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결혼기념일에 돌아가신 아버지… 평생 잊지 말라는 뜻이겠지요[그립습니다]

2026. 3. 26.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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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오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꽃샘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이 계절, 유독 아버지가 생각난다.

입학한 지 한 달 남짓 되었을 때, 담임 선생님께서 나를 따로 부르신 후 아버지께서 보내신 것이라며 뜻밖의 편지 한 통을 건네주셨다.

나는 아버지의 반만큼이라도 아내를 사랑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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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립습니다 - 나의 아버지 김기영(1946∼2019)
지난 2017년 아버지 생신에 어머니와 손주들이 함께 축하하며 사진을 찍었다.

3월이 오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꽃샘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이 계절, 유독 아버지가 생각난다.

요즘 나는 아이들 독서 교육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중학교 3학년 아들과 1학년 딸, 둘 다 책과는 담을 쌓았다. 주말이면 “같이 책 이야기라도 해보자”며 식탁에 앉히려 하지만 아이들은 슬그머니 방으로 사라지고 만다. 잔소리를 하려는 순간, 나도 안다. 마지막으로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은 게 언제인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는 걸. 퇴근도 늦은 데다 술자리까지 잦으니, 아내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넨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그렇게 한없이 작아지던 어느 3월 저녁, 서재 한편에 꽂혀 있던 아버지의 유고집 ‘암 그 후의 삶’이 눈에 들어왔다.

2011년 췌장암 진단을 받으신 아버지는 5년 생존율 5%의 절망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으셨다. 12시간의 대수술 후 10m도 걷기 힘드신 몸으로 매일 두 시간씩 관모산을 오르셨고, 방사선치료·항암주사를 수십 차례 받으면서도 영어 성경과 난중일기를 몇 해에 걸쳐 손으로 베껴 쓰셨다. 투병 중에도 손주들에게 매달 책과 편지를 부치셨고, “100권을 채우는 것이 목표”라며 끝내 멈추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그 고통의 시간을 프로스트의 시구 하나로 버티셨다. “잠들기 전에 여러 마일을 가야만 한다.” 결국 수술 5년 만에 완치 판정을 받으셨다. 유고집을 덮을 때마다 아버지 앞에서 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마음 한편에 가시처럼 박혀 있는 기억이 하나 있다. 1986년 아시안게임이 있던 해, 중학교에 입학했다. 입학한 지 한 달 남짓 되었을 때, 담임 선생님께서 나를 따로 부르신 후 아버지께서 보내신 것이라며 뜻밖의 편지 한 통을 건네주셨다. 평소 많이 못 놀아줘서 미안하고, 중학교에 입학해서 낯설겠지만 힘내라는 내용이었다. 그때는 왜 그리 부끄러웠는지 화장실에 가서 편지를 읽었다. 그날 저녁 아버지께서 편지를 받았는지 물으실 때 아직 받지 못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운명하신 아버지를 중환자실에서 장례식장으로 홀로 모시면서, 차가워진 그 얼굴에 손을 얹고서야 뒤늦게나마 말씀드렸다. 고맙고 사랑한다고.

유고집 마지막 장에는 임종 4일 전 어머니께 쓰신 편지가 담겨 있다. 연애결혼이 드물던 시절 부모님은 캠퍼스 커플로 만나 결혼하셨다. 아버지는 다투신 뒤에도 연애하셨던 장소로 어머니 손을 꼭 잡고 가실 정도로 낭만적인 분이셨다. 그런 아버지가 어머니 칠순을 앞두고 쓰신 그 글이 마지막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아버지는 50년 결혼 생활을 ‘꽃길, 홍수 난 길, 과수원길, 빙판길’에 비유하시며 끝에 이렇게 쓰셨다. “숨이 멈추는 그 시각까지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그 문장을 읽을 때마다 눈이 뜨거워진다. 나는 아버지의 반만큼이라도 아내를 사랑하고 있는지.

2019년 3월 26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날은 내 결혼기념일이다. 아버지는 평생 내 기억 속에 남아 계시고 싶은 걸까. 축하해야 할 날과 그리워해야 할 날이 하나로 겹쳐, 이날만큼은 웃음과 눈물이 함께 밀려든다.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같이 즐겨 먹던 뜨끈한 아귀탕 한 그릇이 그리운 게 아니라, 그 식탁 앞에 앉아 계시던 당신이 그립습니다.

아들 김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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