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호 뒤에 울음…방탄소년단 컴백 날, 결혼식은 전쟁터였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먼센스]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3년여 만의 컴백 무대를 앞두고 전 세계 팬들의 기대와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축제의 열기가 최고조로 치닫는 순간, 이를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삶의 중요한 순간을 준비하던 이들에게 이번 공연은 설렘이 아닌 혼란과 부담으로 다가왔다.

"광화문 골목마다 몸 수색해요", "경찰이랑 관광객이 광화문을 거의 가득 채우고 있어요"
21일 오후 서울 광화문의 한 예식장으로 향하는 하객들의 SNS 단체 대화방에는 '비상'이 걸렸다. 서로 동선을 알리고 인파가 몰린 곳은 사진을 찍어 공유하기도 했다. 시민 A 씨는 "광화문 광장을 걸어가는데 경찰이 가방을 샅샅이 뒤졌다"며 "결혼식에 간다고 하자 가방 수색을 끝낸 뒤 큰 소리로 '이분 결혼식 간대요!'라고 경찰이 외쳤고, 그 소리에 많은 시민이 길을 터줬다"고 밝혔다. 또 다른 시민 B 씨는 "종각역 쪽에서 결혼식장으로 걸어가 그나마 수월하게 도착했다"며 "출발 전부터 동선을 숙지하고 초조한 마음에 지도를 계속 찾아보며 이동했다"고 말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BTS 컴백 공연의 여파는 컸다. 광장을 통과하려면 안전 펜스를 따라 설치된 31개 게이트를 통과해야 했다. 게이트에는 위험 물품을 검문·검색하기 위한 문형 금속탐지기(WTMD)가 설치됐고, 경찰들이 신체와 소지품 검사를 진행했다. 통제 인력은 경찰 6700여 명을 포함해 총 1만 5000여 명이 투입됐으며, 차벽과 바리케이드로 주요 도로는 삼중 차단됐다. 서울지하철 광화문역·시청역·경복궁역에는 열차가 무정차 통과했고, 세종대로·사직로·새문안로 등을 지나는 시내버스 51개 노선도 우회 운행하는 등 사실상 대중교통 이용이 차단됐다.
하객도 하객이지만 가장 신경을 곤두세운 이들은 역시 예비 신랑·신부였다. 광화문 일대 교통 통제 소식에 결혼식을 1시간 당겨 진행하거나, 업체의 사정으로 화환 배달이 취소되는 사례가 속출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하객 버스는 우왕좌왕하며 우회로를 찾아야 했다. 광화문의 한 호텔에서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었다는 한 네티즌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호텔이나 주최 측, 경찰 모두 죄송하다고만 할 뿐 대안을 제시해주지 않고 있다"며 "수천만 원을 들여 1년 전부터 준비한 소중한 결혼식이 순식간에 난장판이 됐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하객분들께 전화로 양해를 구하느라 결혼식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눈물만 나고 너무 힘들다"며 "저희는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느냐"고 호소했다.

예비 신랑·신부 사이에서는 공연 주최 측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검토하는 움직임도 보인다. 법조계에선 소송이 제기될 경우를 상정한 갖가지 예상이 나오고 있다.
먼저 손해배상 청구를 위해선 민법 제750조에 따라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가 있어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 손해배상 대상은 공연 주최 측(하이브), 국가(경찰), 예식장 업체를 중심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하이브의 경우 행사를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열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관할 기관에 집회 및 공연 신고를 마치고 적법하게 허가를 받아 행사를 진행했다면 손해배상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시에서 행사와 관련해 통제와 협조를 했고 행사 자체에 위법성은 크게 발견하기 어렵다"며 "하이브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더라도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반면 하이브의 과실이 일부 인정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바로 '예견 가능성' 때문이다. 이번 공연은 3개월 전인 올해 1월부터 홍보됐다. 통상 예식장 예약은 1년 전에 이루어지기에 공연 홍보 시점에는 이미 예비부부가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광화문 일대에 예식장 등이 밀집해 있다는 사실과 예식장 예약 구조 등을 감안하면, 하이브가 공연 장소 선정 과정에서 주변 피해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 과실로 지적될 수 있다. 고법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예비부부 입장에선 갑작스러운 변수로 일생에 한 번뿐인 예식을 방해받은 것"이라며 "이는 수인한도(사회 통념상 참을 수 있는 한도)를 초과한 것이기에 일부 배상 책임을 지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가의 경우, 구체적으로 교통 불편과 경찰의 검문 방식 등에 대한 위법성을 따져볼 수 있다. 하객이 겪은 교통 불편은 운영 기관을 상대로, 보안 검색 과정의 불편은 경찰을 상대로 제기가 가능하다. 다만 대중교통 통제는 지자체의 협조 아래 적법하게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아 손해배상 책임을 묻기 쉽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경찰의 공권력 행사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금속탐지기나 핸드스캐너를 이용한 보안 검색은 헌법 제12조의 신체의 자유와 제17조의 사생활의 비밀을 제한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권력 행사의 객관적 정당성과 사유가 명확했는지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시각이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르면 불심검문은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 '최소한도'로 집행되어야 한다. 아울러 경찰은 신분을 고지할 의무가 있고 수색 목적도 명확히 밝혀야 한다. 이를 위반해 손해를 입혔다면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헌법학에 정통한 법조계 관계자는 "기본권과 공권력이 충돌하는 경우 헌법재판소는 기본권 침해가 명백히 큰 사안인지, 아니면 사회 공동체 속에서 감수할 수 있는 사안인지를 판단하게 된다"며 "이번 사안은 광화문 일대 전체가 사실상 마비됐고 검문 집행이 반강제적이었다는 점에서 권익 침해 소지도 엿보인다"고 분석했다.
다만 문화체육관광부가 공연 분야 최초로 발령한 '재난경보'를 근거로 경찰이 보안 조치를 했다는 점, 지자체와 사전 협조가 이루어졌다는 점 등은 경찰의 면책 사유로 꼽힌다. 경찰이 하객 수송을 위해 전용 버스를 투입하는 등 편의를 제공하려 노력했다는 점도 과실이 경감되는 사유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예식장 업체는 고객이 시설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점에서 과실 여지가 있다. 하지만 정부의 강제적 통제가 있었던 만큼 이를 '불가항력'으로 간주해 면책될 가능성이 크다. 배상이 이루어지더라도 하객 불참으로 인한 식대 손실 등 일부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거대한 행사로 예비부부들이 발을 동동 굴렸던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0월 경북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에도 국가 행사 일정을 이유로 서울 신라호텔에서 예정된 결혼식이 취소될 위기에 처했었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일행이 해당 기간 신라호텔 체류 의사를 밝힌 것이 사유로 알려졌다.

당시 신라호텔은 예약자들에게 "국가 행사로 인해 결혼식 취소가 불가피하다"고 안내하며 일정 변경 시 위약금 면제와 비용 지원 등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신라호텔 예식 비용이 통상 1억~2억 원대에 달하는 만큼 논란은 거셌으나, 결국 중국 측이 예약을 취소하면서 결혼식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이미 일정을 변경한 소비자들에게는 호텔 측이 비용을 지원하는 선에서 사태가 마무리됐다.
결국 BTS의 3년 만의 컴백 무대는 성황리에 마쳤지만, 이번 공연을 둘러싼 논란은 대형 행사를 기획할 때 주변 지역과 시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얼마나 세밀하게 고려해야 하는지, 공권력 행사 과정에서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중요한 사회적 숙제를 남겼다. 향후 유사한 상황에서는 보다 정교한 사전 조율과 실효성 있는 피해 최소화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제도적 보완이 시급해 보인다.
권준혁 법조전문기자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Copyright © 우먼센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