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등 관계성 범죄 왜 못 막나···“법 제도와 활용 모두 필요”[보호 조치 비웃는 스토커들]

박채연·전현진 기자 2026. 3. 2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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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광장에서 남양주 가정폭력·스토킹 여성살해사건 긴급대응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가정폭력·스토킹 등 이른바 ‘관계성 범죄’는 여러 톱니가 맞물리면서 발생한다. 수사기관이 범죄 위험성을 적절하게 판단하지 못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사법부의 소극적인 판단으로 이어지면서 막을 수 있는 범죄는 화를 키우게 된다. 그 사이 사건이 끊이지 않고 늘면서 ‘법을 바꾸자’는 요구가 빗발치지만 입법부인 국회마저 지지부진하면서 다시 새로운 사건이 터지는 식이다.

전문가들은 25일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법 제도를 개편하고 수사기관과 사법부 등이 이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환경과 역량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먼저 수사단계에서의 범죄 위험성 판단의 문제가 원인으로 꼽힌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경찰은 위험성 평가에서 계속 실패하고 있다”며 “남양주 스토킹 살인사건에서 피해자에게 100m 이내 접근 시 경보가 울리는 잠정조치 3-2호(위치추적 전자장치)가 취해졌다면 직장 근처에 왔다는 것을 포착하고 일대를 수색하다 체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이 위험성을 인지해도 검찰이나 법원이 보호 조치를 기각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7월 울산 스토킹 살인미수 사건에서 경찰은 잠정조치 4호(유치장 구금)를 신청했지만 검찰은 구금여부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며 기각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잠정조치 3-2호의 법원 인용률은 37.1%(858건 중 318건)에 그쳤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경찰이 현장에서 느끼는 것과 재판부가 문서로 보는 위험성 인식 정도가 차이가 있다”며 “구속 요건에 재범 위험성이 포함되지 않아 영장 발부율이 낮기도 하다”고 말했다. 경찰청이 채현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스토킹 혐의로 검거된 사건 중 법원의 영장 발부까지 이어진 사건은 1%(1만6339건 중 165건)에 그쳤다.

스토킹을 해도 중한 처벌을 받지 않는 것도 원인으로 지적한다. 한민경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유형력 행사 없이 협박·스토킹이 두려웠다는 정도의 내용으론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그치기 때문에 다음 범죄로 쉽게 이어지는 면이 있다”며 “보호 조치를 위반해도 극단적 폭행이 있지 않으면 다 풀려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광장에서 남양주 가정폭력·스토킹 여성살해사건 긴급대응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전문가들은 적절한 법 제도의 개편과 동시에 이 제도가 현장에서 실제 적용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다. 허 조사관은 “이미 좋은 법안들이 올라가 있지만 국회에서 논의가 없다”며 “국가가 이 문제에 대해 방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는 가정폭력방지법을 전면 개정하는 내용의 친밀관계폭력처벌법 등 관련된 여러 법안들이 계류돼 있다.

이미 만들어진 제도를 잘 활용하는 것도 시급하다. 지난해 8월 경찰청이 발표한 종합대책에선 잠정조치 3-2호와 4호를 동시 집행하도록 했지만, 이번 남양주 사건에선 활용되지 못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교육·훈련을 통해 여성 폭력에 대한 대응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법원마다 잠정조치 인용률 차이가 있어 경찰들의 경험이나 효능감이 다르다”며 “법원에서 어떤 경우에 유치를 인용하는지 등을 돌아보고 인용을 더 적극적으로 할 필요 있다”고 말했다.

전자발찌나 스마트워치 등의 기술적 수단의 한계를 인정하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적극 분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교수는 “전자발찌 부착이 가해자들에게 트리거(방아쇠)가 돼 피해자에 대한 보복 공격이 심해질 수 있다”며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원천적으로 분리될 수 있도록 유치와 구속을 더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채연 기자 applaud@kyunghyang.com,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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