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웅칼럼] 왕이 남자와 살면서

'왕과 사는 남자'(장항준 감독)가 국민을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설정된 엄흥도와는 달리, 프랑스 혁명당시 루이 왕조의 마지막 왕 루이 17세의 실화입니다. 혁명 세력들은 루이 16세를 단두대에서 처형하였습니다. 루이 16세는 단두대의 칼날이 목에 떨어지기 직전 군중을 향해 "나는 무고하게 죽는다. 나는 기소된 모든 죄목으로부터 결백하고, 내 피가 국민의 행복을 강화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16일 왕비 '앙투아네트'도 38살 젊은 나이에 남편과 같은 장소인 콩코드 광장에 설치된 단두대에서 처형되었습니다.
그들은 4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2명은 요절했고, 큰 딸 마리 테레즈(1778~1851)와 차남 루이 샤를(1785~1795, 루이 17세)은 어린 나이에 '탕플 탑(塔)'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남매는 각각 따로 감방에 수감 되었으나 감시와 통제가 심했고 더러운 옷과 담요와 음식을 제공 받으며 학대에 시달렸습니다.
'마리 테레즈'는 7년 이상 감옥 생활로 발성 이상 장애자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동생 루이 17세는 '왕과 사는 남자'를 붙여 주었는데 이름이 앙투안 시몽(1736~1794)으로 성질이 포악하였고 부부가 루이 17세를 온갖 방법으로 학대하였습니다. 루이17세를 얼마나 학대하였는지 1795년 6월, 10살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영양 실조로 뼈만 앙상했고, 채찍으로 맞아 가슴, 등, 팔,다리가 상처 투성이였다고 합니다. 또 감옥의 간수들은 그를 평민으로 대접했고, 무례한 행동과 거친 말로 루이 17세를 무시하고, 왕족으로의 의식 자체를 지워 버리려고 했습니다.
어느날, 간수가 루이 17세에게 "만약 네가 다시 왕이 된다면, 나를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루이 17세는 "나는 당신을 용서하겠습니다. 나는 왕(王)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정신에는 제왕의 피가 흐르고 있었고,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는 왕족의 정체성이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 입니다. 10살 '루이 샤를'에서 어린이가 아닌 루이 17세 제왕의 모습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세월을 거슬러 조선시대의 '왕과 사는 남자' 이야기가 국민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1453년 수양대군이 조카 이홍위(1441~1457)가 왕위에 오르자 왕에게 충성하던 이들을 역적으로 몰아 다 죽이고 어린 왕을 영월로 유배(1457.7.12)를 보냈습니다.
군졸 50명에게 둘러 싸여 궁궐을 나선 어린 왕은 '노산군'으로 감봉되어 유배지로 가던 중 지금의 청계천 7가에 있던 영도교에서 왕비 송씨(1440~1521, 정순왕후)를 마지막으로 본 후 여주를 거쳐 영월로 갔습니다.
유배지 청령포는 3면이 강으로 둘러 싸여 있고 한 쪽은 절벽인 천혜의 감옥이었습니다. 이곳 3칸짜리 초막에 단종이 거처하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 홍수가 나서 관아인 관풍헌으로 옮겨 있을 때 세조가 사약을 내렸습니다. 영화에서 단종은 이런 독백을 합니다.
"나는 한 번도 나로 살아 본 적이 없다. 왕이 되라 해서 왕이 되었고, 물러 나라 해서 물러 났으며, 이제 죽으라 해서 죽음을 기다릴 뿐이다. 이 모든 것이 정녕 나의 뜻이었던 적이 있었더냐?"
영화에서 감독은 단종이 왕통의 정체성을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엄흥도'와 '한명회'를 등장 시킵니다. "노산군의 눈이 확 달라졌다. 힘 없고 병약했던 눈이 이곳에 와서 범의 눈이 되었구나"라고 한명회는 뇌까립니다. '왕과 사는 남자' 엄흥도를 만났기 때문이라는거지요.
그러나, 사서(史書)에서는 영화 내용과 달리 세조가 보낸 사약을 가지고 온 왕방연에게 "너는 도대체 어느 나라의 신하이기에 내게 죄인이라고 하느냐. 왕의 자리를 빼앗은 사람이 죄인이더냐. 빼앗긴 내가 죄인이더냐"라며 단종은 관풍헌 마당으로 걸어나와 사약을 받지 않고 군사들이 지녔던 활을 빼았아 활시위로 자기의 목을 감아 생을 마감합니다.
수양대군에게 "작은 아버지 날 살려 주시오"라며 애걸했던 두려움에 떨던 어린이가 아닌, 제왕의 뼈대를 꼿꼿이한 장부의 모습으로 17세 단종대왕의 시간을 마감했습니다.
유배 생활 4개월은 이홍위가 어린 묘목이 아닌 거목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조선왕조의 흔들림 없는 제왕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현실이 비참하고,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고, 모욕적인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큰 바위 같은 사람을 그려봅니다.
유화웅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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