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정밀’에서 ‘LIG D&A’까지…LIG넥스원, 멈추지 않는 50년

안옥희 2026. 3. 27.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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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포커스]

구본상 LIG그룹 회장이 UAE 아부다비에서 열린 ‘IDEX 2025’ 현장에서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대통령에게 장거리지대공유도무기 ‘L-SAM’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LIG넥스원

3월 초 아랍에미리트(UAE)의 밤하늘은 평온하지 않았다. 이란에서 날아든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이 도심을 향해 쏟아지던 절체절명의 순간 어둠을 뚫고 솟구친 것은 대한민국이 빚어낸 ‘하늘의 명사수’ 천궁-II(M-SAM Block-II)였다. 60여 발의 요격 미사일을 사출해 기록한 표적 요격률은 96%.

특히 까다로운 저고도 순항미사일 공격은 단독으로 투입되어 8발을 모두 잠재웠다. “One Shot, One Kill ROK.” 한 해외 네티즌이 SNS에 남긴 이 짧은 감탄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천궁-II의 성공으로 한국 방산 기술에 대한 글로벌 수요가 폭발할 것”이라고 타전했다. 국산 무기를 따라다니던 유일한 꼬리표인 ‘실전 경험 부재’가 증발한 순간이었다.

실전의 언어는 즉각 외교와 경제의 언어로 번역됐다. 호르무즈해협 봉쇄 위기 속에서 UAE는 한국에 ‘원유 2400만 배럴 0순위 공급’이라는 파격적 화답을 보냈다. “한국보다 먼저 원유를 받는 나라는 없을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 UAE가 보낸 원유는 순차적으로 석유공사 여수 비축기지에 입고 중이다.

구윤철 재정경제부 장관은 3월 24일(현지 시간)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중동 국가들이 지금 한국산 미사일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며 “90% 이상의 성공률과 정확성 때문에 무기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1978년 9월 21일 금성정밀공업(현 LIG넥스원) 금오공장 자재창고를 방문한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LIG넥스원

 닉슨 독트린에 놀란 박정희, LG를 불렀다

LIG넥스원의 출발은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에서 시작된다. 1970년대 초 닉슨 독트린으로 주한미군 감축이 가시화되자 박정희 정권은 자주국방을 국가 생존의 의제로 선언했다.

정부는 10대 그룹에 방산업체 하나씩을 할당했다. 대우에는 화력, 현대에는 기동, 한화(삼성)에는 탄약·추진체. 럭키금성그룹이 받은 몫은 전자·정밀 유도무기였다. 1976년 2월 24일 경북 구미에서 LG그룹 산하의 금성정밀공업이 탄생했다.

초기 기반은 미국산 무기의 ‘창정비(MRO)’였다. 1976년 호크(HAWK) 및 나이키 허큘리스 유도탄의 정비 사업을 맡으며 기술의 기초를 다졌다. 거대한 미사일을 분해·재조립하며 내부 전자회로의 구조와 원리를 체득하는 과정은 사실상 ‘리버스 엔지니어링’ 교육과 다름없었다.

1978년 9월 경북 구미 금오공장을 방문한 박 전 대통령은 방명록에 “여러분이 국가를 지킨다는 자긍심을 갖고 일하라”며 휘호를 남겼다. 구미의 전자 인프라와 방산의 만남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구미는 박 전 대통령이 전자·정밀산업의 전진기지로 설계한 도시였다. LG전자의 제조 역량과 방산 정밀기술이 교차할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이었다. 지금도 43만㎡ 사업장에서 1600여 명이 천궁-II를 비롯한 유도무기를 생산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가 한국에서 도입한 방공 미사일 천궁-Ⅱ(M-SAM2). 사진=LIG넥스원
천궁-Ⅱ 수출 현황. 그래픽=송영 기자

 LG 둥지 떠나 독자 노선, 이란전서 ‘스텔스 경영’ 결실

LG그룹의 울타리 안에서 30년 가까이 숨을 고르던 LG이노텍의 시스템(방산)사업부는 2004년 분사해 넥스원퓨처로 홀로서기에 나섰다. 당시 방산 사업은 LG이노텍 내 시스템(방산)사업부 형태로 운영됐다.

2007년 LIG넥스원으로 이름을 바꾸며 범LG가의 일원이 된 이 기업의 중심에는 구본상 LIG그룹 회장이 있다. 구 회장은 합류 직후부터 중남미와 동남아 현장을 누비며 2012년 콜롬비아에 함대함 유도무기 ‘해성’을 수출, K방산의 영토를 지구 반대편까지 넓혔다.

탄탄대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12년 LIG건설 사태와 2015년 ‘현궁’ 개발 비리 의혹으로 인한 수사 등 시련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현궁 관련 의혹은 2017년 대법원에서 전원 무죄 판결을 받으며 기술 개발 과정의 정당성을 법적으로 공인받았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구 회장은 2021년 경영 복귀 후 한층 과감해졌다. 구 회장은 방산을 국가에 대한 책임으로 인식하고 R&D 인력 비중을 전체의 절반 이상으로 유지했고, 복귀 첫해 1분기 R&D 비용을 전년 대비 100% 이상 증액하며 정밀 기술의 성벽을 쌓았다.

과거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 매각 이후 금융그룹의 색채를 완전히 지우고 ‘방산 전문 기업’으로 정체성을 재편한 승부수는 신의 한 수가 됐다. 지배구조 역시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지난 2월 기준 지주회사인 (주)LIG가 38.21%의 지분을 보유하며 LIG넥스원의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구 회장 등 오너 일가가 지주사를 통해 넥스원을 안정적으로 지배하는 구조는, 장기적 투자가 필수인 방위산업에서는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을 가능케 하는 동력이 된다. 라면과 전투식량을 들고 중동 현장을 누비는 그의 ‘스텔스 경영’은 결국 26조원 규모의 수주 잭팟으로 돌아왔다.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인 ‘천궁’이 LIG넥스원의 경북 구미 공장에서 제작되고 있다. 사진=LIG넥스원

 분업 체제의 붕괴와 ‘천궁-II’의 급부상

천궁-II의 성공 비결은 명확하다. 미국 패트리엇(PAC-3) 대비 절반 수준인 ‘가성비’와 360도 전 방향 대응이 가능한 ‘콜드 론칭’ 기술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이란 전쟁으로 한국 방산 기업들이 미국산 PAC-3의 저가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2001년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MD) 사업이 출발할 때 국내 방산 기업들의 역할 분담은 명백했다. 레이더는 한화시스템(당시 삼성탈레스), 교전통제시스템(ECS)은 LIG넥스원, 발사대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였다. 하지만 시장이 커지자 24년간 이어온 방산 분업 체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과거 레이더(한화)와 교전통제(LIG)로 나뉘었던 평화로운 공생은 끝났다. 한화시스템이 교전통제 시장에 발을 들였고 LIG넥스원은 레이더 입찰로 맞불을 놨다. 이라크 수출 과정에서 불거진 양사 간의 잡음은 K방산이 ‘내수용 조달’에서 ‘글로벌 무한 경쟁’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됐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KMD 사업에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던 시대는 사실상 끝났다는 평가다. 충돌은 이미 현실화했다. 2025년 LIG넥스원이 이라크와 체결한 3조 7000억원 규모의 천궁-II 수출 계약 과정에서 핵심 부품(레이더, 발사대)을 생산하는 한화시스템·에어로스페이스와 사전 협의 및 가격·납기 설정 문제로 갈등을 빚었으나 방위사업청이 중재에 나서 봉합됐다. L-SAM 수출 국면에서 같은 잡음이 반복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업계가 주목하는 진짜 승부처는 2030년 개발 완료를 목표로 하는 ‘천궁-III’(M-SAM Block-III)다. 2025년 9월 본격적인 체계 개발에 착수한 천궁-III는 AI 기반의 지능형 레이더와 GaN(질화갈륨) 반도체 기술을 집약해 현대전의 게임체인저인 극초음속 미사일까지 잡아낼 ‘비대칭 전력’으로 설계됐다.

하드웨어의 LIG넥스원이 최근 통합 방위 솔루션 고도화를 위해 소프트웨어 강자 팔란티어와 손을 잡은 실질적인 배경도 결국 이 ‘지능형 요격 체계’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LIG넥스원 수주잔고와 매출채권회전율 추이. 그래픽=송영 기자

 1203% 급등 그리고 남은 과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당시 6만8600원이었던 LIG넥스원 주가는 4년 만인 2026년 3월 장중 89만9000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미국·이란 전쟁 여파 속에 6거래일 만에 49.12% 급등한 결과로 4년 전 대비 상승률은 1203%에 달한다.

4년 만에 수주잔고는 세 배를 넘겼다. 계약에서 납품까지 수년이 소요되는 방위산업 특성상 수주잔고는 향후 수년 치의 확정 매출을 의미한다. 

2025년 영업이익은 3229억원을 기록, 전년 대비 44.5% 증가한 역대급 실적을 달성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4조3069억원으로 31.5% 증가했으며 이는 천궁-II 등 수출 호조가 주원인이다. 영업이익률이 20% 중반대에 달하는 중동 수출 비중이 확대되면서 이익 체질도 구조적으로 개선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2025년 5월 공정거래위원회는 LIG그룹을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신규 지정했다. LIG넥스원의 자산이 1년 새 3조8000억원에서 5조9000억원으로 늘었고 그룹 전체 자산 7조1000억원으로 대기업 순위 69위에 올랐다. 창업 50년 만에 처음 대기업 반열에 들었다.

다만 화려한 실적 이면의 재무 건전성 지표는 냉정하게 살펴볼 대목이 있다. 2025년 매출채권회전율이 3.17%로 하락한 점은 리스크 요인이다. 중동 수출 급증으로 대금 회수 주기가 길어진 결과다.

중동 수출 특성상 수주는 확정됐으나 실제 대금 회수 주기가 길어지면서 장부상 이익과 실제 현금흐름 사이에 미스매치가 발생하고 있다. 수주는 쌓이는데 현금 회수가 따라오지 못하면 유동성 부담이 커진다.

수주가 늘수록 원자재비와 R&D 비용 지출은 선행되기 때문에 향후 정교한 유동성 관리가 기업가치 유지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3월 24일(현지 시간) LIG넥스원과 팔란티어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 팔란티어 사무소에서 '통합방공망 및 무인체계 솔루션 개발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체결행사를 마친 신익현 LIG넥스원 대표이사와 라이언 테일러 팔란티어 최고수익책임자(CRO) 겸 최고법률책임자(CLO)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LIG넥스원

 지상에서 공중·우주까지…유도무기 명가의 다음 스텝

LIG넥스원의 무기 포트폴리오는 저고도부터 고고도까지 층위가 촘촘하다. 저고도 대공 신궁·천마, 중고도 천궁 시리즈, 고고도 L-SAM, 함대함 해성, 함대공 해궁, 보병용 현궁·비궁, 경어뢰 청상어·중어뢰 범상어. 2025년 11월에는 L-SAM 양산 계약(1639억원)을 방위사업청과 체결하며 고고도 방어 역량을 공식화했다.

그 끝을 공중 무장으로 잇고 있다. 2025년 12월 국방과학연구소와 체결한 ‘단거리 공대공유도탄-II(단공공-II)’ 체계개발 계약(사업총액 2070억원, 2032년 완료)은 KF-21 전투기에 탑재될 국산 공대공 미사일 개발 사업이다.

이미 한국형 GPS 유도폭탄 KGGB와 장거리 공대지유도탄(천룡)의 체계종합 업체인 LIG넥스원이 단공공-II까지 더하면 KF-21 항공 무장 체계 전반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게 된다.

LIG넥스원의 항공무장체계 이미지. 사진=LIG넥스원

신익현 LIG넥스원 대표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WDS 2026’에서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KF-21 및 FA-50용 항공 무장 개발과 통합을 위한 업무협약(MOU)’ 체결 자리에서 “국산 전투기와 국산 항공 무장 체계의 패키지 전략으로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K방산의 위상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KF-21이 해외에 수출되면 그 항공무장까지 함께 파는 계산이 깔려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LIG넥스원은 최근 불거진 KAI 민영화설과 관련, 인수합병을 검토하기 위한 내부 TF를 가동한 것으로 파악됐다. 무장을 만드는 LIG넥스원과 기체를 만드는 KAI가 합쳐질 경우 항공 무장 패키지 수출에서 시너지가 크다는 판단이지만 KAI 몸값(수출입은행 보유 지분만 5조원대)과의 간극은 넘어야 할 산이다.

우주도 새 무대가 됐다. 2026년 2월 차세대 정지궤도 기상위성 천리안 5호(GK5) 민간 주관 개발에 착수했고 2027년 하반기에는 자체 합성개구레이더(SAR) 위성 발사도 추진 중이다. 2025년에는 방위사업청과 1조5000억원 규모 한국형 전자·전기(Block-I) 체계개발 사업 계약을 체결해 전자전 영역으로도 발을 넓혔다.

칼리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국방부 장관이 리야드에서 열린 ‘국제방산전시회(WDS) 2026’에서 LIG넥스원 부스를 방문해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LIG넥스원

 LIG D&A로 사명 변경…방공망 너머 AI·로봇으로

3월 31일 주주총회에서 사명이 바뀐다. LIG넥스원이 ‘LIG디펜스&에어로스페이스(LIG D&A)’가 되는 것이다. 2007년 이후 19년 만이다. 로봇도 미래의 한 축이다. 2024년 7월 인수한 미국 고스트로보틱스의 사족보행 로봇 ‘비전60’은 미군·영국군·인도군에 납품된다.

인수 이후 자본잠식과 연간 430억원 영업손실이라는 쓴맛을 보고 있지만 2025년 말 아시아의 한 국가 정부와 100대 이상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반전의 실마리를 잡았다. 이 로봇이 천궁-II의 레이더·교전통제 네트워크와 연동될 경우 유무인 복합전투체계의 핵심 부품이 된다는 게 LIG넥스원의 구상이다.

그리고 3월 24일(현지 시간) LIG넥스원은 미국 AI 소프트웨어 기업 팔란티어와 통합방공망 및 무인체계 솔루션 개발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전격 체결했다. 저고도부터 고고도까지 각종 공중 위협을 막는 통합 방공망과 임무 유형별 무인 플랫폼 등 종합적인 분야에서 협력한다.

50년간 쌓아온 하드웨어 제조 역량에 팔란티어의 AI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결합해 UAE를 발판으로 중동 전반으로 수출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안두릴이 소프트웨어로 무기의 판을 다시 짜는 회사라면, LIG넥스원은 실전에서 검증된 하드웨어와 AI를 결합하는 방향으로 승부를 건다.

장남현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협력 관계 구축 이후 R&D를 통한 기술 고도화를 통해 천궁-II를 비롯한 LIG넥스원의 방공 솔루션 경쟁력이 증대될 것으로 보인다”며 “전쟁 발생 이후 중동 지역 시장 규모 역시 지속해서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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