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家] 가족을 지켜봐 온 나무 곁에서 가족의 시간 품는 꿈의 둥지

이미지 기자 2026. 3. 27.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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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합천군 율곡면 2층 단독주택

삼각형 땅·개울 거스르지 않고
느티나무 마주한 2층 동향주택

소통하기 좋게 내부 공간 설계
대화 많고 화목한 가족과 닮아
집은 삶을 담는 그릇입니다. 다량으로 공급된 일률적인 아파트가 아니라 저마다 모습을 지닌 주택을 찾아 나섰습니다. 건축은 결국 사람에 따라 달라집니다. 누가 사느냐에 따라 집 모양새도 달라집니다. 획일화한 주거유형에서 벗어나 주변 환경과 조화롭게 지어진 경남 우수주택에서 건축주와 설계자를 만나 '그 집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합천군 율곡면 2층 단독주택 전경. 집 왼쪽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일부 보인다. /건축사사무소 서

집 짓기는 평생의 안식처를 만드는 일이었다. 소년은 만약 청년이 되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운다면, 어린 시절 형님과 함께 보냈던 느티나무 있는 마당에 꼭 '내 집'을 짓겠다고 다짐했다.

안수환(54)·이미란(48) 부부는 합천 율곡면 영전리에 2층 단독주택을 지었다. 선동마을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집터는 안 씨가 고사리 손으로 형님 일손을 돕던 축사다. 그곳엔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 안 씨는 "친구 할머니가 17살 때 시집올 때부터 있던 나무"라며 "그 할머니가 6.25전쟁 당시 나무 밑에 숨었다는데, 당시에도 두 팔 벌려 나무를 안고도 남았다고 하니 수령이 200년은 넘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곳에서 안 씨 형님은 돼지 500마리 키웠다. 안씨와 형님 터울은 17살. 형님은 안 씨가 10살이 될 때까지 축사를 운영하다 인근 민가 민원 탓에 농장을 옮겼다. 이후 터는 비워져 있었다.

이 땅이 안 씨 소유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원래 가족 소유였지만 한때 경매로 넘어갔다가 다시 웃돈을 주고 사들였다. 그 사이 2억 넘는 빚도 생겼다. 애견 인공수정 사업을 하던 그는 6년 만에 빚을 청산했다. 그는 토지를 되찾고서 수년간 조경과 기반 정비를 이어가며 건축 시점을 저울질했다.

안 씨는 "느티나무 곁에 정착하겠다는 꿈을 품고 10년 전부터 축사를 허물고 직접 조경을 가꾸며 터를 닦아왔다"며 "가장으로서 55세 이전에는 정착할 준비를 마쳐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느티나무는 어린 시절 돌아가신 아버지, 또 늘 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형님 같다.
안수환(왼쪽) 씨와 서향란 건축사가 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미지 기자

그의 '정착 준비'는 자녀가 잘 성장했고, 경제적으로 사업이 안정이어서 노후도 대비할 수 있는 시점이었다. 안 씨는 "심리적으로 쫓겨 다니지 않고 내 집에서 편안하게 죽어도 된다는 생각이 들 때 집을 짓기로 했다"며 "그동안 수없이 계획을 수정하고 정비하면서 목표만을 위해 달렸다"고 말했다.

집 설계는 수월하게 진행됐다. 서향란(건축사사무소 서) 건축사는 건축주가 의뢰한 '2층 집'을 동향으로 그렸다. 서 건축사는 "집터가 삼각형이고 앞뒤로 물이 흐르는 지형을 고려해 동쪽을 바라보는 삼각형 집으로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합천 율곡면사무소에서 선동소류지를 따라 마을로 들어서면 2층 집이 보인다. 라임 베이지 대리석인 외벽 덕에 환해 보인다. 장식 요소를 최소화한 대신, 빛과 그림자가 이 공간의 주된 디자인 요소로 작용한다.

삼각형 대지 위에 삼각형 형태로 지어진 주택은 대지의 형태를 그대로 따르면서 불필요한 동선과 자투리 공간을 줄이고 공간 효율을 높였다. 집 방향을 동쪽으로 잡은 것은 채광과 일조를 극대화했고, 아침 햇빛이 깊숙이 들어오는 동향 배치는 실내 환경을 쾌적하게 유지한다. 주요 생활공간에 자연광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1층 거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천장을 과감히 들어낸 수직 개방 공간이다.

1층에 부부 침실과 거실이 있고, 2층은 자녀 방 2개가 있다. 그런데 2층 딸 방에서 접이식 창을 열면 아래 거실이 보인다. 일반적인 단독주택이 층별로 기능을 나누는 데 그치는데, 이 주택은 거실을 중심으로 위아래 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단순한 층 분리를 넘어 하나의 입체적인 생활 영역으로 확장한 셈이다.

특히 2층 방에 설치된 접이식 내부 창은 이러한 구조를 완성하는 핵심 장치다. 창을 닫으면 독립된 개인 공간이지만, 이를 열면 곧바로 1층 거실과 시선과 소리가 이어진다. 단순한 채광용 창을 넘어 가족 간 소통을 유도한다.
집 내부는 천장을 턴 수직 개방 공간이다. 2층 접이식 창문을 닫으면 자녀 방, 열면 1층 거실과 연결하는 통로가 된다. /이미지 기자

서 건축사는 "보통 2층 복층 구조는 복도에서 1층을 내려다보게 되어 있지만, 이 집은 2층 창문을 열면 방 안에서 바로 1층 거실의 부모님과 소통할 수 있는 독특한 구조"라며 "또 2층 두 자녀 방에 각각 별도 테라스를 두어 사생활도 존중하면서 마을 풍경도 즐길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서 건축사가 이렇게 설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가정적인 집 분위기 때문이다. 서 건축사는 "부모와 자녀 간 대화가 많고 화목한 분위기 특성을 살렸다"고 말했다.

2층 집은 창도 많다. 안 씨는 설계 이후에도 창을 더 늘렸다. 방향과 크기를 가리지 않고 집 안 어디서든 바깥 풍경이 들어오도록 했다. 담장도 세우지 않았다. 이는 숨기길 꺼리는 당당한 안 씨 성격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우리 집에서 하늘과 산, 나무를 마음껏 볼 수 있어야 한다"며 "타인이 우리 집을 보는 것을 내가 관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공사기간은 4개월 정도 걸렸다. 이 과정에서 딱 한 번 고비가 있었단다. 안 씨는 "공사 중 가족들이 불만을 한꺼번에 쏟아낸 적이 있는데, 그때는 청문회 같았다"며 웃었다. 이어 "당시에는 서운했지만 결국 가족 의견을 반영해 인테리어를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안 씨는 또 다른 목표를 세웠다. 바로 새 식구를 맞을 준비다. '좋은 남편'에서 '아버지'로, 다시 '할아버지'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언젠가' 생길 손자를 기다리며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바꾸고 싶단다. 수직 개방 공간을 활용해 다락을 만들 구상도 하고 있다. 이 구상에 대해 건축사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은 아니고, 아지트를 만들 수 있다"며 "처음부터 끝까지 가족사랑 뿐이다"라고 말했다.
합천군 율곡면 2층 단독주택 야경 모습. /건축사사무소 서

느티나무 아래에서 시작된 한 소년의 꿈은 한 채의 집이 됐다. 그리고 집은 여전히, 가족의 시간에 맞춰 조금씩 변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미지 기자

<2024년 우수주택 선정 합천군 율곡면 단독주택 개요>

규모 : 지상 2층

구조 : 철근콘크리트

주요재료 : 알루미늄복합패널·대리석

전체면적 : 155.52㎡

공사비 : 3억 6000만 원

설계자 : 서향란

<경남 우수주택이란?>

경남도는 매년 우수주택 40동을 선정한다. 그해 준공한 경남지역 단독주택 중 18개 시·군 추천과 경남도 우수주택 선정위원회 심사를 거친다.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고 거주자에게 맞는 효율적인 공간구성, 친환경 건축기법 등이 심사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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