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간 아픔 딛고 교류 … 한일 예술국경 사라졌죠
도쿄 긴자 한복판 와코홀서
글로벌 도예가 3명과 전시회
작업 거점 '마루누마 예술 숲'
韓 젊은공예작가 매년 초청도
無에서 시작하는게 매력…
흙과 대화 나누듯 작업하죠

"400년 전 한국 도공들이 일본에 정착한 이후 도자기 분야는 한일이 경계 없이 영향을 주고받아왔습니다. 국경은 분명 존재하지만, 예술에서는 그 경계가 점점 의미를 잃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도예가 하명구 작가(43)를 최근 일본 도쿄 긴자의 '와코홀'에서 만났다. 일본에서 활동하지만 외국 국적인 도예가 3명과 함께하는 전시가 한창일 때였다.
긴자 중심에 있는 시계탑 건물인 와코는 1881년 문을 연 유서 깊은 곳이다. 시계와 보석류, 도자기 등 명품 제품 판매가 주력이다. 건물 6층에는 아트 갤러리인 '와코홀'이 있는데 이곳은 일본의 모든 예술가가 전시를 꿈꾸는 곳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공예 분야에서 전통부터 현대까지 아우르는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도다테 가즈코 다마미술대 교수가 기획했다. 그동안 하 작가의 작품을 눈여겨본 도다테 교수가 참여를 권유한 것이다. 전시의 중심에는 '드림 랜드 거북이' 시리즈가 놓였다. 바다에서 태어난 거북이가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섰지만 끝내 신대륙을 발견하지 못하고 좌절한다는 이야기다. 이 서사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와 겪은 작가 자신의 방황과 고립, 그리고 극복의 과정을 투영한다.
하 작가는 "초기 작품은 작고 단순했지만 점차 크기가 커졌고, 등에는 식물이 자라며 외부와의 소통을 상징하는 새도 더해졌다"면서 "방황하는 존재들에게 작은 섬 같은 안식처가 되고 싶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경희대 도예학과를 졸업한 그는 교토시립예술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으며 일본 전위 도예 그룹 '소데이샤'의 작업을 접했다. 이를 계기로 흙을 조형적으로 다루는 방식에 눈을 떴다. 이후 영국 왕립예술대 교환 유학 시절에는 도예가 루시 리의 작품과 현대미술 흐름에 영향을 받아 개념 중심의 실험도 시도했다.
하 작가는 도예의 매력으로 '완전한 출발점'을 꼽는다.
"흙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합니다. 조각이나 회화와 달리 정해진 틀이 없기 때문에 훨씬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합니다."
그의 작업 방식도 독특하다. 별도의 스케치 없이 이미지를 떠올리고 재료와 '대화'를 나누듯 형태를 만들어간다. 어린 시절 인형에 이름과 성격을 부여하며 놀던 경험이 자연스럽게 작업 방식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제 작품은 동물이나 식물을 떠올리게 하지만 구체적인 형상은 아닙니다. 관람객이 직관적으로 인식하면서도 낯선 감각을 느끼길 바랍니다."
하 작가는 2016년부터 일본 사이타마의 '마루누마 예술의 숲'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곳에서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과 함께 한국 젊은 작가 초청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매년 작가 3명을 선발해 3개월 동안 제작과 전시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코로나19 기간 잠시 중단됐지만 지금까지 20명이 넘는 작가가 참여했다.
그는 한일 문화 교류의 과제로 '지속성'을 강조했다.
"단기 행사 중심의 교류는 많지만 오래 이어지는 것은 드뭅니다. 최소 10년은 지속돼야 신뢰가 쌓이고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네트워크가 만들어집니다."
하 작가는 2024년 도쿄조형대에서 고대 한일 문화 관계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도자기를 단순한 공예품이 아닌 '역사의 기록'으로 본다.
"가야와 마한의 토기가 일본 도예에 영향을 준 것은 일본 학계에서도 인정합니다. 도자기는 오래 남기 때문에 교류의 증거이자 당시 사회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이번 와코 전시는 하 작가에게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 공예계에서 와코는 신진 작가가 이름을 알리는 중요한 무대이기 때문이다.
하 작가는 앞으로 절이나 폐가 같은 비전통적 공간에서 설치 전시를 선보이는 새로운 시도도 준비하고 있다. 공간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해 '동화책 같은 전시'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요즘 젊은 일본 작가들은 한국에서 전시하고 싶어 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일 문화예술 교류도 더 깊어지길 기대합니다."
[도쿄 이승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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