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옥에 내 자식 두고 갈 수 없다 [뉴스룸에서]

강지원 2026. 3. 27.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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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이용한 산후조리원 원장은 "부모에게 최고의 액세서리는 성공한 자식이다"고 단언했다.

부모가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자식 성공을 위해 분투한다.

자식보다 성공에 방점이 찍힌 부모의 헌신은 오로지 대입을 위해 내달리는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

행정기관의 물질적 지원은 내 자식의 성공을 위해 대다수의 부모가 만든 사회에서 버티기엔 한없이 부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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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성공을 위한 부모의 헌신
불필요한 경쟁과 혐오 양산해
부모 존재만으로 충분한 가치
네 명의 어린 자녀와 목숨을 끊은 30대 남성이 살던 울산 울주군의 한 빌라 현관에 18일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다. 박은경 기자

10여 년 전 이용한 산후조리원 원장은 “부모에게 최고의 액세서리는 성공한 자식이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자식 성공을 위한 첫발은 모유 수유라고 설파했다. 성공한 자식을 꿈꾸며 산모들은 젖 먹던 힘을 쥐어짜며 산고에 버금가는 젖 먹이는 고통을 참아냈다. 모유 수유는 시작에 불과하다. 부모가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자식 성공을 위해 분투한다. 저출생이지만 경쟁은 치열해졌다. 양육비와 사교육비는 해마다 오르고 대입 경쟁률은 해가 갈수록 치솟는다. 저출생을 부르는 수치들은 자식 성공에 결사항전을 다짐한 부모의 수에 정확히 비례한다.

모유 수유 효과를 맹신했던 원장의 애정 어린 격려로 치부했던 얘기는 뜻밖의 현실로 다가왔다. 공개석상에서 늘 무표정했던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지난달 아들의 서울대 입학을 전후로 곳곳에서 활짝 웃는 모습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아들의 대입 성공은 어떤 액세서리보다 화려했다. 그가 모유 수유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세간에 알려진 대로 아들 교육을 위해 강남으로 이사를 하고, 다른 학부모와 격의 없이 어울린 모습은 자식의 성공을 열망하는 여느 부모와 다르지 않았다. 자식의 성공을 위한 부모의 헌신을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물론 성공한 자식을 둔 재벌 부모를 칭송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

하지만 ‘내 자식만큼은 잘 키우겠다’는 부모의 무해한 의지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무해하지 않다. 부모의 경쟁력이 자식의 세계에 개입해 불필요한 경쟁을 유발한다. ‘개근 거지’, ‘빌라 거지’ 같은 혐오를 양산한다. 자식보다 성공에 방점이 찍힌 부모의 헌신은 오로지 대입을 위해 내달리는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 자식 인생을 예단하는 부모의 결정은 인형이나 액세서리처럼 자식을 소유물로 인식하게 한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로 종결되는 육아는 사회 비극을 잉태한다.

지난 18일 울산 울주군의 한 빌라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30대 남성과 네 명의 어린 자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자식의 목숨을 거둔 비정한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원망 대신 참담함과 안타까움이 밀려든다. 비극의 원인으로 위기 가정에 대한 한발 늦은 행정기관의 소극적 복지 체계가 지목됐다. 맞다. 사회가 귀한 아이들을 구할 기회를 또 놓쳤다. 이 가정이 기초급여 수급 가구로 지정됐더라면, 긴급복지 생계지원금을 다시 받았더라면, 아이들을 살릴 수 있었을까. 이 지옥 같은 사회에 내 자식을 두고 갈 수 없다는 가난한 아버지의 어리석은 판단을 되돌릴 수 있었을까. 쉽게 수긍되지 않는다. 행정기관의 물질적 지원은 내 자식의 성공을 위해 대다수의 부모가 만든 사회에서 버티기엔 한없이 부족해 보인다.

최근 보육원 출신의 한 청년이 두 살 때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상대로 낸 양육비 청구 심판에서 승소했다. 부모의 부재로 청년은 학업과 취업 과정에서 번번이 불이익을 받았다. 양육비 문제가 아니었다. 부모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멸시, 억압을 받았다. 부모의 존재를 확인받기 위해 심판을 청구했다는 그의 말에 마음이 아리다. 부모의 재력 없이도 부모의 존재만으로 자식은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사회의 공감대가 절실하다. 그 누구보다 자식의 성공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들이 가장 듣고 싶었던 얘기 아닐까.

강지원 전국부장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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