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부장 NOW] “뺏기면 끝이다” 반도체 장비업계, 실적 악화에도 ‘억대 연봉’ 베팅
리노공업·주성엔지니어링 등 주요 장비사 급여 30% 안팎 폭등
테슬라 등 글로벌 기업 채용 공세에 맞불… “엔지니어 역량이 경쟁력”

[대한경제=이계풍 기자]국내 주요 반도체 장비 업체들이 지난해 어려운 업황 속에서도 임직원 급여를 큰 폭으로 인상하며 핵심 엔지니어 사수에 나섰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기술 경쟁을 넘어 인재 쟁탈전으로 격화되자 일제히 ‘집안 단속’에 나선 것이다.
2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리노공업, 원익IPS, 주성엔지니어링, 한미반도체 등 국내 대표 장비 기업들의 지난해 1인당 평균 급여가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반도체 후공정 검사 부품을 생산하는 리노공업은 지난해 1인당 평균 급여 1억1707만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30.2%라는 파격적인 인상을 단행했다. 첨단 패키징과 미세공정 전환으로 고난도 테스트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핵심 기술 인력의 이탈을 막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전공정 장비 전문 기업인 주성엔지니어링의 행보도 눈에 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67.8% 급감하는 실적 한파를 겪었는데도, 평균 급여를 9300만원으로 약 29% 올렸다. 당장의 수익성 악화보다 인적 자원 손실이 향후 기술 격차 확보에 더 치명적이라는 경영진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다.
국내 기업들이 이처럼 공격적인 보상 체계를 가동하는 이유는 글로벌 기업들의 거센 채용 공세 때문이다. 최근 자체 반도체 공장인 ‘테라팹(Terafab)’ 건설 계획을 밝힌 미국 테슬라가 대표적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지난달 자신의 SNS를 통해 한국인 반도체 인력을 직접 채용했다고 밝혀 국내 엔지니어들의 마음을 흔들어놨다.
여기에 램리서치, KLA, 도쿄일렉트론(TEL) 등 글로벌 장비 거두들도 한국을 전략적 거점으로 삼고 현지 인력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내 장비사들로서는 글로벌 수준에 걸맞은 처우를 제공하지 못할 경우, 수십 년간 쌓아온 공정 노하우가 고스란히 유출될 위기에 처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장비 산업의 특성상 설비 자체보다 이를 설계하고 운용하는 ‘사람’의 역량이 성패를 좌우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미반도체가 HBM(고대역폭메모리) 열압착 본더 시장을 장악하고, 원익IPS가 10나노급 선단 공정 장비를 공급할 수 있는 원동력도 결국 숙련된 엔지니어 덕분이라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첨단 공정 장비 개발은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으며, 한 명의 핵심 인력이 이탈할 때마다 프로젝트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며 “최근의 급여 인상은 미래 시장 선점을 위한 가장 확실하고 필수적인 R&D 투자 성격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이계풍 기자 kp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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