만한 산이다. 인천 내륙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 조망이 빼어나고, 지하철역과 가까워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 수월하며, 산세가 험하지 않아 수도권 반나절 산행으로도 제격이기 때문이다. 인천의 진산이자 시민의 뒷동산임을 증명하듯 평일에도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걷고 또 걷고 싶은 산림욕장
오늘 산행은 임학공원에서 시작한다. 산자락을 따라 수많은 둘레길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들머리도 다양하지만, 계양구산림욕장과 계양산성을 차례로 들른 뒤 정상까지 가기 위해서다. 산림욕장은 계양산의 또 다른 힐링 공간. 임학공원에서 '계양구산림욕장' 팻말을 따라 걷다 보면 이내 바닥은 나무 데크길로 바뀐다. 노약자와 장애인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조성한 무장애길이다. 2012년부터 2020년까지 조성된 이 길은 지그재그 형태로 만들어져 경사가 완만하다. 휠체어나 유모차를 끌기에도 무리 없어 보인다.

이 길을 걷는 느낌은 수직의 오름보다 수평의 걸음에 가깝다. 왼쪽으로 걷다가 방향을 틀어 오른쪽으로, 다시 왼쪽으로 걷는다. 그러는 사이 시선의 방향도 바뀌고 풍경은 연속된다. 걷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영상처럼 이어진다. 가장 짧은 길로 고속도로처럼 뚫지 않고, 일부러 모든 땅을 훑고 가게 설계한 길이 고맙게 느껴진다. 지그재그의 데크길을 걷다 보면 생각의 속도는 걸음의 리듬에 맞춰지고, 당연하게 여겼던 '걷는 즐거움'이 되살아난다.
편백나무를 비롯한 상록의 침엽수들이 고개를 반쯤 숙이고 있다. 미국의 거대한 삼나무 숲처럼 화려하지도, 동네 야산처럼 빈약하지도 않다. 산림욕장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조경이다. 계수나무와 회양목이 많아 '계양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은 이제 또 다른 식생을 이뤄 산림욕장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자연생태관찰로도 손색없다. 나뭇가지 사이로 겨울 햇살이 내리쬐고, 데크 위에는 노란 햇살과 검은 그림자가 무늬를 이룬다. 무뎌졌던 몸의 감각들이 깨어난다. 산림욕장 한편에는 길의 25m의 작은 출렁다리와 구상나무 군락이 있다.

고개만 돌려도 인생샷, 계양산성
데크길을 따라 산림욕장 끝까지 오르면 '임학정'이라는 정자가 보인다. 넓은 데크 광장으로,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른다. 여러 둘레길과 등산로가 교차하는 이곳 갈림길에서 계양산성 이정표를 따라 걷는다. 몇 걸음 떼지 않아 시야가 트인다. 대관령 목장이 연상되는 하늘동산, 계양산성 터다. 겨울이라 누렇게 마른 잔디밭에 푸른 소나무들이 서 있다. 금방이라도 텔레토비가 뛰어나올 것만 같다. 텔레토비는 아니지만, 아까 마주친 중학생 소년들이 산성 터에서 뛰어놀고 있다.

계양산성의 흥미로운 점은 산의 정상(395m)이 아닌 동쪽 봉우리(202m)를 에워싸는 모양으로 축조되었다는 것이다. 즉, 정상에서 동쪽으로 230m 떨어진 능선에 있다. 이곳에서 '주부토(고구려 시대 부천 지역의 지명)'라고 적힌 기와를 비롯해 여러 유물이 출토된 것을 미루어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발견 당시 대부분의 성곽은 훼손된 상태였지만, 2000년대에 들어 발굴 조사가 시작돼 2019년까지 10차 조사가 완료되었다. 현재는 높이 2~3m 규모의 석축 일부가 남아 있다.
계양산성 언덕에 올라서면 왜 이곳에 산성을 쌓을 수밖에 없었는지 단번에 알게 된다. 왼쪽으로 계양구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뒤로 고개를 돌리면 멀리 한강변 들녘까지 막힘없이 펼쳐진다. 지대가 낮은 부평·부천 일대에서 우뚝 솟은 계양산은 인근 지역이 한눈에 조망되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인천의 북부와 한강 하류 지역을 통제할 수 있었다. 이 지역을 차지하고자 성을 축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산성 터에서 내려와 등산로에 합류하면 뾰족하게 솟은 바위 옆으로 '계성정'이라는 팔각정이 보인다. 그늘이 귀한 계양산에서 여름철 쉼터 역할을 하는 곳이다.

무한계단 끝에 펼쳐지는 일망무제
계성정에서 정상을 향해 능선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하느재 고개에 이른다. 이곳에서 경인여대·계양산성박물관이 있는 남쪽으로 내려갈 수도 있고, 경인아라뱃길과 맞닿은 북쪽으로 내려갈 수 있다. 계양산 남사면은 계양구 시내와 맞닿아 등산로가 잘 정비된 반면, 북사면은 개인 사유지나 군부대가 있어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진다. 정상이 있는 서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계단이 시작된다. 계양산은 '계단산'이라 불릴 정도로 계단이 많기로 악명 높다.
그러나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데크 계단으로 잘 정비돼 있고, 고개만 돌리면 지나온 길과 함께 조망이 트여 답답하지 않다. 초보자는 숨이 찰 수 있지만, 서두르지 않고 한 걸음씩 꾹꾹 밟아 오르면 어느새 정상이다.

756번째 계단을 넘어서니 '계펠탑'과 기묘한 모양의 정상석이 서 있다. 헬리콥터도 착륙할 만한 넓은 데크 광장에는 비와 햇볕을 피할 수 있는 팔각정과 벤치가 마련돼 있다. 사방이 트여 있어 시선을 한데 가두기 어렵다. 동쪽으로 김포공항 너머 북한산까지, 서쪽으로 청라신도시와 서해 너머 강화도 마니산까지 보인다. 서해와 가까운 만큼 계양산은 낙조 명소로도 유명하다. 남쪽으로는 광활한 인천시내가, 북쪽으로 경인아라뱃길 너머 검단·김포신도시에는 아파트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오래전부터 촌락이 형성된 계양산 자락 평야에는 택지 개발로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다. 주거의 모습은 달라졌지만, 계양산이 내어주는 품은 여전하다. 너른 평야에 우뚝 솟은 인천의 진산이자 시민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뒷동산. 이런 산이 얼마나 될까. 계양산은 보물 같은 산이다.


산행길잡이
계양산에는 수많은 둘레길과 등산길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북사면은 접근성이 좋지 않아 보통 시내와 맞닿아 있는 남사면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 기점은 크게 장미원, 계양문화회관, 경인여대, 임학공원으로 나뉜다. 각 기점 간 거리는 도보 5~10분 거리로 멀지 않다. 인천지하철 1호선을 이용한다면 계산역에서 가까운 경인여대와 계양산성박물관을, 산림욕장을 걷고 싶다면 임학공원을 들머리로 삼는 것을 추천한다. 산행 시간은 모두 2시간 안팎으로 대동소이하며, 어느 쪽에서 출발하나 결국 하느재 고갯마루에서 만난다. 임학공원에서 출발해 산림욕장을 둘러보는 것은 넉넉잡아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산림욕장 오른편에 작은 출렁다리와 구상나무 군락이 있다. 산림욕장 끝에 있는 임학정에서 계양산성을 지나 하느재까지 가는 구간에 작은 계성정이 있어 쉬어가기 좋다. 하느재를 지나면 이내 계단길이다. 경사는 다소 급할 수 있지만 20분 정도 소요된다. 정상에는 넓은 데크와 함께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사방으로 시야가 뻥 뚫려 있어 일대를 조망하기 좋다. 하산길은 안전한 계단을 따라 하느재로 내려선 다음 경인여대로 하산하는 것이 빠르다. 내려갈 때는 올라갈 때보다 속도가 더 빨라서 30~40분 정도면 경인여대에 닿는다.
교통
인천지하철 1호선을 이용한다면 계산역 5·6번 출구로 나와 대로를 따라 계양산 방면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
계양산성박물관 맞은편과 경인여대 후문에 각각 공영주차장이 있어 차를 가져올 수도 있다. 계양산성박물관 공영주차장은 지하주차장도 갖추고 있다.
주차요금은 최초 30분까지 600원, 30분 이후 15분당 300원이니, 3시간 산행한다고 가정했을 때 3,600원 정도 나온다. 전일 주차권은 6,000원이다.
맛집 (지역번호 032)
계산역부터 계양산 자락까지 산행 후 허기를 책임질 식당들이 많다. 그중 도영순두부(543- 9064)는 22년째 운영하는 계양산 맛집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따뜻한 둥글레차를 내어준다. 주 메뉴가 담백한 두부전골이라 부담이 없어 산행 전과 산행 후 어느 때 들러도 좋다. 손바닥만 한 두부와 새우젓·된장·황태로 국물 낸 육수가 조화를 이룬다. 입맛 돋우는 여섯 가지 반찬은 덤.
두부전골 小 2만5,000원, 中 3만 원, 大 4만 원.

옥돌정쌈밥(543-9948)은 신선한 쌈 채소와 우렁된장, 고기 메뉴가 조화를 이루는 쌈밥집이다. 쌈은 무한 리필이며, 제육볶음·대패삼겹·생삼겹 등 고기 종류가 다양하다. 등산 후 든든히 배를 채우기 좋다.
우렁된장 1만 원, 대패삼겹 1인분 1만2,000원, 생삼겹 1인분 1만6,000원 .
월간산 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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