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신고부터 징계까지 얼마나?…장애인 시설 처분 살펴보니 [취재후]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라 시설 폐쇄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지난달 9일, 성폭력 의혹이 불거진 장애인 거주시설 '색동원'에서 열린 현장 간담회. 강화군청 관계자는 '왜 폐쇄가 늦어지고 있냐'는 국회의원의 질책에 난감해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기소까지 안 가고 검찰에 송치만 되더라도 폐쇄할 의향이 있다"면서 "지금 당장은 한계가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이후 시설장이 구속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탔고, 강화군은 공언한 대로 행정처분 절차에 돌입해 지난 23일 색동원에 시설 폐쇄 명령을 내렸습니다.
최초 신고자의 제보로 경찰 수사가 시작된 지 10개월 만이었습니다.
■ '성범죄 행정처분' 전수 분석해 보니… '재판 전·재판 후' 반반
장애인 시설에서 성범죄가 발생하면 지자체는 시설을 징계할 수 있습니다. 가볍게는 '시정 명령'(1차) 처분부터 '시설장 교체'(2차), 나아가 '시설 폐쇄'(3차)까지도 가능합니다.
문제는 징계 시점입니다. 언제부터 '성범죄가 발생했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요?
실제로 지자체에선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까. KBS가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실을 통해 최근 6년간 장애인 거주 시설에 내려진 성범죄 관련 행정처분 20건을 확인하고, 각 처분이 이뤄진 시점을 분석해 봤습니다.
그 결과, 저마다 판단 기준과 시점이 제각각이었습니다.

20건 가운데 7건은 수사·재판과 무관하게 장애인권익옹호기관 조사 결과에 근거해 처분이 이뤄졌고, 2건은 경찰에서 검찰로 송치한 후, 1건은 검찰이 기소한 후에 처분이 났습니다.
6건은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뒤에, 나머지 4건은 유죄 판결에 최종적으로 확정된 뒤에 처분이 진행됐습니다.
크게 보면 10건은 재판 전에, 10건은 재판 후에 징계가 이뤄진 셈입니다.
■ 4개월 VS 19개월… 성범죄 신고 후 징계까지 '천차만별'
비슷한 시기 중징계인 '시설장 교체' 처분을 받은 두 시설을 비교해볼까요.
① 이용자 간 상습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A시설 :
2022년 3월, 피해자 가족의 문제 제기로 지자체가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조사를 의뢰했습니다. 조사 결과, 학대로 판정되자 지자체는 곧바로 행정처분을 결정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검찰에서는 불기소 처분을 했지만, 권익옹호기관의 조사에 근거해 징계를 내렸습니다. 신고부터 징계까지, 넉 달이 걸렸습니다.
② 종사자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B시설 :
2021년 5월, 지자체에 익명의 제보가 접수되면서 피해자를 4년간 성추행한 시설 직원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그보다 먼저, 시설 측은 2020년 11월에 범행을 인지했으나 가해 직원을 권고 사직했을 뿐 형사 조치는 취하지 않았습니다. 가해 직원은 뒤늦게 재판에 넘겨졌고, 2022년 9월 1심에서 징역 7년이 선고됐습니다. 지자체는 1심 판결 후에 시설장 교체 처분을 내렸습니다. 신고부터 징계까지, 1년 7개월이 걸렸습니다.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복지시설 사업안내' 지침을 보면 "시·군·구 주무관청의 지도·감독 조사로 객관적 사실이 확인될 경우 행정처분을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꼭 형사사법 절차를 따르지 않더라도 자체 조사만으로도 처분이 가능한 셈입니다.
이용자 간 성범죄가 발생한 C시설의 경우, 권익옹호기관의 학대 판정에 근거해 행정처분(시정명령)이 이뤄졌지만, 이후 검찰 단계에서 불기소를 결정했습니다. 시설 측은 '검찰에서 무혐의로 판단한 사안으로 부당한 징계를 받았다'며 행정 소송을 걸었지만 패소했습니다.
■ 지자체 "적극 행정? 소송 부담?"…장애인단체 "정부 가이드 내놔야"
하지만 이런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단 사실 자체가 선제적인 처분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소극 행정'이라는 비판과 '적극 행정'에 뒤따르는 부담 사이에서, 지자체의 재량에 맡겨지다 보니 처분 시점이 들쑥날쑥한 겁니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성학대가 맞다고 판단이 들어야 처분이 내려갈 수 있겠죠. 안 그러면 뭐 소송에 걸리니까." (OO시 공무원)
"사실관계가 명확하면 (재판 전에도) 가능은 하다고 하더라고요. 내부적으로 딱 정해져 있는 기준은 없거든요. 정확한 자료를 가지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데 수사 중인 건들은 쉽게 받을 수 없기도 하고요." (XX군 공무원)
"시설 폐쇄 같은 경우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잖아요. 장애인분들이 또 다른 피해를 입을 수 있고. 사건 터지면 다 아무도 책임 안 져요. 지자체만 혼자 떠안고…." (□□시 공무원)
장애인단체는 행정 부담으로 인한 처분 지연을 막으려면 정부 차원에서 보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내놔야 한다고 말합니다.
더욱이 중대한 인권 침해로 시설 폐쇄가 결정된다면, 그 시설에 머무는 장애인을 다른 곳으로 보내는 후속 조치가 뒤따르는데, 이건 지자체만의 몫은 아니라는 겁니다.
조아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행정처분과 후속 이행을 하는 과정에서 중앙 정부의 세심한 가이드가 필요하다"면서 "지자체가 사안의 중대성과 너무 동떨어진 처분을 내렸을 때 정부 감독이 필요하고, 적어도 이 정도 사안에는 이만큼의 처분이 필요하다는 지침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연관 기사] ‘성범죄 행정처분’ 전수조사…수사 중·선고 후 ‘들쑥날쑥’ (2026. 3. 25, 뉴스9)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518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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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민 기자 (js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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