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현우의 세상 땜질] 키, 연봉, 운동, 차… 청년들이 ‘기준 강박’에 갇힌 이유

천현우 용접공·작가 2026. 3. 25.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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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에 전부 쏟아붓고 맞이한 20대, 실패 줄이는 법부터 찾으려 해
삶에서 서열·평균의 강박 몰아내라, 그래야 쉽게 불행해지지 않는다
일러스트=이철원

‘서른까지 1억 못 모으면 결혼 불가능?’ 요즘 유튜브 알고리즘은 곧잘 이런 썸네일의 숏츠를 추천한다. 대부분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글을 퍼와 자동 음성으로 읊어주는 콘텐츠다. 몇 번 클릭하다 보면 내 썸네일 창이 점점 더 많은 ‘기준’으로 도배된다. 키, 연봉, 직업군, 운동 방법, 시계 브랜드, 자동차 배기량 등등, 정말 온갖 것에 기준을 정하고 순위를 매긴다.

이런 영상을 누가 보느냐. 청년들이다. 정말 많이 본다. 조회 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이야말로 곧 민심이다. 보면서 좀 아찔했다. 물론 무조건 해악만 있지는 않다. 어떤 기준은 누군가에겐 동기이며 목표가 되기도 한다. 한때 헬스 쪽에선 ‘3대 500’ 붐이 일어났다. 스쿼트, 벤치 프레스, 데드리프트 운동 1회 최대 중량 합계 500㎏을 들면 운동 고수로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돌이켜보면 참 터무니없이 높은 기준이었지만 건강한 유행이었다. 당시 헬스장은 분명 스쿼트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한국의 청년들은 무슨 이유로 이토록 기준 세우기에 진심이 됐을까. 더군다나 그 기준은 국가데이터처의 온갖 평균값을 무시한 채 들어선다. 다들 알지만 그토록 현실과 먼 기준을 외면 못 한다. 한국인이 원래 이토록 서열에 민감한 종족이어서일까. 아니면 사회가 한 사람 몫의 기준을 자꾸 강요해서일까. 자신이 어디쯤 위치하는지 확인하고 싶어 하는 불안감 탓일까. 아마 셋 다 정답일 테지만 여기에 의견 하나 더 추가해 보고 싶다.

청년이 이토록 많은 기준에 포위된 이유는, 20대라는 시간이 너무 귀중한 사회 현실 탓 아닐까. 20대를 얘기하기 위해 10대를 짚어보자. 한국 청소년들의 삶을 보면 숨이 턱 막힌다. 오로지 대학 잘 가기 위해서 모든 ‘딴짓’을 제거당한다. 운동, 음악, 연애, 여행, 창작처럼 입시에 도움 안 되는 일은 제대로 시도할 수도 없다. 문화 콘텐츠를 봐도 한국엔 ‘청춘물’보단 학폭물, 일진물이 인기를 끈다. 공부만 하던 학생이 새로운 경험을 맞이하고, 시도하며, 작은 성공에 기뻐하다가, 별일 아닌 문제에 고통받고 좌절하기도 하면서 성장하는 청춘 찬가가 잘 보이지 않는다. 악당을 향해 빠르고 기발한 복수, 사이다, 참교육만이 난무한다.

뭘 배워도 기량은 쑥쑥 늘어나며 미숙함조차 흠결이 아닌 10대를 몽땅 입시 공부에 바치고 겨우 얻어낸 20대의 시간은 소중하다. 느긋하게 실패와 성공을 번갈아 경험할 여유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길을 찾기보단 실패를 줄이는 방법부터 찾으려고 한다. 운동에 관심이 생겨도 ‘효과 좋은’, ‘몸 좋아 보이는’ 키워드에 집중한다. 패션을 시작해도 ‘유행하는’, ‘가성비 좋은’, ‘이성이 좋아할’ 키워드의 옷부터 찾는다. 인간관계 또한 ‘무해하고’, ‘이익을 주며’, ‘불편하지 않은’ 형태로 꾸려 나가려 한다. 이렇듯 기준을 따라가면 오답은 면한다. 시간을 아낄 수 있다. 무엇보다 세상이 게임처럼 단순하게 보인다.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바쁜데 불안하기만 한 요즘, 기준의 편안함과 편리함은 부정하기 어렵다. 다만 이 지름길 끝에 모두가 행복한 결말이 있으리라 생각하긴 어렵다. 기준이 있고 순위가 있는 한 누군가는 반드시 아래에 있어야 한다. 하위권의 굴욕감은 아주 잠깐 동기 부여용 연료가 되기도 하지만, 이내 박탈감으로 바뀌고 끝끝내 포기로 향해 달려가기 마련이다. 이 흐름을 몇 번 겪다 보면 삶의 필수 요소 이외 온갖 행위를 시도조차 안 하게 된다.

나는 청년들이 기준 강박을 내려놓았으면 한다. 자기 삶에서 평균과 평범의 강박을 몰아냈으면 한다. 내 인생에서 나의 역할보다 운과 불운이 훨씬 더 큰 요소임을 인정했으면 한다. 쉽게 권유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깨끗하게 청소한 방에서 나가 분리수거 안 한 쓰레기로 가득한 매립지로 나가란 뜻과 다름없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세상은 전혀 질서정연하고 일목요연하지 않고, 내 노력 또한 쉽게 배신당하고 쓸모없어지기도 하며, 믿어왔던 기준조차 사실 너무나 쉽게 뒤바뀌곤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받아들이면 무슨 이익이 있느냐. 확실한 효과 하나는 보증한다. 내 탓을 잘 안 하게 된다. 고로 쉽게 불행해지지 않는다. 모호한 세상을 마주한 용기의 대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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