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변화보다는 옳은 변화를”… 학생과 전공에 ‘AI 날개’ 다는 덕성여대
윤리와 공공성 갖춘 ‘AI 리더’ 양성 인공지능과 인간지능은 함께 가야
상반기 AI 원스톱 플랫폼 구축해 수강신청-진로설계-취업상담까지
도봉구 유일한 대학 자부심 갖고 균형 토대 지역사회와 연결 계획

올해 취임 제 13대 민재홍 총장의 ‘큰 그림’
민재홍 덕성여대 총장은 이달 15일 열린 서울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을 뛰었다. 가족과 함께 10km를 1시간 이내로 완주했다. 풀코스 42.195km의 4분의 1 거리. 민 총장은 “기록에 만족한다”고 했다. 빠르지도, 그렇다고 너무 느리지도 않게 페이스를 잘 조절하며 뛰었다.
지난달 4년 임기 총장 업무를 시작했다. 42.195km 레이스에 빗대면 이제 막 1km를 지난 셈이다. 첫 단추를 잘 꿰고 싶은 첫 1년. 마라톤으로 예행연습을 해 본 셈이다.
인구 감소와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대학에 빠른 변화와 혁신이 요구된다. 하지만 민 총장은 마라톤을 하면서, 쫓기듯 속도만 내서는 안 된다고 확신했다. ‘빠른 변화’가 시급하지만 ‘옳은 변화’가 더 중요하다는 초심을 지켜 나가기로 했다. 민 총장은 취임을 맞아 외부 인사들에게 전한 감사장에도 “단계별 성장을 진행하면서 나날이 새로워지겠다”라고 썼다. 속도 조절의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뜻일 터다.
16일 서울 도봉구 캠퍼스에서 동아일보와 만난 민 총장은 “대학의 구조 변화 압박이 커지는 상황에서 덕성여대는 무조건 방어하듯 버티는 것도 어렵고, 무조건 빠르게 이것 저것 바꿀 수도 없다. 시간을 갖고 미래지향적으로 우리만의 정체성을 재해석해 새로운 경쟁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균형의 ‘X+AI’로 대학 체질 전환
덕성여대 정문에 서면 앞으로는 북한산이, 오른쪽으로는 도봉산이 보인다. 캠퍼스는 안정감 있는 평지에 조성돼 있다. 민 총장은 이 지형을 대학의 방향성과 연결지었다. 총장실은 다른 대학 총장실에 비해 작은 편이다. 책상과 회의용 작은 탁자가 전부다. 실용과 집중의 균형이 느껴진다. 민 총장은 “일도 마찬가지다. 총장 혼자 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본부 보직자들과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2003년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부임해 24년째 몸담고 있는 그는 교무처장, 미래교육위원회 위원장, 신문사 주간 등 주요 행정 보직을 거쳤다. 대학 내부를 누구보다 잘 아는 ‘내부형 총장’이다. 그는 “함께 고민하고 조율하는 경험을 많이 했다. 대학 운영은 결국 협력과 균형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특히 교육과 연구 분야에서 민 총장은 ‘X+AI’를 핵심으로 내세운다. 단 AI가 중심이 아니라 각 전공(X)을 중심에 두고 AI를 결합하는 방식이다. 그는 “AI가 전공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전공을 더 강하게 만드는 도구가 돼야 한다”며 “학생의 전공, 질문, 해석과 판단이 중심이 되고 AI는 도구로서 날개처럼 작동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인문학자로서 AI에 과도하게 치중하는 현실에 대한 우려가 문제의식에 반영돼 있다.
“예를 들어 중문학의 경우 AI가 수업도 하고 번역과 통역을 다 해 버린다면 전공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그렇지만 언어의 맥락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은 인간 영역이다. 전공이 중심에 있고 AI가 도구로 결합할 때 전공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깊어질 수 있다.”
문헌정보학 역시 AI와 결합해 단순 정보 관리에서 벗어나 디지털 아카이빙, 데이터 기반 지식 관리로 확장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덕성여대는 ‘AI 브릿지’ 교과목을 도입해 기존 전공 수업에 AI를 접목하고 있다. 향후 AI 리터러시 교육을 확대하고 X+AI 교과목을 최다 100개로 늘릴 계획이다.
윤리와 공공성 갖춘 ‘德性 AI 리더’ 양성
AI 기반 교육 인프라 구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상반기에 학업, 수강 신청, 진로 설계, 취업 상담까지 아우르는 AI 기반 원스톱 플랫폼을 구축할 계획이다. 기존 학습관리시스템(LMS) ‘e-class’도 AI 기반으로 전환해 수업 내용 요약, 과제 지원, 리포트 생성 보조 기능을 포함하게 된다. 100여 개 외국어로도 지원할 예정이어서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민 총장은 “학생이 체감하는 변화”를 강조했다.
―학생들이 이 같은 변화를 어떻게 느낄 것으로 보는가.
“모든 학생이 전공 기반 위에서 AI를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과정을 통해 ‘대학이 나에게 맞춰지는 경험’을 많이 해 보게 될 것이다. 현장실습학기제, 덕성인턴십, 맞춤형 취업 지원, X+AI 연계 장학 및 경력 개발 지원을 강화해 학생들이 배움과 진로를 따로 느끼게 하지 않을 것이다.”
―학생들이 특별하게 체감했으면 하는 것은.
“여기서 ‘HI(Human Intelligence·인간 지능)’를 강조하고 싶다. AI 시대에도 인간 지능, 전공 지능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AI와 HI가 함께 가야 한다. 결국 다시 조화다. 윤리, 인권, 공공성 같은 여대의 전통적 가치를 결합하는 문제다. AI를 아는 인재가 아니라 AI를 책임 있게 다루고 활용할 줄 아는 인재가 필요하다. ‘덕성(德性) AI 리더’이다. 덕성형 AI 전략이 다른 대학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행정 시스템도 이런 변화에 부응한다. AI 챗봇을 도입해 행정 절차를 자동화하고 교직원 업무 부담을 줄인다. 민 총장은 “AI는 학생과 교직원 모두의 시간을 절약해 주는 도구가 될 것”이라며 “그 시간을 더 중요한 교육과 연구에 쓰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K콘텐츠 비롯한 융복합 분야 특성화”
학생들이 변화를 더 강하게 체감할 수 있도록 학사 구조 개편도 점진적이고 정밀하게 추진한다. 고민은 전공 쏠림 현상이다. 인기 전공과 비인기 전공이 분명하게 구분된다.
덕성여대는 수도권 대학 최초로 자유전공제를 도입했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지난해부터 자유전공학부를 신설했다. 학생 선택에 따라 다전공 이수가 가능하다. 제1 전공 선택 후 다양한 전공 조합이 가능하다. 제2 전공은 물론 제3 전공까지 할 수 있다. 제1 전공을 심화 학습하고 모듈형 과정(나노-마이크로 디그리)으로 이수할 수도 있다.
“자유전공학부로 정원의 30% 정도가 들어온다. 지난해 258명이 입학했다. 이들은 전부 경영학과로 갈 수도 있고, 전부 컴퓨터 계열로 갈 수도 있다. 그런데 중문과 지원은 ‘제로(0)’일 수 있다. 전공 간 불균형 현상이 갈수록 심화될 수 있다.”
민 총장은 이 현상을 위기가 아닌 새로운 전환의 계기로 본다. 그는 “전공을 줄이는 작업이 아니라 전공 간 다양한 연결을 강화하고 새로운 융합 구조를 만드는 재설계 시발점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며 “수도권 최초 도입한 자유전공제 ‘시즌2’를 만들어 앞서가는 화두를 던져 볼까 한다”고 했다.
자신이 있다. 덕성여대는 약학대학만 지명도가 높은 게 아니다. 언어와 유아교육 같은 인문사회 분야에 강점이 있다. 이들을 융복합해 덕성여대만의 추가 특정 분야를 찾아 새로운 경쟁력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우리 대학은 언어를 비롯한 인문학 전공이 다양하다. 스페인어도 있고 아동가족학, 문화인류학, 첨단분야 학과도 있다. 이를 묶어 K콘텐츠나 글로벌 문화 산업 등으로 확장할 수 있다.”
덕성여대는 이달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인문사회융합인재 양성사업(HUSS)’ 2단계 참여 대학으로 선정됐다. 기후 및 환경과 문화 전공이 지원을 받게 됐다. 특별한 ‘덕성 경쟁력’ 확보 가능성을 입증한 것이다. 기후와 환경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차원에서 전공 간, 나아가 대학 간 경계를 허물고 인문사회 중심 융합 교육 체제를 구축해 인재를 양성할 수 있게 됐다. 학생들이 기후와 환경 이슈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종로캠퍼스 교양 교육 활용 추진
민 총장의 핵심 비전을 간단하게 표현하면 ‘브라이트(Bright) 덕성’이다. 브라이트는 균형(Balance) 존중(Respect) 혁신(Innovation) 글로벌(Global) 조화(Harmony) 인재(Talent) 라는 6가지 가치를 상징한다. 대학 운영 원칙이기도 하다.
그는 브라이트 가운데 균형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 균형을 토대로 지역 사회와의 연결도 해 볼 계획이다. 서울 도봉구의 유일한 대학으로서 전통시장 활성화, 취약계층 교육 지원, 돌봄 프로그램 같은 지역 연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민 총장은 “대학은 지역에 그저 머무는 기관이 아니라 함께 움직이는 플랫폼이 돼야 한다”며 “여대생이 참여할 수 있는 돌봄, 교육, 공공 서비스 영역에서 역할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활동은 단순 봉사를 넘어 지역 일자리와 연결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종로캠퍼스를 학생 교육에 활용하는 것도 중요한 계획 중 하나다. 1984년 현재 위치로 이전한 덕성여대는 종로에도 교육 공간을 보유하고 있다. 민 총장은 “2029년부터 1학년 교양 과목 일부를 종로캠퍼스에서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며 “도심 교육은 대학 경쟁력을 높이고 학생 경험을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30년 1월 28일로 임기를 마치는 민 총장의 마지막 목표는 ‘2030년’이다. 2030년은 덕성여대가 조선여자교육회로 개교한지 110주년이 되는 해다.
“그때 ‘변화를 말한 대학’이 아니라 ‘변화의 구조를 만든 대학’으로 평가받고 싶다.”
마라톤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완주다. 42.195km 긴 여정처럼 민 총장의 대학 개혁은 이제 막 첫 구간을 지나고 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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