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탄 숲 방치한 지 1년…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점선면]

문광호 기자 2026. 3. 26.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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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산불 1년, 고운사 실험의 결과는?
‘역대 최대 규모’ 사찰림 98% 탔다
1년 뒤, 불에 탄 나무에서 움튼 새싹
회복 빠른 자연복원, 동물도 돌아와
고운사, ‘자연복원 참고 사례’ 될까
경북 의성군 고운사의 지난해 3월26일(왼쪽) 화재 당시 모습과 지난 17일(오른쪽) 자연복원이 진행된 모습. 성동훈·백경열 기자

어제(25일)는 산불 피해에 대처하는, 고운사의 ‘무심한’ 실험이 시작된 지 1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 실험이란 불에 탄 숲의 복원을 자연에 맡기는 건데요. 환경단체들은 이곳에서 자연의 탁월한 회복력이 관찰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아직 ‘인공조림보다 낫다’고 단언하긴 이르지만 주목할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는 건 사실인데요. 1년 동안 경북 의성군 고운사 숲에서 벌어진 일들과 그 의미, 점선면이 정리했습니다.

‘역대 최대 규모’ 사찰림 98% 탔다

지난해 3월25일 고운사 서남쪽 16㎞ 떨어진 곳에서 시작된 산불이 강풍을 타고 삽시간에 번졌습니다. ‘천년고찰’로 널리 알려진 고운사도 불길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절과 주변 숲이 송두리째 타버린 겁니다.

이 산불로 연수전·가운루 등 보물뿐 아니라 고운사의 자랑이던 사찰림의 97.6%(243㏊)가 타버렸는데요. 국내 사찰림 산불 피해 중 역대 최대 규모였습니다. 당시 고운사 스님은 “열기가 있어 새싹이 못 자란다”며 기약할 수 없는 복원에 막막한 심정을 드러냈습니다.

지난해 3월25일 경북 의성군 고운사 주차장에서 바라본 산들이 불타고 있다. 경북도 제공
1년 뒤, 불에 탄 나무에서 싹이 텄다

그런데 1년 만인 지난 17일 고운사 사찰림에는 1m가 채 되지 않는 작은 나무들이 솟아 있었습니다. 검게 변한 나무에는 수십개의 흰구름버섯류(곰팡이)가 점처럼 박혀 있었고요. 현장을 둘러본 이규송 강원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불에 탔지만 완전히 죽지 않은 나무가 살아남은 조직에서 싹을 틔우려고 시도하는 현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숲의 회복을 지켜본 고운사 주지 등운스님도 “산 능선을 따라 나무가 되살아나는 현상이 뚜렷하게 관찰되고 있다”고 말했는데요. 실제로 ‘고운사 사찰림 자연복원 프로젝트’ 연구진에 따르면 고운사 사찰림 면적의 약 4분의 3(76.6%)에서 높은 자연 회복력이 관찰됐습니다. 빠른 회복에 비례해 토양침식 위험도도 크게 감소했고요.

“자연에 맡기는 것이 지혜”

이런 변화는 고운사가 숲 복원을 자연에 맡긴 결과입니다. 등운스님은 지난해 7월 경향신문과 만나 “이렇게 땅과 산이 다 타버린 열악한 환경에서는 자연에 맡기는 게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라며 자연이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도록 기다리겠다고 말했는데요. 그것이 과거에 집착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합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언뜻 도교의 ‘무위자연’도 떠오르지만 철학적인 개념만은 아닙니다. 최근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인공조림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거든요. 인공조림은 침엽수를 주로 심는데, 침엽수가 산불에 취약할 뿐 아니라 조림 시 산불 피해목과 뿌리를 제거하기 때문에 산사태 등 추가 재난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자연복원은 비용이 적게 들고, 탄소 저장량·수종 다양성 측면에서 인공조림보다 낫다는 연구가 나오고 있고요.

지난해 9월 고운사 인근 야산에 불에 탄 나무 사이로 풀이 자라나 있다. 이규송 교수 제공
회복 속도 빠른 ‘자연복원’, 동물도 돌아왔다

실제로 2000년 4월 동해안 산불 뒤 인공조림(52%)과 자연복원(48%)으로 비교하는 실험이 진행된 바 있는데요. 2020년 중간 점검 당시 자연복원지의 숲이 더 촘촘한 것으로 관찰됐습니다. 초반 회복 속도도 더 빠른 것으로 평가됐고요.

원래 숲으로 돌아가는 건 아닙니다. 침엽수림이었던 고운사 사찰림은 활엽수림으로 바뀌고 있는데요. 산불 전 침엽수림 면적이 235.8㏊에 달했지만 이후 3.4㏊로 급감했습니다. 반면 활엽수림은 25.3㏊에서 363.5㏊로 크게 증가했습니다.

뛰어난 회복력 덕분에 고운사에서는 멸종위기종 등 야생 생물의 관찰 빈도도 크게 늘었습니다. 삵은 고운사 경내에서, 수달·담비는 숲에서 관찰됐는데요. 지금까지 포유류 17종과 조류 35종 등이 확인됐습니다. 향후 조류는 70~80종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됩니다.

자연복원도 한계는 분명히 있습니다. 환경생태학자 오충현 동국대 바이오환경과학과 교수는 “한국의 산림은 마을이나 농경지와 가까운 곳이 많아 산사태 등의 2차 피해 우려가 있어 자연복원이 어렵다”고 지적했는데요. 자연복원만 기다리다 인명·재산상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척박한 토양에서는 소나무 위주의 인공조림이 낫다는 주장도 있고요.

지난해 8월22일 경북 의성 고운사 인근 숲에서 오소리 한 마리가 풀 밭에서 배설을 한 뒤 지나가고 있다. 한상훈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 소장 제공
“고운사 사례 참고해 자연복원 과정 만들자”

전문가들은 고운사 사찰림의 자연복원 조사를 계기로 인공조림 일변도였던 국내 산림정책의 방향을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산불 피해지역에 자연복원을 기본으로 하고 식생의 회복력을 진단한 후,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복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겁니다.

이규송 강원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숲의 대부분은 자연복원에 의해 회복된 것”이라며 “고운사의 사례를 참고해서 자연복원 과정을 만들도록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지난해 영남산불 피해지의 생태계가 복원되려면 최소 10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후변화로 산불은 더 잦아지고, 규모가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요. 그런 규모라면 변화에 적응하는 해법은 자연만이 알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일단 고운사 자연복원 프로젝트는 오는 5월까지 이어집니다. 연구진은 어떤 결론을 내릴까요? 직접 변화를 확인하고 싶은 분께는 고운사 방문을 추천드립니다. 산불에도 살아남은 일주문 기둥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운사에 갈 이유는 충분합니다.

고운사 일주문. 고운사 홈페이지 갈무리

☞ [영남산불 1년]자연복원 선택한 고운사 사찰림 가보니···“자연 회복력 상상 그 이상”
     https://www.khan.co.kr/article/2026032006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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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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