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 숫자가 아니라 패턴을 본다 - 양태영 태영내과21 원장

많은 사람들이 당뇨병을 어느 날 갑자기 진단되는 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뇨병은 조용히, 오랫동안,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그 첫 신호가 바로 당뇨 전단계다.
이 시기의 특징은 단순하다. 수치는 애매하고, 증상은 거의 없고, 환자는 대체로 무심하다. 하지만 몸속에서는 이미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즉 인슐린 저항성이 증가하고 지방간과 내장지방이 축적되며, 결국 혈관 염증반응으로 이어져 동맥경화증이 시작되고 있다는 의미다.
당뇨 전단계의 절반 이상이 5~10년 내 실제 당뇨병으로 진행한다. 특히 복부비만, 고혈압, 지방간이 함께 있으면 진행 속도는 더 빨라진다. 당뇨 전단계는 병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질병의 예고 단계다.
과거 당뇨 진료는 단순했다. 혈당 수치가 기준 이상(식전 126, 식후 200mg/dL, 당화혈색소 6.5%)이면 당뇨병, 아니면 정상이었다. 당뇨병으로 진단되면 약을 시작하고 더 오르면 약을 늘리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접근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같은 당화혈색소 7.0%라도 어떤 환자는 하루 종일 안정적이고, 어떤 환자는 식후마다 250까지 치솟았다가 급락한다. 수치는 같지만 위험도는 전혀 다르다. 즉 당뇨병은 ‘얼마나 높으냐’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변하느냐’의 질환이다.
그래서 최근 진료 패러다임은 바뀌고 있다. 점 하나의 숫자→시간 속 변화→패턴 분석으로 체크한다.
A씨는 추가 평가를 위해 5분 간격으로 혈당을 측정해 스마트폰으로 알려주는 CGM을 착용했다. 점심 식사 후 혈당이 198→213→232mg/dL로 계속 오르더니 두 시간 뒤 급격히 떨어져 105mg/dL 로 측정됐다. 보통 식후 2시간만을 재니까 겉으로 보면 정상인 듯 보였지만 문제는 그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췌장은 과도한 인슐린을 분비했고, 혈관 내에서는 산화 스트레스가 증가되고 대사 시스템은 급가속과 급감속을 반복한다. CGM은 하루 약 300번의 혈당 데이터를 기록한다. 그리고 의료진은 평균값이 아니라 혈당 변동성, 상승 속도, 하강 속도, 야간 패턴까지 분석할수 있다. 당뇨병 진단은 더 이상 숫자 하나가 아니라 하루라는 시간 전체를 읽는 과정이 되었다.
검진 결과를 다시 보면 A씨의 허리둘레는 95cm(37.2인치)였다. 체중은 ‘조금 늘었다’ 정도였지만 실제로는 내장지방이 증가한 상태였다. 내장지방은 단순 지방이 아니라 호르몬처럼 작용하는 염증 물질을 분비해 인슐린 작용을 방해한다. 즉 지방 자체가 혈당 상승의 촉매가 된다.
최근 진료지침은 분명히 말한다. 비만치료는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의 예방치료이다. 체중 5~7% 감량만으로도 혈당 개선, 지방간 감소, 인슐린 저항성 감소가 확인된다. 당뇨치료의 시작은 약이 아니라 체중감량 전략이다.
몇 달 후 김씨는 결국 당뇨병 진단 기준에 도달했다. 최근 치료 전략은 초기부터 적극적이다. 당뇨병의 가장 큰 위험은 혈당 자체가 아니라 합병증이기 때문이다. 특히 심혈관질환, 신장질환, 뇌혈관질환 위험은 진단 초기부터 이미 증가해 있다. 그래서 최근 당뇨치료는 빨리 시작하고, 개인화하고, 다각도로 접근한다.
A씨의 치료에는 AI 기반 분석 시스템이 적용됐다. CGM 데이터, 식사 기록, 활동량, 수면 패턴을 함께 분석해 다음을 예측했다. 어떤 음식이 혈당을 급등시키는지, 어느 시간대가 가장 취약한지, 저혈당 위험 시점이 언제인지를 분석하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치료는 정밀해졌다.
다행히 A씨는 늦지 않았다. 그는 당뇨약을 먹으면서 식사양을 줄이고 간식과 회식을 덜 하면서 하루 20분 걷기를 시작했다. 6개월 후 검사 결과는 당화혈색소 7.0%→6.2%로 내려갔다. 조금 더 노력하면 약을 끊을 수도 있다.
당뇨 전단계와 초기단계는 병의 시작이 아니라 되돌릴 수 있는 마지막 구간이다. 건강검진 결과지 한 장에 ‘당뇨병 전단계’라는 말은 결코 가벼운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병의 시작으로 볼 수 있지만 회복의 시작 신호이기도 하다. 이 시기가 바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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