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21 양산 1호기 출고…‘한국형 전투기 시대’ 본격 열렸다 [박수찬의 軍]
공군 전력·산업 동시에 변화
공대지·6세대 과제 남아
25일 오후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옅은 회색으로 몸을 감싼 기체가 등장했다. 각지고 뾰족한 모서리와 선을 지닌 날렵한 외형을 갖춘 기체를 본 사람들 사이에선 탄성이 터져나왔다.
‘단군 이래 최대 무기 사업’으로 불리는 한국형 전투기 개발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KF-21 전투기 양산 1호기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2016년 체계개발을 시작한 지 10년만에 거둔 성과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립한 국가 중에서 전투기를 독자적으로 개발·생산한 나라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KF-21 사업의 공식 명칭은 보라매 사업이다. 보라매(R&D), 보라매 최초양산으로 사업을 구분한다.
보라매(R&D)는 KF-21를 개발하는 사업이다. 2002년 소요결정 이후 타당성 논란을 거듭하다 2015년에 체계개발이 시작됐다.
공대공 전투능력을 갖춘 블록-Ⅰ을 개발하고, 공대지 능력을 중심으로 하는 블록-Ⅱ의 추가무장시험이 이뤄진다.
개발을 맡은 KAI는 블록-Ⅰ 사양의 시제기 8대(비행시험 6대, 지상시험 2대)를 제작했다. 비행시험에 투입된 시제기는은 2022년 7월 19일 첫 비행에 성공했으며, 지난 1월 비행시험을 마쳤다.
42개월간 1600여회의 비행시험과 1만3000여개의 시험조건을 통해 기체 성능을 검증했다. 올해 상반기 중 체계개발을 마칠 예정이다.

KF-21 양산은 KAI 고정익동에서 이뤄진다. 축구장 3배 넓이인 2만1600㎡(약 6500평)에 달하는 거대한 공간을 지닌 KAI 고정익동에 구축된 KF-21 생산라인에서 KF-21이 순차적으로 만들어진다. 한 달에 2대 생산이 목표다.
부품 가공 및 중요 구성품 제작, 전·중·후방 동체 조립을 거치면 최종조립을 실시한다. 최종조립은 항공기 외형을 완성하고, 전자장비와 엔진 등 각종 장비를 장착해 항공기 기능 정상 작동 여부를 시험하는 단계다. 이후 비행수락시험을 한다.
양산 과정에선 시제기 개발·제작 경험이 적극 활용된다. 시제기는 개발·제작 과정에서 각종 시험을 하면서 개선·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확인하고, 새로운 방법을 적용한 뒤 결과를 검증하는 작업을 반복한다. 때문에 일정이 늦어지기도 한다.
KF-21은 시제기 개발·제작 단계에서 문제점을 식별·검증하는 과정을 거쳤다. 따라서 양산 단계에선 이같은 부분이 크게 줄어들어 작업 일정 준수에 도움이 된다.

KF-21은 체계개발을 맡는 KAI와 더불어 600여 개의 국내 협력업체가 시제기 개발때부터 참여하고 있다. KAI는 체계종합업체로서 부품과 장비를 생산하는 협력업체들에게 개선사항 등을 전달한다. 일종의 컨트롤타워 역할이다.
최초양산되는 기체는 예천, 강릉 기지에 배치될 전망이다. 두 기지에 대한 패키지 시설사업도 추진중이다.
노후한 F-5E 전투기가 있던 강릉에는 전투비행대대 위주로 편성되고, 조종사 양성 등을 진행하는 예천에는 복좌형 KF-21이 배치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KF-21 최초양산에 이어 후속양산 사업도 추진한다. 올해 사업 타당성 심층분석 및 총사업비 확정, 양산계획 수립을 거쳐 2027년도에 후속양산 사업 예산을 편성, 블록-Ⅱ 80대를 만들어 전력화할 계획이다.

KF-21은 APY-016K 능동전자주사(AESA) 레이더를 비롯한 일부 핵심 기술을 국산화하는 성과를 거뒀다. 설계·체계통합·양산·시험에 이르는 단계를 국내에서 진행하는 기반을 확보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하지만 KF-21은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더 많다.
전투기로서 가장 기본적인 능력인 공대공 전투는 큰 문제가 없다. KF-21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미티어 장거리 공대공미사일을 채택했다.
영국 MBDA가 개발한 미티어는 최대사거리가 200㎞가 넘는다. 램제트 엔진을 탑재해 표적에 도달할때까지 매우 빠른 속도를 유지한다.

미티어가 AIM-120D보다 전방·후방·측면에서의 교전이 훨씬 유리한 이유다.
반면 블록-Ⅱ에서 구현될 공대지 능력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위사업청은 최초 공대지 능력을 기존 계획보다 1년 6개월 단축, 내년부터 시험에서 통과한 공대지 무장들을 KF-21 양산기에 적용할 예정이다.
국방과학연구소(ADD)는 2028년까지 APY-016K AESA 레이더가 지상과 해상 표적까지 탐지할 수 있도록 성능 검증을 진행한다.

천룡과 JDAM의 중간 단계에 해당하는 사거리와 위력을 지닌 공대지 무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특히 이란 전쟁에서 적 방공망을 제압하는 작전과 공대함 공격의 중요성이 부각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거리 지대공미사일 위협 밖에서 지상 레이더와 해상의 군함을 파괴하는 능력을 확보하는 것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MBDA가 만든 스피어 미사일은 최대 사거리가 120∼140㎞로서 공대지·공대함 능력을 갖췄다. 기동차량과 소형선박, 고정 시설 등을 타격한다. 양방향 데이터링크를 탑재해 비행중 경로 수정 등이 가능하며, 악천후에서 운용이 가능하다.
탄두 대신 전자전 장비와 추가 연료를 장착한 스피어-EW는 최대 비행거리가 300∼400㎞에 이른다. 적 방공망 외곽에서 스피어-EW를 발사하면, 스피어-EW가 적 방공망 안에서 교란·기만 작전을 펼친다. 영국 공군용으로 쓰일 예정이다.

공대지·공대해 능력을 지닌 KF-21 블록-Ⅱ가 완성되어도 문제는 여전하다. KF-21 개발을 통해 확보한 경험과 지식, 인력을 유지하려면, 신규 프로젝트가 필수다.
1980년대 미국산 F-5 전투기를 면허생산한 ‘제공호’를 전력화했으나, 후속 사업이 없어서 관련 설비가 사실상 버려지다시피 했고, 경험도 사장된 바 있다.
공군은 2040년대 중·후반을 목표로 차세대 전투기 도입을 저울질하고 있다. F-16 퇴역에 대비해서 KF-21보다 진보한 스텔스 기술, 소형 무장, 엔진, 양자통신 등을 갖춘 6세대 전투기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6세대 전투기를 개발해서 전력화하려면 20여년이 더 걸릴 예정이고, 현 시점에서 개발을 진행해도 핵심 기술 식별 및 검증 등의 단계를 벗어나기가 어렵다.
다른 유인 항공기 분야도 신규 연구개발 사업이 많지 않다. 현재 LIG넥스원과 대한항공이 진행중인 전자전기 개발 및 UH-60 성능개량 사업 등이 있으나, 지금 당장 착수가 가능한 신규 개발 프로젝트는 눈에 띄지 않는다.

일각에선 국제공동개발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영국·이탈리아·일본 주도의 GCAP, 프랑스·독일·스페인이 참여하는 미래전투항공체계(FCAS)를 비롯해 유럽·동남아 국가와의 신규 프로젝트 공동추진을 통해 기술 개발과 외교관계 강화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와 업계 차원의 추가 투자와 관심이 줄어든다면, 애써 얻은 성과와 산업 생태계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단순한 기술 자립을 넘어서 항공우주강국으로 도약하기를 원한다면, KF-21 양산을 새로운 계기로 삼아 발전을 추구하는 전략과 정책이 필요하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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