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다 사이, 나무와 햇살 사이, 바람과 함께 거닐다 [경상남도환경재단과 함께 하는 생태여행 2]
자연 그대로 아늑함부터 편백의 시원함까지
제각기 다른 매력 지닌 걷기 좋은 통영 숲길
시간과 생명이 함께 만들어온 결 숨 쉬는 곳

통영에서 늘 먼저 말을 건네는 쪽은 바다입니다. 바다는 골목 끝까지 스며들어 마을을 비추고, 언덕마다 기대선 집들은 그 빛을 받아 하루를 엽니다. 항구를 따라 이어진 길과 섬으로 흩어진 풍경은, 이 도시가 오래전부터 바다와 함께 살아왔음을 증명합니다. 통영 바다는 숲을 쓰다듬고 온 바람, 마을에 쌓인 시간과 사람의 손길과 이어지며 따뜻한 결을 이룹니다. 우리는 그 결을 따라 통영 숲을 거닐어 보려 합니다.
숲에서 만나는 오래된 미래
먼저 찾은 곳은 통영시 용남면 화삼리에 있는 통영RCE세자트라숲입니다. 통영RCE의 세자트라숲인거죠. RCE는 유엔대학 산하에 있는 유엔지속가능발전교육센터의 약자입니다. 통영RCE는 2005년 세계 8번째, 국내 최초로 지정된 센터이면서 아시아 거점입니다. 현재 전 세계에 176개 RCE 도시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통영을 포함해 인천, 울산 울주, 강원 인제, 창원, 서울 도봉, 경기 광명 7개 도시에 RCE가 있죠. 세자트라숲은 2015년 옛 복정골 골짜기에 통영RCE 건물을 지으면서 같이 만든 생태공원입니다.

그렇다고 뭔가 엄청나구나 싶은 곳은 아니고요. 센터 건물 앞뒤로 경사면에 바다를 향해 펼쳐진 모양입니다. 공원 가장자리를 따라 센터로 이어진 도로 주변으로 줄지어 선 나무들이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방문객을 맞습니다. 공원 앞으로는 푸른 바다가 멋진 풍경을 만들고 있습니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곳은 거제입니다. 통영은 의외로 바닷가 모래사장이 거의 없죠. 해수욕장은 아니지만, 세자트라 공원 앞 바닷가에도 넓진 않지만 모래사장이 있습니다.
경사면에 있는 공원 안으로 산책로가 완만하게 만들어져 있는데, 통영시가 꼽은 걷기 좋은 길 18선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길 주변으로 습지생태원, 정화습지원, 잠자리연못, 논습지체험장 같은 곳들이 있고요. 경사면 아래 평지에 잔디광장이 있어서 아이들 놀이터나 공연·행사 장소로 쓰입니다.


세자트라숲이 있는 용남면 선촌마을 앞바다는 잘피로 유명한 곳입니다. 잘피는 연안의 모래나 펄 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여러해살이 바다식물이죠. 지구온난화의 원인인 탄소를 흡수하고 바다 생물의 서식지 노릇을 해서 생물다양성의 보고입니다.
마을 방파제에서 보면 물속에서 흐늘흐늘하는 식물들이 보일 거에요. 그게 잘피숲입니다. 선촌마을 잘피숲은 현재 법정보호종 9종 가운데 거머리말, 포기거머리말, 수거머리말 등 5종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이곳에 사는 150여 종 물고기의 산란장과 어린 물고기의 생육장 역할을 하는 거죠.
다행히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과 통영 화삼리 화삼어촌계 어민들 그리고 통영 시민들이 잘피 보존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과 화삼어촌계는 2022년부터 잘피모판법을 이용해 잘피를 육성·배양하는 데 성공하면서 잘피숲 확장에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세자트라숲에서 시작한 산책로가 이순신공원으로 이어집니다. 옛날 오솔길을 정비해서 만든 길입니다. 중간중간 군사 초소가 있는 걸 보면 이전에는 초소로 가는 길이기도 했겠습니다.
통영 RCE세자트라숲, 이순신 공원, 남망산 조각공원 입구까지 이어지는 총 13.9km 구간이 남파랑길 28코스입니다. 통영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걷는 길입니다. 이 중에서 세자트라숲에서 이순신공원까지 이어지는 왕복 왕복 2.9km 1시간 정도 구간은 통영 건강 십리 길로 불립니다. 울창한 숲과 바다 풍경이 멋진 곳이죠.
실제로 걸어보면, 이 산책로의 매력은 '크게 드러나지 않는 데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동백숲과 대숲이 울창한 초입은 키큰 나무들 덕에 답답하지 않고 기분 좋은 숲길입니다. 많은 이들이 오간 듯 길이 단단합니다. 초입을 지나면 산길이 이어집니다. 바다는 곧바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나무 사이로 스며듭니다. 파도 소리, 지나는 배 엔진 소리로 보아 바다는 분명 가까이에 있습니다.
어찌보면 걷는 행위보다 '머문다'는 느낌이 더 강합니다. 덱길에 닿는 발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그리고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윤슬 등 특별한 장면은 아니지만 걷는 맛이 좋습니다.



다음은 통영 구도심에 있는 통영생태숲으로 가볼까요. 통영운하 근처 천암산 자락에 2009년에 조성된 도심 숲입니다. 워낙 관광지가 많아서 통영을 찾은 여행객들이 이곳을 가는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진짜 주민들이 이용하는 숲이죠. 그만큼 한적하고 조용하게 산책하기 좋습니다.
도천동 721번지에 주차장이 있습니다. 주차장에서 보면 왼쪽이 산책로고요, 오른쪽은 도릿골유아숲체험원입니다. 처음 가시면 왼쪽부터, 여러 번 와봤다면 오른쪽부터 둘러보라고 주민들은 추천합니다.
생태길을 따라서 한 바퀴 돌아도 되고, 아니면 전망공원까지 직선으로 갔다고 그대로 돌아오셔도 됩니다. 길은 자동차가 다닐 만한 포장도로입니다. 깊은 숲을 생각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장애물이 없어 걷기가 편합니다. 근처 통영터널을 오가는 고속의 차량 소리를 들어며 걷다 보면 어느덧 바람 소리, 새 소리에 마음을 뺏깁니다. 다람쥐가 쪼르르 사라진 모퉁이를 따라 길은 한참을 이어집니다.


그리고 통영생태숲에 가시면 토끼도 있고 사슴도 있는데요. 사슴 두 마리는 원래 서피랑 경사지에 살던 친구들입니다. 흰사슴이 서랑이, 꽃사슴이 피랑이인데요. 주민들이 보살피다가 급경사지다 보니 비가 오고 하면 혹시나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 2022년 통영생태숲으로 옮겨서 돌보고 있습니다. 얘들은 서피랑이 있을 때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사슴이 저기 왜 있지, 싶었는데 주민들이 키우는 거였더라고요.
느낌 좋은 편백숲
자 마지막은 통영 미래사 편백나무숲길입니다. 여기도 숨은 명소에요. 미래사 가는 길부터 이미 좋습니다. 미륵산 숲길을 한참 들어가는데 이때 이미 기분이 좋아요. 미래사는 어쩌면 통영에서 제일 느낌 있는 사찰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요.

사찰 건물은 1954년 지어집니다. 종각이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십자팔작누각입니다. 지붕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것처럼 생겼습니다. 멋져요. 3층 석탑에는 티베트에서 모셔 온 부처님 진신사리 3과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미래사가 자리 잡은 곳인 편백숲입니다. 이 숲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심어 가꾸다가 해방이 되어 미래사에서 매입한 후 큰 숲으로 가꾸어 왔습니다.
이번 봄 통영 숲길을 걸으며 세상일에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슬러 보시는 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