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좀 도와줄래?” 놀이터에서 벌어진 ‘유괴 해프닝’

민소영 2026. 3. 27.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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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강 모 씨는 학교에서 보낸 긴급 문자와 가정통신문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최근 학교 인근 한 아파트 놀이터에서 학생 유괴 시도로 의심되는 사례가 발생해 주의를 부탁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강 씨는 학부모 메신저 단체 대화방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난리라며, 부모끼리 서로 번갈아 가며 아이들을 데리러 가고 데려오는 '품앗이'에 나설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제주에서 '길을 안내해달라'며 아이들에게 말을 건넸다는 유괴 의심 사건이 잇달아 알려지면서 부모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 아파트 놀이터에서 벌어진 일…'도와달라'던 할머니 정체는?

제주시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는 최근 어린이 유괴·납치 의심 사례가 발생했다며 학교전담경찰관(SPO)을 통해 신고했습니다.

해당 초등학교가 어제(26일) 학부모에게 보낸 가정통신문에는 지난 22일 저녁 8시쯤 제주시의 한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초등학생들에게 한 여성 노인이 다가와 '머리가 아파 잘 못 걷겠으니, 집까지 데려다 달라'며 말을 건넸고, 이 같은 부탁을 아이들이 거절하자 욕설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최근 제주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아동 유괴·납치 유의를 부탁하며 학부모에게 발송한 문자메시지.


무서움을 느낀 학생들은 근처 관리사무소를 찾아가 이 같은 상황을 이야기했습니다. 당시 인상착의 등에 대해선 '할머니가 하얀색 차를 타고 갔다', ' 마스크와 벙거지를 착용했고 노란색 크로스백과 빨간 조끼를 입고 있었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해당 학교는 학생으로부터 이 같은 내용을 전해듣고 어제 가정통신문을 통해 어린이 유인 의심 사례가 발생했다며 학부모에게 주의를 요청했습니다.

■ CCTV 속 '관리사무소로 뛰어오는 아이들'…할머니는 어디로?

실제 해당 아파트 단지를 찾아가 보니 아이들이 관리사무소를 향해 달려오는 모습과 관리실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방범 카메라에 담긴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KBS 취재진에게 "아이들이 관리사무소로 달려와 '어떤 할머니가 자기 집에 좀 데려달라'고 했다. 아이들이 안 된다고 하니 한참 뒤에 차가 왔고, 할머니가 이 차를 타고 가셨다더라"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경찰은 학생 진술을 토대로 현장 CCTV를 확인해 한 여성 노인을 용의자로 특정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조사 결과 실제 할머니가 길을 걷다 넘어져 다쳤고, 아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사실이 있는 걸로 확인했다"라며 "범죄 혐의점이 없는 것으로 보고 사건을 종결 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최근 제주에 있는 초등학교 2곳에서 잇달아 발송한 아동 유괴·납치 유의를 부탁하는 가정통신문.


제주에서 학교 가정통신문을 통해 어린이 유괴 의심 사례가 알려진 건 또 있었습니다.

학교 측에선 공문을 통해 지난 19일, 제주시 한 아파트 단지 인근에서 당시 학원에 가려던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에게 한 여성 노인이 접근하며 길을 묻더니, 같이 가달라며 팔을 잡아끄는 일이 있었다고 적었습니다.

이 같은 내용을 인지한 경찰은 인근 CCTV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아직 의심 차량이 발견되진 않은 것으로 전해졌지만, 추가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근 며칠 사이 제주에서 크게 이슈가 된 두 사건은 묘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낯선 할머니가 "집에 데려다 달라"거나 "길을 모르니 안내해달라"고 먼저 아이들에게 다가왔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이 거절하자 차를 타고 자리를 피했다는 신고 내용입니다.

이 때문에 지역 사회에서는 '어린이 유괴 시도'에 대한 불안감이 순식간에 증폭됐었는데, 일단 경찰이 '범죄 혐의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놓자, 한숨 돌리게 됐습니다.

■ 지난해 전국 유괴 사건 437건…5년 새 2배↑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2021~2025년) 유괴 건수' 자료를 보면 지난해 발생한 유괴 사건은 437건으로, 이 가운데 305건이 미수였습니다.

지난해 9월에도 서귀포의 한 초등학교 인근에서 초등학교 여학생에게 '알바하자' 등 말을 걸며 유인하려 한 혐의로 30대 남성이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형법상 '유괴'라는 별도 죄명은 없습니다. 이에 따라 경찰은 형법상 약취, 유인, 인신매매, 추행 등 목적 약취 등을 기준으로 통계를 산출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사건 대부분은 피의자가 검거됐는데, 지난해 검거율은 93%(437건 중 410건)였고, 2021년부터 2024년 사이에도 대부분 90% 안팎을 기록했습니다.

■ 낯선 사람 부탁…큰 소리로 "싫어요, 안 돼요, 도와주세요!"

이번 주 제주를 떠들썩하게 한 잇단 어린이 유괴 의심 사례는 일단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상황에서 어린이들은 배운 대로 잘 대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학교에선 유괴·납치 예방을 위해 모르는 사람이 같이 가자고 요구할 땐 "안돼요", "싫어요"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즉시 사람이 많은 곳이나 주변 관리사무소, 상가, 편의점 등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으로 피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 모르는 사람이 강제로 데려가려고 할 땐 큰 소리로 "도와주세요"라고 외쳐 주변에 알리고, 낯선 차량이 접근하면 일정한 거리를 지키고, "차에 타라"는 권유는 단호히 거절할 것 등도 지도하고 있습니다.

우락부락하고 험상궂게 생긴 사람만이 '낯선 사람'은 아닙니다. 겉보기에 '멀쩡한 사람'도 모르면 조심해야 합니다. '낯선' 할머니도, 일단 의심하고 봐야 하는 세상인 것 같습니다.

취재기자 고민주 현경주 고기욱 민소영
그래픽 이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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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소영 기자 (missionalist@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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