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뮤지컬 ‘더 라스트맨’ 김달중 연출 “과도기의 뮤지컬산업, 새로운 형태의 해외진출 가능성 가늠 중”

“저랑 (네오 프로덕션의) 이헌재 대표, 우리는 이걸 정말 잘해야 해요. 이걸 잘 연착륙시켜야 다음에 오는 (한국 창작뮤지컬) 팀들도 잘 갈 수 있을 테니까요.”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는 흔치 않은 1인극에다 한국 창작뮤지컬이다. 게다가 원캐스트가 당연한 웨스트엔드 관행을 깨는, 어쩌면 최초일지 모를 두 배우가 번갈아 무대에 오르는 더블캐스팅이다.
그 성별도 다른 젠더리스 캐스팅에 하물며 티켓을 사줄 팬이라곤 거의 없다시피 한 다민족 계열의 신인 배우들이다. 한국 신림동을 배경으로 하며 초코파이의 ‘정’(情), ‘존버’ ‘애착인형’ 등 한국 특유의 표현들이 그대로 한국어로 쓰인다.
이런 모험이 없다. 한국 창작뮤지컬 ‘더 라스트맨’(The Last Man 6월 7일까지 링크더스페이스, 5월 8~6월 6일 영국 런던 사우스워크 플레이하우스 엘리펀트)의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 진출은 그야말로 그런 모험이자 도전이다.

그 모험을 “시작하고 시험하며 시장을 개척할 물꼬를 트는 것, 그게 선배로서 저의 몫”이라며 김달중 연출은 수많은 고민 끝에 깃발을 들었다.
양적·질적 팽창 후 과도기에 있는 뮤지컬 시장에서 선배로서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가 한국 공연 연습과 개막, 런던 창작진 및 제작진과의 밤샘 대본수정 및 회의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시간을 보내는 이유다.
공연 개막까지 정확한 시간대, 일정한 시간 동안 연습실을 지키겠노라 했던 그만의 철칙을 지키느라 “죽을 지경”임에도 이 도전을 멈출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 라스트맨’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좀비 바이러스 창궐로 맞이한 인류의 종말, 아포칼립스(Apocalypse)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김지온‧홍승안‧김이후‧김찬종, 시즌합류‧가나다 순)의 이야기다.

좀비 사태를 예견하고 1년치 식량과 물을 채운 B-103 방공호로 숨어든 생존자가 ‘존버’라는 반려인형과 함께 지내며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1인극이다.
서울예술단이 주최한 청년예술가 웹뮤지컬 창작 콘텐츠 공모의 대상 수상작으로 2021년 웹뮤지컬로 리딩공연 후 같은 해 초연, 2024년 재연에 이은 세 번째 시즌을 준비 중이다.
영국 공연은 ‘더 라스트맨’의 정체성과 본질은 지키면서 드라마터그(Dramaturg, 연출가•디자이너•극작가•배우가 저마다의 의도를 작품으로 실현하도록 돕는 예술적 컨설턴트)인 제스로 컴튼(Jethro Compton)과 영국시장에 맞게 세공 중이다.
제스로 컴튼은 한국에서 10년째 티켓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 ‘카포네 트릴로지’를 비롯해 ‘벙커 트릴로지’ ‘프론티어 트릴로지’로 이어지는 트릴로지 시리즈의 창작자다.

더불어 2025년 올리비에상 베스트 뮤지컬상(Best New Musical), 뮤지컬 부문 남우주연상(Best Actor), 음악부문 우수상(Outstanding Musical Contribution)을 거머쥔 뮤지컬 ‘벤자민 버튼의 시간을 거꾸로 간다’(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의 작가이기도 하다.
김달중 연출은 ‘쓰릴미’ ‘김종욱찾기’ ‘헤드윅’ 등 지금 뮤지컬시장을 만든 작품을 이끌었고 ‘트레이스유’ ‘글루미 선데이’ ‘마하고니’ ‘일리아드’ ‘공생, 원’ 등도 그의 작품이다.
故안성기, 김명민 주연의 영화 ‘페이스 메이커’ 감독이자 ‘숨바꼭질’ ‘장산범’의 제작자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국 뮤지컬산업의 산증인이자 영화계까지 두루 거친 김달중 연출은 “산업적으로 그리고 크리에이터들을 위해 양적‧질적 확산을 넘어 더 큰 팽창을 하려면 무슨 일을 해야 할까에 대해 고민하고 시험하고 도전해야할 때”라고 짚었다.

“다음 시장에 대한 가능성을 가늠하면서 정말 개척자처럼 가서 해야 해요. 그 의미가 없다면 제가 14시간 비행을 하고 언어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손짓발짓과 통역을 써가면서 작품을 만드는 게 무슨 가치가 있겠어요.”
그리곤 “단순히 영어로 공연돼서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그 언어가 가진 문화와 정서, 가치를 알아야 제대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건데 ‘내가 거기 가서 내 작품을 한다’는 건 또 다른 문제”라고 강조했다.
“지금 한국 대학로 뮤지컬의 결을 유지하고 있는 저와 이헌재 대표에겐 ‘더 라스트맨’의 뮤지컬 본고장 웨스트엔드 연착륙이 목표예요. 이걸 실패하면 큰일 난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가능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또 다른 시장을 모색해야 하니까요.”
그리곤 ‘더 라스트맨’의 웨스트엔드 진출에 대해 “현지 리뷰에서 별을 몇개 받는지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뮤지컬 시장의 확장 가능성”이라고 털어놓았다.

“메인은 한국 대학로 뮤지컬 제작 시스템과 영국 웨스트엔드 시스템이 만나 우리 뮤지컬 시장이 그쪽으로 갈 수 있을지 가능성을 가늠하는 거예요. 그래서 진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해요. 잘 시간이 어딨어요.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요.”
지난 3월 초 영국 런던에서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된 배우는 독일에서 오페라를 공부한 렉스 리와 한국계 영국인 나비 브라운이다.
렉스 리는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다 회의를 느끼고 불교에 귀의하려다 다시 한번 무대예술에 도전한 특이한 경력의 배우다. 김달중 연출이 한국 비디오 오디션 당시 56명의 참가자 중 ‘최고’라고 점찍었던 배우이기도 하다.
한국어까지 능숙해 한국 활동도 염두에 둔 19세 나비 브라운은 ‘더 라스트맨’ 영국 프로덕션의 음악감독이 “목소리가 최고”라고 평한 배우다.

종말로 고립됐을 때의 다양한 인간군상을 캐릭터로 보여주고자 했던 ‘더 라스트맨’의 한국 프로덕션은 여러 세대와 계층, 성별을 고려한 캐스팅으로 무대를 꾸렸다.
이는 ‘더 라스트맨’의 정체성이자 본질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 배우가 한 극의 한 캐릭터를 온전히 책임지는 웨스트엔드 시스템에 이례적으로 성별이 다른 두 배우를 캐스팅하며 한국 뮤지컬 시스템을 접목하는 도전 중이다.
“사실 제작사 입장에서는 꺼릴 수밖에 없어요. 그 배우들이 온전히 시간을 다 비워야 하고 공연이 없는 날도 출연료를 보장해야 하거든요. 게다가 남녀에 맞춰 넘버의 키도 다시 손봐야 하거든요. 제작비가 늘 수밖에 없죠. 영국에는 없는 이 캐스팅 방식을 현지에서 어떻게 받아들이지 사실 저도 궁금해요.”
더불어 한국‧영국 공연산업을 꾸준히 경험해온 제스로 컴튼과의 밤샘작업을 통해 인터미션을 만들고 극 배경이 되는 ‘신림동’의 특성 및 고유성 그리고 ‘정’ ‘존버’ ‘애착인형’ 등 한국 특유의 표현에 대한 설명을 하고 영국 관객들이 좀 더 친숙한 방법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표현을 손보는 중이다.

“신림동을 배경으로 한국에서 창작된 이 작품의 본질은 최대한 지키면서도 런던 관객들이 논리적으로 이해하며 공연을 쫓아올 수 있게 만드는 데까지가 제 목표예요. 더 나아가 좀 더 보편적이고 논리적인 월드버전 ‘더 라스트맨’이 만들어진다면 더 바랄 게 없죠.”
그렇게 현지화에 한창인 ‘더 라스트맨’ 영국 프로덕션은 “다국적 크리에이터, 배우, 사람들이 모여서 작품을 만드는 다양한 모험들의 향연이자 시험대”다.
더불어 5년 넘게 ‘더 라스트맨’을 함께 해온 조연출이자 내년 창작뮤지컬로 입봉을 앞둔 “김유정 같은 가능성 있는 후배들에게 만들어주고픈 새로운 판”에 대한 가능성 탐구이기도 하다.
“그 시장에 게스트로 뛰어드는 게 아니라 우리가 호스트가 되는 거예요. 사실 너무 부담스럽지만 영국 ‘더 라스트맨’의 제일 큰 의미인 것 같아요. 한국 대학로 시스템과 웨스트엔드의 시스템, 다국적 크리에이터 등이 모여 어떤 다양한 소재나 공연 형식을 찾아낼 수 있을지 궁금하고 흥미로워요. 이번 ‘더 라스트맨’ 작업을 통해 후배들에게 ‘이런 시장이 있다’고 알려주고 앞으로 잘 해봐라고 하고 싶었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208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