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의 ‘입과 귀’였던 이연향 통역사 은퇴…“통역 가장 어려웠던 대통령은 오바마·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반도 지도자를 만날 때마다 ‘입과 귀’ 역할을 해 온 이연향 미 국무부 통역국장이 지난 2월 퇴임할 때, 트럼프 대통령은 특별히 친필 서명을 담은 감사장을 전했다. 사소한 농담이나 미묘한 뉘앙스까지 놓치지 않고 전달해 2018~2019년 북·미 정상회담의 ‘숨은 영웅’이란 평까지 받았던 이 국장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예우였을 것이다.
16년 7개월의 국무부 생활을 마무리한 이 국장은 26일(현지시간) 워싱턴 특파원 간담회에서 “북·미 정상회담 통역은 정말 제가 하고 싶어서 자청한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어머니가 평양에서 태어나신 분이어서 이북 사투리를 듣고 이북 음식을 먹으며 자란 터라, 평양에 간 것은 정말 저에게 큰 의미였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세계 무대로 나오는 첫 자리였기 때문에 회담장의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제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했다”면서 “사실 저도 긴장했지만, 일단 제 목소리가 떨려선 안 됐다. 대화의 속도를 조절해서 차분하고 자신감 있게 말하려 노력했다”고 전했다.
그는 북·미 정상회담의 뒷얘기를 들려달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보안 의무 때문에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다면서도 “딜의 성사 여부와 관계없이 두 사람 모두 굉장히 솔직했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무대가 처음이었던 김 위원장이 당시 정상회담에서 “굉장히 잘 대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이 국장은 전업주부 생활을 하다 뒤늦게 한국외대 통역번역대학원에 진학하면서 통역의 길로 처음 접어들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몬트레이 통·번역대학원 교수로 일하다 한국에 돌아와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에 자리를 잡았다.
미 국무부와의 인연은 2009년 “국무부에 한국어 통역 정직원 자리를 신설했는데 지원을 해달라”는 국무부의 갑작스러운 요청 때문에 시작됐다. 이 국장은 “사실 안정적인 교수직을 버리고 통역사로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면서 “하지만 한국어 통역 질에 문제가 있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도와달라는 국무부의 말을 듣고, 통·번역 분야의 원로로서 사명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는 2014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방한, 2022년 조 바이든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의 정상회담 등 보수·진보 정권을 가리지 않고 쓰임을 받았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통역도 그의 몫이었다. 빠르게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주로 백인들이 관리직을 맡아 온 국무부 통역국에서 국장으로 임명돼, 70여 명의 상근직과 1000여 명의 프리랜서 통·번역가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국장은 통역이 가장 쉽지 않았던 정상을 꼽아달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오바마 전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을 꼽았다. 그는 “오바마 전 대통령은 변호사 출신이라 문장 하나하나가 법률 문서같이 길고, 단어도 구체적이어서 통역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생각의 속도가 빠른 만큼 이야기의 전환도 빨라서 그 연결 고리를 집어넣는 것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외교 통역은 어감과 표현 하나하나 신경 써야 하고,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환경에서 하기 때문에 굉장히 어렵다”면서 “리스크가 커 잘해야 본전이라 통역사들이 잘 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외교 통역을 하는 분들은 일종의 사명감으로 한다”면서 “계속 경험을 쌓아야 잘하게 되는 만큼 혹시 실수하더라도 너그럽게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워싱턴 | 정유진 특파원 sogun77@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특수부대 수백명 투입·이란군과 이틀간 ‘격렬 교전’···긴박했던 실종 미군 구출작전
- [단독]캄보디아 교도소에 ‘제2 박왕열’ 있다···“대량 마약 국내 유통, 송환 여러 번 좌절”
- [단독]‘이재명 망했다’던 유튜버 성제준, 음주운전 송치···면허정지 처분도
- 손흥민, 생애 첫 한 경기 4도움 폭발…에이징커브 논란 소속팀서 단번에 잠재웠다
- 대기권서 소멸했나···아르테미스 2호 탑재 국산 초소형 위성, 끝내 교신 실패
- [단독]서울시, 공무원 ‘자기돌봄 특별휴가’ 연 1일 추진···“번아웃·공직 이탈 막는다”
- [속보] 트럼프 “이란과 협상중···6일까지 합의 가능성”
- ‘세계 3대 디자인상’ 구두수선대·가로판매대 온다···서울시, 16년 만에 전면 개편
- [영상]걷는 빨래 건조대인 줄…세상에 없던 ‘이상한 로봇’ 등장
- ‘안젤리나 졸리 딸’ 샤일로가 K-팝 댄서로?···다영 뮤직비디오 티저 깜짝 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