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産 원유·납사 도입…수출·금융·물류 ‘3중 장벽’ 제약 여전

고은결 2026. 3. 26.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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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호르무즈 봉쇄 속 대체 조달 방안 제시
업계 “결제·보험·수출 측면 등 고려 요소 많아”
납사는 가능성 더 높지만 물량·가격 등 불확실성
“공급 불안 대응할 선택지 확대 차원에선 유의미”
업계, 스팟 확보·가동률 조정 ‘버티기 국면’ 진입
러시아의 원유 유조선의 모습. [로이터]

[헤럴드경제=고은결 기자]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에너지 수급 위기에 대응해 러시아산 원유와 나프타(납사) 도입 가능성을 열어두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정작 업계에서는 여전히 신중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금융 결제와 2차 제재 등 핵심 리스크가 일정 부분 완화된 점은 긍정적이지만, 실제 조달과 유통 과정에서의 제약이 여전하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정부가 선택지를 넓혀준 조치라는 점에는 공감했다.

26일 정부에 따르면, 미국과의 협의를 통해 러시아산 원유 및 석유제품 도입 시 달러 외 통화 결제가 가능하고 2차 제재도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해 최대 걸림돌인 금융 리스크를 상당 부분 완화했다. 특히 원유보다 납사가 상대적으로 도입이 용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석유화학 업계 중심으로 선택지가 확대됐다는 평가다. 다만 해상에 선적된 물량만 거래 가능해, 품질이나 물량 확인은 어렵고 계약부터 결제까지 단기간 내 마무리해야 한다.

수출·금융·물류 ‘3중 장벽’…정유업계 “현실적 제약 여전”

정유업계는 실질적인 도입까지 넘어야 할 장벽도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정부 방향성은 제시됐지만 구체적 실행 가이드나 인프라 지원 없이 바로 움직이기 어렵다”며 “가장 큰 문제는 수출”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산 원유를 정제한 제품을 유럽 등 주요 시장으로 수출할 때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이 핵심 부담으로 꼽힌다. 유럽연합(EU)이 러시아 에너지 의존 탈피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원산지 검증이나 거래 제한 등 추가 리스크가 뒤따를 수 있다. 이 같은 제재 환경으로 국내 정유사의 러시아산 원유 도입은 이미 중단된 상태다. 한국이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한 것은 2022년 4월이며, 2021년 기준 전체 수입량에서 러시아산 원유 비중은 5.6% 수준이이었다.

조달 과정의 물리적 제약도 크다. 러시아산 원유나 나프타를 운송할 선박 확보와 해상보험 가입이 쉽지 않고, 거래 역시 제한된 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안정적 공급망 구축이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결제 문제가 해소되더라도 선박, 보험, 금융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에서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며 “들여올 방법 자체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은행권 역시 환전·송금 과정에서 리스크를 이유로 거래에 소극적일 가능성이 높다.

가뜩이나 정유사는 배럴당 150~160달러 수준의 고가에서 스팟 물량을 확보하고 있어 비용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향후 유가가 하락할 경우 대규모 재고평가 손실 가능성까지 있는 만큼, 추가 리스크를 감수하며 도입에 나서기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러시아산 도입보다 비축유 방출 계획을 선제적으로 공유하는 조치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옵션은 늘었지만 확보는 별개”…해상 물량·시간 제약 변수

석유화학 업계는 상대적으로 유연한 입장을 보이면서도 조심스러운 태도로 지켜보고 있다. 러시아산 납사는 과거 사용 경험이 있고,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지 않아 운송 거리와 비용 측면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여겨졌다. 실제로 제재 이전까지 러시아는 한국의 최대 납사 공급국이었다. 2021년 기준 러시아산 수입 비중은 22.8%(5764만배럴)로 2위인 아랍에미리트(UAE·3499만배럴)를 크게 웃돌았다. 그러나 2022년 7월 대러 제재 이후 수입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업계는 도입 자체보다 실행 가능성을 더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가격이나 물류 측면의 이점은 있지만 결제, 거래 구조, 물량 확보 경쟁 등 변수가 많다”며 “특히 유럽향 거래에서는 원산지 관련 추가 확인 요구 등 리스크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조치가 단기간 내 거래를 전제로 한 만큼 실제 확보 가능한 물량이 제한적이라는 점도 변수다. 또 지중해나 아프리카 인근에 있는 화물을 국내로 들여올 경우 운송 거리 증가에 따른 비용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거래는 입찰 방식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운임이 낮은 지역의 수요자가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할 경우 국내 기업이 물량 확보에 실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운임이 유리한 지역 수요자에게 물량이 돌아갈 것이란 설명이다.

“셧다운 막으려면 모든 선택지 검토해야”

이에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현 상황을 단번에 해소할 해법이라기보다는, 선택지 확대 차원에서 의미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미 중동발 원료 수급난이 본격화되며 비용 부담을 감수한 스팟 물량 확보와 가동률 조정에도 일부 공장은 결국 가동 중단까지 돌입한 위기 상황에서, 고려할 수 있는 옵션이 늘었단 점은 긍정적이라는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러시아산 도입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선례가 거의 없어 기업들이 먼저 움직이기에는 부담이 크다”며 “정부 차원의 추가 조율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원료 확보가 시급한 상황인 만큼 가능한 모든 선택지를 열어두고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한 업계 고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선 공장 가동 중단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막으려 가동률도 낮추며 안간힘을 쓰는데, 러시아산 납사 도입이 원활하다면 수급은 해결되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제약 요인이 많아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정부가 여러 변수가 있는 러시아산 도입 카드를 꺼낸 것 자체가 지금 상황이 얼마나 엄중한 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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