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취약지 강원에 살다] 2. 통합돌봄 전국시행 -‘고립’된 노인 삶을 보다

이설화 2026. 3. 27.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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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갇혀 누워지낸 세월만 수년…불꺼진 집, 홀로 남겨진 노인들
통합돌봄 재택의료센터 지정
춘천 이정환내과 ‘방문 진료’ 동행
장기요양 3등급 환자 서재인씨
방문요양 지원 하루 3시간 한계
통증 주사·욕창 관리 의료 제공
다세대주택 2층 거주 김상훈씨
고관절 골절상 2주 입원 후 퇴원
“마지막 식당 간 게 벌써 3년 전”

통합돌봄이 27일부터 전국에서 전면 시행된다. 의료, 요양, 주거 등 돌봄 수요를 통합해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엔 고령화시대 요양시설에 투입되는 비용이 계속 증가하는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 노인돌봄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현안’이다. 고령 인구가 많은 강원도에서는 오는 6월 지방선거의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통합돌봄의 한 축인 ‘방문 진료’ 현장을 지난 5일 동행했다. 정부 통합돌봄 재택의료센터로 지정된 춘천 소재 이정환내과의 의료진을 쫓아 9명의 노인을 만났다. 이 가운데 서재인(88·가명) 씨와 김상훈(68·가명) 씨의 이야기를 전한다. 집은 노인에게 삶의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오후 4시, 불이 꺼졌다

오후 3시 50분. 서재인 씨 옆으로 의자 두 개가 놓였다.

하나는 이동식 좌변기, 하나는 식탁으로 사용될 의자다. 서 씨가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다. 의자에는 쌀밥과 미역국, 나물반찬, 바나나가 올랐다. 요양보호사 허모(58) 씨는 그릇마다 플라스틱 뚜껑을 덮어뒀다. 최소 두 시간은 온기가 유지돼야 한다. 서 씨의 저녁밥이다.

서 씨는 와상 환자다. 지난해 10월 병원 화장실에서 왼쪽 발목 골절상을 당했다. 허리 통증으로 찾은 병원에서였다. 경북 봉화에서 태어난 서 씨는 16년을 영월, 정선에서 광부로 일했다. “내 신세가 이렇게 망가진거여. 이제는 못 고쳐.” “조각조각 찢어지는 것 같아, 허리가. 아파서 잠을 못자요.” 말을 하는 서 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는 지난 5일 진료차 집을 찾은 이정환내과 의료진에게 통증 주사를 맞고, 욕창 관리를 받았다.

의료진 외에 서 씨를 찾는 이는 요양보호사 허 씨다. 장기요양 3등급인 서 씨는 정부 장기요양보험 재가서비스 중 하나인 ‘방문요양’을 받고 있다. 허 씨는 오후 1시부터 오후 4시 사이 식사 준비, 빨래, 씻기기, 체위 변경 등의 돌봄 업무를 한다.

허 씨의 마지막 업무는 불끄기다. 오후 4시, 허 씨가 집 안의 모든 불을 끄고 베란다 외등을 켰다. 커튼까지 치니 방안이 어둑해졌다. “요양사요, 아침밥을 먹게 해줄 수 없을까?” 막바지 주방일을 하는 허 씨를 두고 서 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허 씨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장기요양 3등급의 방문요양은 하루 3시간이 최대다. 그 이상은 온전히 본인부담이다.

“어르신, 저 갈게요.” 닫힌 방문 너머 서 씨를 뒤로하고 허 씨가 현관문을 나섰다. 문을 잠그지 않은 채다.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요. 위급한 상황이 생길 수 있잖아요.” 허 씨가 떠났다. 다음날 오후 1시까지 서 씨는 혼자다.
▲ 5일 이정환 의사와 이윤성 간호사, 김현수 사회복지사가 춘천 효자동에 거주하는 김상훈(68·가명) 씨의 집에 방문했다. 이정환 의사가 김 씨에게 통증 주사를 놓고 있다.

■마지막 외출 3년 전

다세대주택 2층에 사는 김상훈 씨도 현관문을 열고 지낸다.

30대 초반 출판사에 다니던 김 씨는 일주일씩 출장도 잦았다. 광주, 안산, 대구, 부산…. 전국의 대학교를 다니며 대학교재 납품과 계약 업무를 했다.

40대에 당뇨에 걸리면서 김 씨의 일상은 무너졌다. 이가 빠지면서 영양 섭취가 어려워졌고, 금세 살이 빠졌다. 어깨 수술을 받은 김 씨는 오른팔 사용이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다 지난 2024년 10월 고관절 골절상을 입었다. 한칸짜리 자취방에서였다.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마친 김 씨가 병원에 머물 수 있는 건 2주였다. 이후 민간 요양병원에 잠시 있었다. 하지만 한 달만에 퇴소했다. 김 씨는 “밥이 입에 안맞았다”며 “집에 있으면 먹고 싶은 거라도 먹을 수 있으니…”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김 씨가 먹을 수 있는 건 면류다. 요양보호사 박모(70) 씨가 짜장면, 짬뽕을 사오거나 그의 도움으로 집에서 잔치국수를 해먹는 식이다. 3년 전 맞춘 틀니는 쓰지 않은지 오래다. 김 씨는 잇몸으로 음식을 씹는다. “터미널 기사식당에서 하는 동태찌개를 먹고 싶어요. 다른 집은 그 국물 맛이 안나요.” 마지막으로 식당을 간 게 벌써 3년 전이다.

지난 11일 춘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재경(66·동산면 원창4리 이장) 씨는 안타까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 씨는 홀로 사는 김 씨가 유일하게 의지하는 지역 후배다. 김 씨가 고관절 골절을 당했을 때 그는 효자동 언덕에 사는 김 씨를 업고 병원을 오갔다.

이 씨는 “그 집이 언덕길에 있다”며 “거기보다 싼 데가 별로 없다”고 했다. 보증금 40만원 방에 김 씨는 월 21만원을 낸다. 이 씨는 김 씨가 몸이 성했을 때 함께 나들이를 다녔다. 김 씨의 바람은 소박했다. “다리가 빨리 나아서 풍물시장에 가고 싶어요. 먹을만한 게 있나 구경 한 번 해보려고….”
▲ 김상훈(68·가명) 씨가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다리 재활 기기를 사용하고 있다. 지난 2024년 10월 고관절 골절을 당한 김 씨는 거동이 어려워 누워 생활한다.

■21시간 혼자 지내는 노인들

서 씨와 김 씨에게 집이 ‘삶의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들은 방문진료로 욕창 관리 등을 받고 있을 뿐, 영양, 외출, 주거환경 개선 등의 돌봄이 모두 부족했다. 요양보호사 방문 3시간을 제외한 21시간은 ‘고립’의 시간이었다.

이정환내과 의료진을 동행하며 만난 9명의 노인 다수가 그랬다. 9명 중 8명(89%)은 와상환자였다. 타인의 돌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들이다. 혼자서는 식사, 대소변 해결이 어렵다.

하지만 8명 가운데 6명(75%)은 홀로 지내는 1인 가구였다.

이들은 가족이 있지만 함께 살지 않거나, 가족과 연락을 끊고 지내고 있었다. 6명 모두 장기요양보험 방문요양 등 돌봄 서비스를 받고 있다. 정부가 지원하는 방문요양은 하루 3~4시간이 최대다. 나머지 21시간은 별도로 돌봄 서비스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6명 가운데 별도 돌봄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C씨(91)가 유일했다.

그의 자녀는 24시간 간병인를 고용해 인건비를 지급하고 있었다. 방문진료에 나선 의료진은 “가족 중에 의사가 있어 주말에 별도로 욕창 관리를 받는다”고 전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24시간 간병인 고용에는 하루 15만원, 월 450~500만원의 비용이 투입된다. 석션, 기저귀 교체 등 추가 업무가 있으면 돌봄 비용은 더 올라간다.

춘천 효자동에서 재가장기요양기관을 운영하는 김자운 춘천나눔돌봄센터장은 “24시간 어르신 간병은 극히 드물다”며 “센터에도 딱 한 분이 계신다”고 했다.

이어 “아이 과외가 한 달 500만원이라고 생각해도 부담이다. 과외는 기간이라도 정해져 있지만 노인 간병은 기한이 없다. 돌봄은 한 두달에 끝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돌봄은 ‘비용’을 수반한다. 노인돌봄은 크게 개인 간병사를 고용하거나, 요양시설에 입소하거나, 장기요양보험 방문요양 서비스를 받는 경우로 나눠볼 수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저렴’한 게 방문요양 서비스다. 재가급여 대상자가 하루 3시간의 돌봄 서비스를 받는다면, 월 0~20만원 내외의 본인부담금(0~15%)을 내면 된다. 나머지는 장기요양보험 재정으로 충당된다.

김 센터장은 “일부 도움이 필요한 경우만 돼도 3시간 서비스를 받으며 지낼 수 있다. 그 이상이 되면 힘들다. 어르신이 밤 사이에 돌아가셔도 우리 요양보호사가 오후 1시에 가야 알 수 있다. 주말에 그랬다고 하면 월요일 오후 1시까지 발견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 효자동 다세대주택 2층에 거주하는 김상훈(68·가명) 씨는 수십 개의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2024년 고관절 골절을 당한 김 씨가 집밖을 나서기 위해선 타인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방문진료를 마친 이정환 의사는 “거동이 어려운 분들은 1층에 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주거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설화 기자

■강원지역 돌봄 대상 17만여명

27일 통합돌봄 전면 시행을 앞두고 보건복지부는 지난 5일 2030년까지 총 60종의 돌봄 서비스를 연계하겠다고 밝혔다. 방문진료, 치매관리 등 재가 의료서비스 확대를 비롯해 방문간호·방문요양·방문목욕 이용한도도 확대하기로 했다. 긴급돌봄, 주거 지원 등의 일상생활 지원 강화도 포함됐다.

이는 모두 집에 거주하는 노인들에게 필요한 사업이다. 급성기 치료가 아닌 경우 노인들의 병원 방문은 체력과 비용을 불필요하게 투입할 가능성이 크다. 서 씨의 경우도 욕창 치료를 위해 구급차를 타고 종합병원에 다녀온 경험이 있다.

하지만 통합돌봄의 핵심 축이 되는 의료 부문조차 당장 공급이 요원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13일 전국 229개 기초지자체 모두에 재택의료센터를 지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방문 진료를 나서는 의사는 극히 소수다. 강원도 내 재택의료센터는 춘천(3곳), 원주(4곳)를 제외하고 16개 시·군별 각 1곳이 이를 담당하고 있다.

공공병원조차도 방문진료를 나설 인력이 충분치 못하다.

강릉지역 유일의 재택의료센터인 강릉의료원에서는 원장이 방문 진료에 나선다.

최안나 강릉의료원장은 “강원도는 인구 밀도가 낮고 집집마다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거리에 따른 수가 가산이 없다”며 “수익이 나지 않으니 재택의료를 하는 의료기관이 강릉의료원 말고는 한 곳도 없다”고 전했다.

서재인 씨의 경우 아침 식사 지원, 소등 등 저녁 돌봄이, 김상훈 씨의 경우 다리 재활, 외출, 주거 개선 등의 지원이 더 필요하다.

다만 이는 각 지자체의 서비스 자원 유무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 서재인(88·가명) 씨는 지난해 10월 발목 골절로 와상환자가 됐다. 거동이 어려운 서 씨의 활동반경은 침대 내다. 그가 쓰던 일기장은 지난해를 마지막으로 멈춰있다. 서 씨는 지난 8월 ‘수급자, 정부에서 민생회복 소비쿠폰 사십삼만원 받았다’고 썼다. 이설화 기자

강원도 관계자는 “통합돌봄 대상자로 지정이 되면 시·군에서 통합지원회의를 열어 투입할 자원을 살피게 될 것”이라며 “시군이 갖고 있는 자원에 따라 그 내용은 달라진다”고 했다.

제도가 신청주의인 것도 개선이 필요하다. 실제 의료, 요양, 주거 등 돌봄이 총체적으로 필요한 노인은 제도를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강원도 관계자는 “사례에 따라 지자체 직권 신청이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강원도의 경우 18개 시군 187개 읍면동에 사례 조사 담당 공무원을 각 1명씩 배치한 상태다.

지난 16일 보건복지부는 한국사회복지행정연구회 소속 사회복지공무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통합돌봄에 대한 읍면동 현장 공무원의 적극적인 업무 수행을 당부했다.

공무원의 ‘적극성’으로 노인돌봄의 사각지대를 메울 수 있을까. 강원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가 추산한 강원지역 통합돌봄 우선 대상자는 노인 17만여명, 장애인 5300명이다. 이설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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