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입 베어물면 학창시절 소환… 특별한 날 만드는 ‘왕돈까스’[김도언의 너희가 노포를 아느냐]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봄을 맞아 한국 최대 벼룩시장으로 통하는 서울 종로구 동묘벼룩시장 일대에 세대를 초월한 이들이 모여들고 있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골목,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집이 '대박 왕돈까스'다.
흰 접시 위에 커다란 돈까스 한 장이 올라오면 그날은 마법처럼 평소보다 특별한 날로 변신한다.
이 집 돈까스는 그 기억을 그대로 복원한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하철 1·6호선 동묘앞역 5번 출구를 나와 청계천 쪽으로 100m쯤 직진하다가 동묘벼룩시장 골목으로 걸어가면 오래된 LP판, 군복, 중고 카메라, 1970∼80년대 전자제품, 낡은 구두와 모자가 뒤섞인 풍경이 펼쳐진다. 물건마다 풍진 세파 속에서 고유한 서사가 켜켜이 배어 있다. 눈은 즐겁고 마음은 고즈넉한 구경을 하며 중고시장 골목을 몇 시간쯤 돌다 보면 배도 고파진다. 그 허기는 이상하게도 물리적인 허기라기보다는 감상적인 허기에 가깝다. 분주한 추억 여행 속에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향하는 식당이 바로 대박 왕돈까스다.
시장 골목의 노포답게 야외까지 테이블을 배치한 이곳은 크지 않고 화려한 인테리어도 없다. 메뉴판도 단순하다. 하지만 접시에 올라오는 돈까스는 중년 이상 세대에겐 학창 시절을 불러오는 하나의 ‘시그니처’다. 요즘 유행하는 두툼하되 미니멀한 ‘일본식 돈카츠’와는 전혀 다르다.
돼지고기에 빵가루를 듬뿍 입혀 바삭하게 튀긴 뒤, 넓은 접시 한가운데 놓고 육수와 물엿 등으로 농축한 전통 브라운 소스를 넉넉하게 부어 준다. 그 옆에는 빠질 수 없는 세 가지 구색이 따라온다. 양배추 샐러드, 마카로니, 그리고 단무지다. 이 구성이야말로 1980∼90년대 경양식집 돈까스의 정석이다. 손님들의 평가도 흥미롭다. 레트로 열풍에 올라탄 젊은 세대는 돈카츠와 다른 색다른 맛을 이야기한다. 장년층과 노년층 입에선 “이거 옛날 돈까스다”, “학생 때 먹던 그 맛 그대로네” 같은 말들이 나온다.
그들의 추임새에는 단순한 미각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1980∼90년대 한국에서 돈까스는 지금보다 훨씬 특별한 음식이었다. 학교 시험이 끝난 날, 아버지가 월급을 받은 날, 혹은 어쩌다가 단체 미팅 같은 것이 잡힌 날 가던 시내 경양식집의 상징적 메뉴였다. 흰 접시 위에 커다란 돈까스 한 장이 올라오면 그날은 마법처럼 평소보다 특별한 날로 변신한다.
이 집 돈까스는 그 기억을 그대로 복원한다. 달짝지근하면서도 약간의 산미가 있는 소스도 옛날 그대로고, 튀김옷은 과할 정도로 두껍지 않으면서 크리스피하다. 튀김옷 안의 고기는 두툼하면서도 큼지막하다. 그래서 칼로 썰 때 ‘사각사각’거리는 느낌이 난다. 어떤 손님은 맛있다기보다 마음이 푸근해지는 맛이라고 표현한다.
요즘 서울에서 돈까스 1인분 한 접시는 보통 1만 원을 훌쩍 넘지만, 이 집은 ‘왕돈까스’ 기준 1만 원을 내면 2000원을 거슬러 받는다. 2000원이면 동묘에선 커피나 식혜 한 잔을 사 마실 수 있으니 식객들 마음이 얼마나 넉넉해지겠는가. 동묘벼룩시장이 물건을 찾아 떠나는 시간 여행이라면, 대박 왕돈까스는 향수를 충족시켜 주는 시간 여행이다.
김도언 소설가
Copyright © 동아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트럼프, 토요일 ‘전격 휴전설’…美, 이란 협상파트너 2명 암살 제외
- 장동혁 “공천 끝나면 대구 민심 돌아올 것…李, 지지율 믿고 오만”
- 주유소 휘발유·경유 모두 2000원 넘을듯…‘2차 최고가격’ 내일 적용
- 5500만원→33억…탈북민 출신 박충권 의원, 재산 60배 뛴 비결은?
- 이부진, 200억 규모 호텔신라 자사주 매입…“책임경영 실천”
- 이혜영, 반려견에 낙서 같은 화장…‘동물 학대’ 뭇매
- 홍서범·조갑경 아들, 아내 임신 중 외도 의혹…“판결 기다리는 중”
- 靑국토비서관 3주택 모두 내놔…김현지, 2채중 1채 처분중
- 美의회, 중국산 로봇 사용금지법 발의…“中서 원격제어, 안보 위협”
- “호르무즈 봉쇄 지휘 이란 혁명수비대 해군사령관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