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알고리즘이 가격 결정 하면, 담합일까 아닐까 [뉴스분석]

“기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에이전트 AI가 명시적 합의 없이 담합을 이루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영국의 경쟁당국인 영국 경쟁시장청(CMA) 지난 4일 공식블로그를 통해 한 경고 메시지다.
인공지능(AI)과 알고리즘이 상품과 서비스 가격 결정에 활용되면서 ‘AI를 통한 담합’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당사자간 의견 교환 없이 AI가 내린 결정을 담합으로 볼 수 있을지, 비공개인 알고리즘을 공개하지 않는 한 담합을 입증할 수 있을지 등 논란이 제기된다. 에이전트 AI 등의 확산으로 AI·알고리즘을 통한 담합을 규제할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나의 AI로 여러 기업이 ‘가격 결정’ 한다면?
AI나 알고리즘이 가격을 결정하는 구조 자체는 낯설지 않다. 이미 온라인상에선 가격을 고정해두지 않고 수요와 공급, 재고량 등을 반영해 실시간으로 바뀌는 방식인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카카오택시는 택시 호출 수요에 따라 호출료를 달리 매기는 다이나믹 프라이싱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쿠팡도 경쟁사 대비 자사 상품의 가격을 최저가로 유지하는 최저가보상제에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활용하고 있다.
문제는 여러 기업이 ‘하나의 알고리즘’으로 가격을 결정하는 경우다. 플랫폼 알고리즘이 입점업체의 판매량 등 주요 민감 정보 데이터를 분석하고선 ‘적정 가격’을 산정하고, 입점업체들이 이를 판매 제품 가격에 반영하면 사실상 담합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영국 CMA는 “담합하는 기업들이 동일한 알고리즘이나 데이터 허브를 통해 경쟁상 인감한 정보를 간접적으로 교환할 수 있다”면서 “명시적 합의 없이도 기업 간 전략적 불확실성을 줄이거나, 가격 인상을 통해 집단적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선 이미 문제가 불거졌다. 미국 법무부는 2024년 8월 부동산 수익관리 소프트웨어 리얼페이지가 임대료 산정 알고리즘을 통해 임대인 간 ‘담합’을 부추겼다는 의혹이 일자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리얼페이지가 임대인들에게 받은 임대료 등 정보를 알고리즘에 반영한 뒤 권고 가격을 정하면서 임대인 간 부동산 임대료가 같아졌다는 것이다. 리얼페이지는 법무부와 합의해 지난해 11월 임대인들의 정보를 공유받지 않는 방식의 시정안을 법원에 제출했다.

당사자 의견 교환 없는데 알고리즘 담합?
국내에서는 아직 문제가 된 적은 없지만 이를 명확히 규제할 기준선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선 현재 당사자간 가격과 공급량 등을 ‘합의’를 전제로한 담합 요건부터 문제다. 알고리즘이나 플랫폼을 거친 가격 결정은 데이터만 오고 갈 뿐 당사자 간 의견 교환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정보 교환도 별도 담합 유형으로 보고 있지만, 플랫폼이나 알고리즘 등 제3자를 거치는 경우도 적용되는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은 가격 결정에 필요한 민감한 정보를 플랫폼이나 알고리즘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교환하는 경우를 ‘담합 동조적 행위’로 보고 있다.
최승재 세종대 법학과 교수는 25일 “단순히 가격이 비슷하다고 담합이 되는 것이 아니고 이들 간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처벌이 가능하다”며 “현재로서는 AI 담합을 규율할 만한 가이드라인이 따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AI 알고리즘에 의한 가격 결정이 경쟁을 저해하는지를 입증하는 일도 과제다. 단순히 여러 기업이 같은 AI 알고리즘을 이용했다고 해서 위법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고, 담합 의도를 파악해야 입증할 수 있는데 기업들은 알고리즘을 영업기밀이라며 공개하지 않는다.
신영수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향후 AI를 통한 공정거래법 위반이 가장 쉽게 발생할 수 있는 분야가 담합”이라며 “AI 알고리즘의 자율성이 커지는 방식으로 급격히 발전하고 있어 어디까지를 기업 책임으로 물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AI 담합 영역에도 법원이 지정한 전문가가 현장 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한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등을 도입해 제한적으로 알고리즘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업 기밀이라도 정보 접근을 허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술탈취 분야에서 전문가가 영업기밀을 확인하는 디스커버리 제도처럼 혐의가 있는 기업에 한해 조사 관계자들은 알고리즘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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