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머지 공부? 우리 애는 필요 없어요" 교육감들 오죽하면 법 개정 요구
교사가 설득하는 일 반복

"애 남아서 공부시키는 건 아동학대 아니에요?"
광주의 한 초등학교 교사 A(31)씨가 학생이 기초학력이 부족하니 보충 지도를 하겠다고 전하자 학부모는 노발대발하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 초3이었던 아이는 다문화가정이 아니었는데도 한글 미해득 상태(읽기나 쓰기 능력 등이 부족한 상태)였다. 초3은 본격적인 교과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 시기라 하루라도 빨리 개입이 필요했지만 부모는 완강히 거부했다. "애한테 낙인찍는 거냐" "지난 2년 동안 그럼 학교에서 도대체 뭘 가르치고 이제 와서 이러냐"라며 쏟아붓더니 교무실로 전화를 다시 걸어 "지난해 담임과 이야기해 보겠으니 바꿔달라"고 항의했다.
전국 학교에서 기초학력 진단 평가가 실시되는 3월. 해마다 이 시기가 되면 학교에선 이 같은 학부모와 교사의 크고 작은 실랑이가 벌어진다. 학습 지원이 절실한 학생임에도 학부모는 공부 못하는 애로 찍히는 '낙인 효과'를 우려하며 거부하고, 교사는 이를 설득하는 일이 반복된다. 오죽하면 교육감들이 기초학력 미달로 판단되면 부모 동의 없이도 추가 학습 지원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교육부에 법 개정을 요구했을 정도다.
"부모 동의 없이도 보충수업 가능하게 해 달라"

25일 대한민국교육감협의회에 따르면 협의회는 최근 교육부에 보호자 협조·동의와 관련해 '기초학력 보장법 및 동법 시행령을 개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습지원대상 학생으로 판단되면 부모 동의 없이도 보충수업을 할 수 있도록 '학부모 등 보호자는 학습지원대상 학생의 선정 및 학습지원교육의 실시에 관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협조해야 한다'는 문구를 넣어달라는 게 핵심이다. 협의회 관계자는 "부모 동의 없이도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최소한의 성취 기준을 충족하도록 지원하자는 것"이라고 개정 요구 취지를 설명했다.
17개 시도교육감들이 단체로 뜻을 모았을 만큼 이런 갈등은 학교 현장의 오래된 문제다. 학습지원대상 학생은 주로 새 학기에 실시하는 기초학력 진단평가를 통해 선별한다. 직전 학년에서 배운 내용에서 출제되는 쉬운 수준의 시험으로 100점 만점이라고 했을 때 일반적으로 30점 미만이면 기초학력 미달로 본다. 교육부는 전국 초중고의 기초학력 미달 학생 수를 25만~30만 명으로 보고 있다.
학부모는 자녀가 기초학력이 부족하다고 하면 우선 화부터 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세종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우리 아이가 그렇게 남아서 학교에서 공부할 지능이 아니다. 그런 도움은 필요 없다'거나 '우리 아이가 생일이 늦어서 그런 건데 선생님이 편견을 갖고 바라본다'는 반응이 많다"며 "해당 학생들은 이미 가정에서 해결할 수준이 아니고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 전문적인 지도가 필요한데 부모가 받아들이지조차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 B(41)씨도 "(학부모 동의서가 포함된) 가정통신문을 보냈을 때 보호자가 처음부터 흔쾌히 동그라미를 치는(동의하는) 경우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학습결손 누적되는데... 어쩌나
기초학력 미달 학생은 적기에 적절한 지원을 하지 않은 채 방치하면 학습 결손이 누적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모든 학습의 기초가 되는 '한글'과 '수학(연산)'의 경우 특히 그렇다.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상태라면 스스로 알림장을 쓸 수 없을뿐더러 수학 등 다른 교과의 이해도도 현저히 떨어진다. 수학 교육과정도 덧셈을 못 하면, 곱셈이 안 되고, 곱셈이 안 되면, 나눗셈을 못 하고, 나눗셈이 안 되면 분수를 이해할 수 없는 구조다.
전북의 초등교사 C(38)씨는 "초2, 3은 기초학력의 골든타임"이라며 "학습 난도가 확 올라가는 시기라 이때를 놓치면 학습 부진의 늪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교사 B씨도 "가정폭력이 의심되면 부모 의사와 관계없이 학교에서 개입하듯이 기초학력 미달도 같은 맥락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현장 목소리에도 부모의 자녀에 대한 교육권이 원칙적으로 우위에 있는 만큼, 법 개정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기초학력 보장법상 추가적인 학습 지원을 할 때는 부모 동의가 원칙"이라며 "정서행동 위기 학생처럼 수업을 방해해 주변 학생에게 피해를 끼칠 위험이 있는 게 아니라면 현재로선 (기초학력 미달 학생의 보충수업 지원 등에 대해) 부모의 협조 의무를 강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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