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은퇴가 끝은 아니다." 국대 주장 출신 이창희 대표가 만든 새로운 골프길

김종석 기자 2026. 3. 26.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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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교 랭킹 1위, 대구·경북 최초 여자 골프 국가대표 선발
- 신지애 김하늘 이보미와 경쟁한 세리 키즈 황금세대
- 프로 좌절, 1부에서 3부 투어 강등, 20대 중반 선수 은퇴
- 더 골프 컴퍼니 창업. 프로암 시장에서 찾은 골프 산업 확대
- “예쁜 프로보다 좋은 프로”…후배에게 건네는 현실적인 조언
골프 국가대표 유망주에서 슬럼프로 조기 은퇴한 이창희 더골프컴퍼니 대표는 골프 행사 전문 업체를 이끌며 새로운 길을 열고 있다. 이창희 대표 제공

골프 국가대표를 지냈던 그의 명함에는 지금도 '대표'라는 두 글자가 선명합니다. 한때 태극마크를 단 대표였다면, 지금은 연간 1000팀이 넘는 프로암 행사를 이끄는 더골프컴퍼니 이창희 대표(37)입니다. 세리 키즈 황금세대의 치열한 경쟁을 통과한 그는 선수로만 남는 대신 골프의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그 선택은 많은 후배들에게 "은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라운드의 시작"이라는 현실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태극마크를 단 '대표'에서 다시 골프 사업을 하는 '대표'가 되는 여정은 멀고도 험했습니다. 그의 인생을 골프 라운드에 비교하면 페어웨이만 걷다가 처음으로 러프와 해저드를 넘나들며 백을 내릴까(기권)까지 고려했다고 할까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은 그의 손을 잡아주는 따뜻한 성원은 큰 힘이 됐습니다.

  이창희 대표는 '세리 키즈' 가운데 하나입니다. 경북 구미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4학년 겨울 골프를 시작했습니다. 1998년 박세리가 US여자오픈에서 '맨발 투혼'을 발휘하며 우승해 온 국민에게 감동을 전한 바로 그 해였습니다. "'골프하면 서울에 갈 수 있다'라는 어른 말씀에 정말 열심히 했어요(웃음)."

주요 아마추어 대회와 프로 2부 투어에서 정상에 오른 이창희 대표.

이듬해부터 초등학교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2004년 구미 오상고 시절 국내 고교 랭킹 1위에 올랐습니다. 2006년 대한골프협회(KGA) 국가대표로 선발됐을 때는 대구 지역 신문에서 줄줄이 관련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대구 경북 지역 최초의 골프 국가대표'라면서요.

박세리 영향으로 이창희 대표와 같은 1988년 전후 태어난 용띠 골퍼 가운데는 유달리 강자들이 많았습니다. 신지애, 박인비, 최나연, 이보미, 김하늘, 김인경…. 프로에 뛰어들어 한국, 미국, 일본 투어에서 상금왕, 대상 등을 휩쓴 한국 골프의 간판들이 쏟아졌습니다. 주니어 시절부터 이미 대성할 실력을 갖추고 있어 그 틈을 비집고 국가대표 되기란 하늘의 별 따기에 비유됐습니다. 이창희 대표는 그런 틈바구니에서 당당히 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뒤 주장까지 됐습니다.

이 대표는 "골프는 개인 운동이다 보니 혼자 훈련하고 혼자 결과를 책임지는 시간이 많다. 국가대표 주장을 맡으면서 팀을 이끌어야 하는 역할을 처음 했다.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사람을 이해하고 팀을 이끄는 데 중요한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했습니다.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던 명장 한연희 프로는 "매사에 열심히 하는 성실성이 돋보였고, 리더십까지 갖추고 있었기에 이창희 선수를 별 고민 없이 감독이 선임하는 주장으로 임명했다"라고 전했습니다.

  아마추어 시절 꽃길을 걷던 이 대표는 2007년 프로 데뷔 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2부 드림투어에서 1승을 했습니다. 이듬해인 2008년 KLPGA 1부 투어에 데뷔해 우승 없이 상금 랭킹 15위로 마치며 프로 무대에 연착륙했다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21세 나이에 시즌 상금 액수는 1억1334만 원. 또래 일반 친구들은 상상할 수 없는 연봉 수준이었지만 정작 이 대표는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국가대표까지 했으면 신인왕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우승도 못 하고…. 그런 정도의 성적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창희 대표가 레슨 프로 시절 그립 잡는 요령을 가르치고 있다. 
2008년 KLPGA투어 신인상 포인트 순위

2008년 신인상 타이틀은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 멤버인 후배 최혜용과 유소연이 막판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였습니다. 평생 한 번 뿐인 신인상은 최혜용에게 돌아갔습니다. 그해 상금왕은 이창희 대표의 23년 친구로 아직도 왕성하게 현역 생활을 하는 신지애였는데 상금 액수는 7억6518만 원. 동갑내기 김하늘이 상금 3위로 3억9614만 원이었습니다.

비교는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기준은 점점 더 높아졌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성적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스윙 메커니즘에 대한 집착은 입스로 이어졌습니다. 클럽만 잡으면 온몸이 얼음처럼 굳어져 스윙을 공포스럽게 느꼈을 정도였습니다. 자신의 SNS 아이디에 'Perfect'라는 단어를 넣을 만큼 완벽을 쫓는 성격도 오히려 독이 됐습니다.

  흔들림은 길어졌고, 무대는 점점 내려갔습니다. 1부에서 2부, 다시 3부 투어까지 떨어졌습니다. 2014년을 끝으로 투어 프로 생활을 마감했습니다. 이 대표 나이 25세 때 일입니다. 이젠 암흑기 같던 과거도 담담하게 전하게 됐습니다. "너무 자신을 몰아붙이기만 했던 것 같다. 그때는 나 자신을 인정하거나 칭찬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 열심히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큰 착오였다. 방법을 찾지 못한 채 계속 노력만 하다 보니 오히려 입스를 극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열심히 올라왔던 길에서 계속해서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다시 올라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골프장을 떠난 뒤의 삶은 더 냉혹했습니다. 공장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고, 카드 영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다단계에 속아 돈을 잃기까지 했습니다.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인생의 바닥'을 몸소 느끼던 시간이 오히려 이 대표를 단단하게 했습니다. "그때는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경험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골프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이창희 대표.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던가요. 골프를 향한 미련을 떨칠 수 없었던 이 대표는 2015년 우연히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대형 스포츠센터에서 레슨프로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습니다. 자신에 단맛 쓴맛을 모두 보게 한 골프는 일반인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선수 시절 경험을 살려 수강생의 눈높이에 맞는 강습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대표는 "어느새 골프를 피하고 도망치고 있더라. 그래서 뭐라도 해야겠다고 해서 레슨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사회를 알게 됐다. 선수를 하면서는 알지 못했던 사람들과의 관계와 다양한 경험을 접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달라졌다"라고 말했습니다.

대표적인 마인드 스포츠인 브리지 게임 현장에서 만난 이창희 대표와 김혜영 회장. 김혜영 회장 제공

이때 만난 정몽윤 현대해상화재 회장의 부인인 김혜영 한국브리지협회장이 이 대표에게는 인생 2막을 활짝 열게 한 귀인이 됐습니다. "회장님은 누구보다 철저하게 시간을 관리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는 베푸는 삶을 살고 계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도 더 바르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죠."

  폭넓은 네트워크를 지닌 김 회장의 도움으로 주요 기업체 골프 행사를 하나둘씩 진행했습니다. 좋은 평판이 돌면서 행사 유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던 이 대표는 2020년 10월 더 골프 컴퍼니를 창립했습니다. 창립 배경은 단순했습니다. 레슨을 통해 기업 VIP 행사에서 프로의 역할을 체계적으로 교육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골프가 단순한 경기에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문화'로 확장되는 흐름 속에서, 프로의 품격을 강조하는 회사를 만들기로 결심한 겁니다. "기업 VIP 골프 행사는 단순한 라운드가 아니라 신뢰를 쌓는 자리입니다. 프로가 어떤 태도로 고객을 대하느냐에 따라 그 하루의 경험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골프 실력 위에 사람을 대하는 태도까지 갖춘 프로를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좋은 필드레슨의 기준도 명확합니다. 그는 "단순히 스윙을 교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골프를 실제 코스에서 완성하는 과정이다. 기술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코스에서의 상황별 선택, 전략, 그리고 규정과 매너까지 함께 알려드려 고객이 스스로 플레이를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진짜 좋은 레슨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더골프컴퍼니가 소속 프로 교육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진행한 트레이닝 교육.

더골프컴퍼니는 단순히 스윙을 가르치는 업체는 아닙니다. 기업 VIP 행사와 프로암을 전문적으로 운영하며, 프로골퍼에게 스포츠맨십, 고객 응대 태도, 매너까지 교육하고 있습니다. 입소문이 나면서 한 팀부터 40팀까지 다양한 규모의 행사 경험을 쌓다 보니 올해는 1500팀 가까이 진행할 것으로 보입니다. 의료, 피부과, 커피 브랜드 등과 협력해 프로와 고객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며 골프 산업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올 시즌에는 31명의 소속 프로와 함께 기업 행사에 특화된 교육 시스템을 시작했습니다. 회사의 비전으로 고객을 편안하게 만드는 프로, 기업 브랜드 가치를 이해하는 프로, 팀의 분위기를 책임지는 프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예쁜 프로보다 좋은 프로가 먼저라는 김혜영 회장님의 말씀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있다. 좋은 사람과 함께한 시간은 오래 기억에 남고, 결국 그것이 골프 문화의 품격을 높이는 길이라고 믿는다."

  이창희 대표를 통해 골프 행사를 수시로 진행하는 국내 정상급 매니지먼트 회사 크라우닝 우도근 대표는 "더골프컴퍼니는 프로암 프로 선수들의 고객 응대 및 대화 요령 등 기본 에티켓과 필드레슨 노하우 전수로 동반 고객 만족도가 높다. 행사를 주최한 기업의 매출 증대와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이바지하는 업체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세리키즈로 처음 골프를 시작한 초등학교 시절 이창희 대표와 요즘 모습. 이창희 대표 제공

이창희 대표는 후배들에게 "선수 생활이 끝나는 순간이 인생의 끝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많은 프로가 은퇴 후 막막함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특히 학창 시절 운동에만 매달리는 국내 학생 운동 선수가 대부분인 현실이다 보니 골프채를 놓는 순간 뭘 해야할지 몰라 방황하는 때도 많습니다.

  이 대표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길이 열려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도 선수 생활이 끝났을 때는 정말 눈앞이 깜깜했어요. 하지만 골프는 선수나 레슨 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산업이 될 수 있습니다. 후배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어요. 은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라운드의 시작이라고요."

  이 대표는 분명한 목표를 밝혔습니다. 선수 생활 이후에도 골프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 프로들이 함께 성장하고, 골프 산업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앞으로도 더골프컴퍼니를 통해 많은 프로가 함께 성장하고, 골프 산업 안에서 다양한 역할을 만들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가 남기고 싶은 마지막 퍼트입니다."

김종석 채널에이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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