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정당화해 줄 창구단일화 제도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거쳐 분출한 민주노조운동은 자주적·민주적·연대적 노동조합을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노동악법 철폐 투쟁'도 함께할 수밖에 없었다. 노동법으로 특정한 노조형태를 강제하고, 사용자 지배하에 있는 기존노조 외 다른 노조는 허용하지 않았던 복수노조 금지제도는 대표적 노동악법이었다. 1948년 제정 헌법이 "단결,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천명한 지 무려 반세기가 지난 1997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이르러서야 초기업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되었고, 기업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된 것은 그로부터 또 14년이 지난 2011년이 되어서다.
이런 연혁을 돌아보면, 사업·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설립을 허용한 2010년 노조법 개정은 정부 수립 이후 60여년 만에 노동기본권이 회복되는 계기가 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2010년 개정은 모든 노조에게 창구단일화를 강제함으로써, 노동3권을 억압하는 위헌적 법률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실질적 사용자'의 노조법상 책임을 확인한 개정 노조법이 시행되기 시작한 요 몇 주를 지나면서, 2010년 법 개정의 비극이 자꾸만 떠오른다. 지난 30년간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이제 겨우 억압적 노조법에 작은 숨 쉴 틈 하나를 냈을 뿐인데,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아예 철로 만든 형틀을 씌우려는 것 같다. 이재명 정부가 만든 시행령은 이른바 '원청'에게 교섭을 요구하려면 창구단일화 절차를 반드시 거칠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게다가 시행령을 처음 입법예고했을 때는 '원청'에 조직된 노조 및 '하청'에 조직된 노조 모두와 창구단일화를 하라더니, 지난 2월 말 배포된 매뉴얼에서는 '원청'노조와는 창구단일화가 필요 없고 '전체 하청노동자 집단'에서 창구단일화를 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어느 쪽이건 현행 노조법 해석으로부터는 나올 수 없는 방침이지만, 왜 며칠 만에 방침이 바뀌었는지에 대해서 해명조차 없는, 한마디로 '대환장'의 시기다.
노동계에서 이미 우려했던 대로, 사용자들은 창구단일화 제도를 활용한 부당노동행위를 시작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공공기관들의 대응방안 문건들을 보면, "자회사 간 이해관계 차이를 활용해 단결력 약화" 등과 같이 창구단일화 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들이 모색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가 5천만원을 주고 용역을 맡긴 컨설팅업체는, 공사의 사업유형별로 '리스크진단'을 하면서 고속도로 유지·관리, 톨게이트, ITS(지능형교통시스템) 시설관리, 사옥관리 등 주요사업부문에서 공사가 '사용자'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하면서, 자회사, 용역노동자들의 교섭요구에 대한 대응방안을 상세하게 제안하고 있다. 특히 자회사 간 이해관계의 차이를 활용해, 특정 자회사에 관계된 노조와 먼저 부분 합의를 도출하여 통합된 노조의 단결력을 약화시키고, 동일·유사한 업무를 하더라도 공사(정규직)와 자회사별 여건 차이를 근거로 노조의 균등처우 요구를 차단하고, 자회사의 현 노조를 축으로 한 협의체를 정착시켜 '교섭구도에서 우위를 확보'할 것 등을 제시하고 있다.
현행 창구단일화 제도는 사용자만 교섭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며, 특정노조 지원이나 친사노조 조직 등 부당노동행위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하청·용역 노동자들은 이런 부당노동행위에 더욱 취약한데, 하청업체를 앞세운 노조파괴, 하청계약 해지나 폐업, 블랙리스트 작성 등 노동자가 중층적으로 가중된 압박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세브란스병원에서, 파리바게뜨에서, 한국도로공사에서 그렇게, 노동자들은 원·하청의 노조파괴 공세에 시달렸고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노노갈등'으로 매도되었다.
지난해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난 직후, 한 대형로펌이 개최한 교육프로그램에서, 노동부 고위관료 출신 인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2010년 노조법 개정 이후 창구단일화 절차의 세부사항을 규정한 노조법 시행령은 실은 법률의 위임이 없는 월권적인 것들도 많았지만 일단 강행하고 나니 '현장에 안착'되었다고. 노조법의 창구단일화 절차에 어떠한 개정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청'교섭에 창구단일화를 강제하는 위헌·위법적 시행령을 만든 현 정부도 같은 것을 기대하는지도 모르겠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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