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여행서 호기심에 딱 한방… 떡볶이집 아빠는 그렇게 추락했다

김나영 기자 2026. 3. 26.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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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의 둑 무너진 한국]
<1> 40대 가장 ‘워라밸’씨의 고백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마약을 하려고 캠핑장에 가족만 남겨두고 혼자 집으로 달려온 적도 있어요.”

마약 사범 ‘워라밸’이 마약의 수렁에 빠진 건 고작 8개월 남짓이었다. 이 8개월이 자영업을 하던 40대 가장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놨다. 지난달 부산교도소 중독재활수용동에서 만난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의 지난날을 털어놨다. 마약 사범들의 재활 시설이자 교정 시설인 이곳에서 그는 수인(囚人)번호 대신 ‘워라밸’이라는 닉네임을 쓴다.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로 그가 지은 이름이다.

그래픽=김현국

마약을 접해 삶이 망가지기까지 워라밸의 마약 중독 과정은 이렇다. 그는 2019년 서울의 한 대학가에서 프랜차이즈 떡볶이 가게를 시작했다. 1년도 안 돼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인근 대학이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하면서 학생들의 발길은 끊겼다. 매출은 반 토막 났고, 거래처에서 받아야 할 돈도 줄줄이 막혀 결국 가게 문을 닫았다. 망연자실한 그는 몇 년을 집에 틀어박혔다.

2023년 2월 ‘머리라도 식히자’는 생각에 친한 동생과 태국 여행을 떠난 게 화근이었다. 필로폰 투약 경험이 있던 동생이 “힘든 일 잊는 데 약만큼 좋은 게 없다”고 해 워라밸은 필로폰에 손을 댔다. 처음이었다. 워라밸은 “평범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이 10이라면, 약은 그 수치를 100까지 끌어올리는 것 같았다”고 했다.

강렬했던 필로폰의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습관적으로 텔레그램을 뒤지며 필로폰 파는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겁도 나고 해서 한 달가량은 주저주저했다. 돈만 받고 연락이 안 되는 ‘먹튀’ 사기도 여러 차례 당했지만, 투약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돈이 아깝지 않았다.

“어느 날, 돈을 보내니 좌표가 날아왔어요. 기뻐서 달려갔었죠.” 좌표가 가리킨 곳에는 비닐에 꽁꽁 싸인 필로폰이 숨겨져 있었다. 이날부터 그는 매달 10g씩을 구매했다. 보통 한 번에 0.03g을 투약한다고 하니, 300차례 이상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하루에 두세 번씩 주사기로 팔뚝을 찔렀다. 워라밸은 그해 10월 경찰에 체포될 때까지 적게는 400차례, 많게는 600차례 넘게 필로폰을 투약했다.

마약은 그의 일상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아내와 두 아들에겐 철저하게 비밀로 했다. 약값과 생활비는 신용대출과 카드론 등으로 1억원가량 빚을 내 막았다. 가끔 아무렇지 않은 듯 아이들이 좋아하는 캠핑에 따라 나섰지만, 필로폰을 맞고 싶은 생각에 밤중에 혼자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몸도 망가졌다. 수시로 고열이나 오한 등에 시달렸고, 며칠씩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만큼 근육통을 앓기도 했다. 아무리 아파도 마약 투약 사실이 들킬까 봐 병원에 갈 수는 없었다. 마약에 빠져 있다 보니 친구나 친척을 만나는 일도 점차 줄어들었다. 불과 몇 개월 만에 주변 인간관계가 끊겨 고립돼 있었다. 워라밸은 “미친 듯한 내 모습에 자괴감이 들었지만, 끊어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고 했다.

최근 부산교도소 중독재활수용동에서 만난 마약사범 ‘워라밸’이 교도관과 함께 걸어가고 있다. 그는 “마약은 죽을 때까지 고통을 준다”고 했다. /법무부

그는 체포돼 조사와 재판을 받을 때도 약을 끊거나, 치료받아야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죽어야만 마약을 끊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 그에게 마약을 처음 건넨 동생은 얼마 전 마약 과다 투약으로 숨졌다.

워라밸에게 변화가 시작된 것은 작년 8월 부산교도소로 이감되면서부터다. 재활 의지를 가진 마약사범들만 모아놓은 교도소 내 중독재활수용동에서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마약을 끊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마약사범은 10명 중 3.5명이 다시 마약에 손을 대는 것으로 조사될 만큼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마약사범들 사이에선 형기를 마치고 교도소에서 나오자마자 출소 기념으로 투약하는 마약을 ‘출소뽕’이라고 부른다. 출소 후 24시간도 안 돼 다시 수감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마약으로 세 차례 수감 생활을 했던 A(40)씨는 “파란명찰(마약사범을 뜻하는 은어)들이 한 방에 모이면 ‘징역 깨기’라는 걸 한다”며 “교도소 내 의무실에서 처방받은 정신과 약을 빻아서 먹고 몽롱한 상태로 지루한 시간을 때우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워라밸은 인터뷰를 마치며 “마약은 단 한 번뿐이더라도, 절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안다”면서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옛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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