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호르무즈 긴장...숫자로 읽는 대한민국 에너지 구조 임계점

박치현 대기자 2026. 3. 26.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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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학전문기자 컬럼]
위기의 본질, 연료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우리가 보지 못한 전력망 내부의 균열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은 우리나라 에너지 수입의 취약성을 다시 드러냈다. 하지만 진짜 위기는 바다 위가 아니라, 전력망 내부에서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수입된 연료는 발전소에서 전기로 바뀌고, 촘촘히 얽힌 전력망을 따라 산업과 도시를 움직인다. 이 과정에서 외부 에너지 충격은 전력 시스템을 거치며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은 우리나라 에너지 수입의 취약성을 다시 드러냈다. 사진은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로 기사 속 장소 등과 관계없음.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같은 위기라도 누가 비용을 떠안는지, 어디에서 공급이 흔들리는지는 결국 에너지 구조 설계에 달려 있다. 우리의 관심은 여전히 항로와 수입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내부에 자리 잡고 있다. 보이지 않는 균열을 들여다본다.

전력 믹스의 착시…'30-30-30 구조'가 가리는 시스템 리스크

2025년 기준 국내 발전량 구성은 원자력 30%, LNG 28~30%, 석탄 30%, 재생에너지 10% 내외로 집계된다. 외형상으로는 특정 전원에 치우치지 않은 '균형형 포트폴리오'에 가깝다. 그러나 전원별 특성과 운전 방식의 차이를 반영하면, 안정성보다 오히려 특정 전원에 대한 구조적 의존을 내포한다.
2025년 기준 국내 발전량 구성은 원자력 30%, LNG 28~30%, 석탄 30%, 재생에너지 10% 내외로 집계된다. (AI 생성 이미지)/뉴스펭귄

핵심은 필요한 전기를 얼마나 빠르게 늘리고 줄일 수 있느냐, 즉 '조정 가능성'이다. 원자력은 대부분 일정한 출력으로 계속 돌아간다. 전력 수요가 갑자기 바뀔 때 즉시 대응하기 어렵다. 석탄도 연료는 안정적이지만, 출력 조절 속도가 느리고 일정 수준 이하로 낮추기 쉽지 않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날씨가 결정한다. 전력 수요 변화나 재생에너지의 변동을 실시간으로 맞추는 데는 한계가 있는 전원이 많다는 뜻이다.

이들 전원의 '비유연성'을 보완하는 역할은 LNG 복합발전에 집중된다. 가스터빈은 시동을 거는 시간이 짧고 출력을 빠르게 늘리고 줄일 수 있어, 시간대별 전력 수요 변화와 재생에너지 출력 변동을 실시간으로 따라간다. 실제 전력시장 운영에서도 이러한 조정 기능의 상당 부분을 LNG가 담당한다. 발전 비중은 30% 수준에 머물지만, 계통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보다 훨씬 크다.

전력 수요의 변동 폭은 계절에 따라 하루 20~30GW 수준에 이른다. 여기에 태양광 중심의 재생에너지 변동성이 더해지면, 특정 시간대에는 수 GW 단위의 급격한 출력 변화가 발생한다. 원자력과 석탄이 고정 출력에 가까운 상태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이 변동을 실시간으로 보정할 수 있는 전원은 사실상 LNG가 유일하다. 

LNG는 외부 변수에 취약하다. 수입 의존도가 90% 이상으로, 국제 가격 변동성이 크다. 2022년 이후 글로벌 가스 가격 급등기에는 발전단가 상승과 함께 전력시장 정산가격(SMP)이 급등했고, 전기요금 인상 압력으로 직결됐다. 전원 비중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숨은 비용'이다.

계통 안정성 측면에서도 부담은 커지고 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늘어날수록 발전량의 변동 폭은 함께 커진다. 그러나 이 변화를 흡수할 수 있는 유연 전원은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다. 양수발전과 에너지저장장치(ESS)가 일부 보완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규모로는 수 시간 동안 이어지는 대규모 출력 변화를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로 인해 단기적인 수급 조정 기능은 앞으로도 LNG에 의존하는 구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유연성 지표' 중심의 전원 구성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출력 조정 속도, 최소 출력, 기동 시간 등 물리적 특성을 반영한 계통 설계가 병행되지 않으면, 겉보기 균형은 유지되더라도 실제 운영 리스크는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의 '30-30-30'은 균형 잡힌 구조로 보이지만 역할 분담으로 보면 비대칭에 가깝다. 원자력과 석탄이 고정 출력을 담당하고, 재생에너지가 변동성을 확대하는 가운데, LNG가 이를 모두 흡수하는 형태다. 비중의 착시를 넘어, 기능 중심의 재해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LNG 10일, 전력 가격을 좌우하는 구조

국내 LNG 저장량은 1,100만~1,200만 톤으로, 겨울철 기준 8~10일 사용량에 불과하다. 원유가 180~200일 비축(2억 배럴)되는 것과 대비된다. 저장 기간만 보면 가장 취약한 에너지원이다. 하지만 역할은 정반대다. LNG는 전력 수요 변화와 재생에너지 변동을 실시간으로 맞추는 핵심 조정 전원이다. 원자력과 석탄이 고정 출력에 가까운 상황에서, 실제 운영의 중심은 LNG에 있다.

가격 영향력은 더 크다. 전력 도매가격(SMP)은 가장 비싼 발전기의 연료비로 결정된다. 사실상 LNG가 기준이 된다. 2021년 SMP는 kWh당 94원이었지만, 2022년에는 200원을 넘었다. LNG 가격이 MMBtu당 8달러에서 20달러 이상으로 급등한 영향이다. 2025~2026년 현재는 안정화 국면에 진입했지만, 여전히 10~15달러 수준의 변동성을 보이며, 과거보다 높은 가격대가 유지되는 흐름이다. LNG는 저장은 10일 수준으로 짧지만, 전력 값을 결정하고 국내 에너지 시스템을 좌우하는 구조다.

전원별 시간·공간 불균형…전력 시스템의 구조적 제약

석탄발전은 평균 20~30일 이상의 재고를 유지한다. 공급선도 인도네시아 40%, 호주 30% 등으로 분산돼 있다. 연료 가격 변동성도 상대적으로 낮다. 2022년 LNG 가격이 두 배 이상 급등할 때 유연탄 상승률은 30~40% 수준에 머물렀다. 이 때문에 위기 때마다 석탄 가동률은 반복적으로 상승한다. 실제로 2022년 석탄 발전량은 전년 대비 증가했다.

문제는 배출이다. 석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kWh당 820~1,000g으로 LNG(400~500g)의 두 배 수준이다. 전력 수급이 불안해질수록 정책 우선순위는 탈탄소에서 공급 안정으로 이동한다. 단기 대응이지만, 반복되면 정책 방향 자체를 흔든다.

원자력은 다른 전원과 구조가 다르다. 발전단가에서 연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10% 수준으로 낮다. 우라늄도 장기 계약으로 조달돼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 실제로 유가나 LNG 가격이 급등했던 시기에도 원전 단가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2026년 현재 가동률은 70%대 수준이지만, 운영 여건에 따라 80%까지 높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용률이 10%포인트 올라가면 8~10GW 규모의 추가 전력 공급 효과가 발생한다. 다만 신규 원전 건설에 10년 이상 걸리고, 출력을 빠르게 조정하기는 어렵다. 단기적인 수급 대응보다는 장기적인 안정성을 담당하는 전원으로 평가된다.

재생에너지는 설비 규모에 비해 실제 발전 기여도가 낮다. 2026년 기준 설비 용량은 40GW를 넘었지만, 전체 발전 비중은 10% 초반에 머물고 있다. 태양광은 평균 15%, 풍력은 20~25% 수준의 이용률을 보인다. 출력 제한도 늘고 있다. 2023년 80건에서 2025년 100건 이상으로 증가했다. 송전망과 저장 설비가 부족해 생산된 전기를 모두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재생에너지는 설비를 늘리는 단계에서, 전력망이 이를 얼마나 수용할 수 있는지가 핵심 과제다.
재생에너지는 설비 규모에 비해 실제 발전 기여도가 낮다. 2026년 기준 설비 용량은 40GW를 넘었지만, 전체 발전 비중은 10% 초반에 머물고 있다. (AI 생성 이미지)/뉴스펭귄

공간 불균형도 심화되고 있다. 전체 전력 수요의 40%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반면 대규모 발전 설비는 지방에 분산돼 있다. 이로 인해 장거리 송전 의존도가 높아지지만, 송전선 건설은 주민 수용성 문제로 지연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지방에서는 전력이 남아 출력이 제한되고, 수도권에서는 공급 부족 위험이 발생하는 이중 구조가 나타난다. 우리나라 전력 시스템의 병목은 생산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에 있다.

석탄은 시간적으로 안정적이지만 환경 비용이 크다. 원자력은 장기 안정적이지만 즉각 대응이 어렵다. 재생에너지는 생산은 늘었지만 흡수가 제한된다. 전력은 충분히 생산되더라도, 필요한 시간과 장소에 전달되지 못하는 구조다.

'충격 이후'를 설계하지 못한 시스템의 미래

중동발 위기는 한국 에너지 구조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냈다. 석유·가스 가격이 급등으로 발전사와 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석유화학업종과 반도체, 배터리 등 24시간 가동이 필수인 업종부터 생산라인 가동 조절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안정적 전력 공급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자 일부 글로벌 기업은 신규 투자 검토를 유보하거나 해외 대체 입지를 물색하는 사례가 늘었다.

전력망 상황도 악화됐다.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변동성은 커졌지만, 이를 보완할 저장장치와 예비 전력은 부족했다. 급격한 기온 변화나 발전기 정기보수 시기만 돼도 전력당국은 수요 억제에 나섰고, 제조업 현장은 생산 조정을 강요받았다. 계통 운영은 효율보다 안전에 집중하는 구조로 고착됐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추가 비용은 최종적으로 산업계 부담으로 돌아왔다.

에너지 비용 문제는 특정 업종을 넘어 거시경제 지표를 흔들기 시작했다. 전기요금 인상이 물가로 전이되고, 수출 기업의 원가 경쟁력은 둔화됐다. 글로벌 투자사들은 한국을 '전력 공급 리스크 지역'으로 분류하기 시작했고, 실제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 과정에서 전력 인프라 안정성이 주요 조건으로 부상했다.

이런 구조에서 공급 설비 확충만으로는 대응이 어렵다는 진단이 나온다. 실제로 신규 발전소 준공에도 불구하고, 폭염과 발전기 고장이 겹치면서 예비율은 위험 수준으로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ESS 증설과 수요관리 시스템 고도화, 계통 유연성을 동시에 확보하지 않는 한 유사한 위기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결국 시스템 재설계 여부가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현행 구조를 유지할 경우, 이번 중동 위기처럼 국제 에너지 수급에 차질이 생기고, 가격이 변동할 때마다 산업계와 가계가 비용과 불안을 분담하는 방식이 반복된다. 반면, 저장 인프라와 분산형 전원, 실시간 수요관리 체계를 갖춘 '완충형 시스템'으로 전환할 경우, 외부 충격의 전파 경로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에너지 전환의 핵심은 친환경 여부를 넘어, 통제 불가능한 외부 변수를 시스템 내에서 흡수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 지금의 위기는 더 이상 대응을 미룰 수 없는 단계에 진입했음을 분명히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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