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통해 삶을 묻다] 왜 우리는 먼저 허기를 말할까
타인 이해하기 전 내 말부터
가까운 사람에게 더 불친절

이규리 시인의 시 '당신의 허기를 먼저 말하지 말아요' 시를 읽어나가면서 접속 부사 '그리고'가 살아 있는 시를 참으로 오랜만에 만났다. '그리고'의 남용이 문장, 시의 격을 떨어트린다고 말하지 않는가. 여기서는 참으로 희한하게 절제돼 있다. 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그리고'가 일상의 행위들을 만난다. 묘하게 잘 어울린다.
왜 잘 어울릴까를 생각해본다. 많은 이들이, 시를 좀 안다고 말하는 이들이, 접속사를 시에 쓰지 말라고 하면, '안 쓰는 것'이 맞을까. 이것이 고민이다. 이 시를 쓰는 시인은 어떤 의도에서 저항하듯이(순전히 개인적 생각이다) 썼을까 궁금해진다. 누군가가 말하는 시의 창작에 저항의 깃발을 들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는 늘은 아니지만, 내가 가진 아픔이, 허기가 커서 타인의 아픔과 허기를 보기보다는 내 것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서 하소연한다. 제발 나를 봐달리고 말한다. 타인을 이해하기도 전에, 아니 제대로 보기도 전에 '내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행동에 대한 이유를 말할 때 논리적으로 맞지 않으면, 납득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은 수많은 논리적 오류를 범하면서도 말이다. 가끔은 느낌이 가는 대로, 감정이 꽂히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인간이다. 어떻게 다른 사람이 이해할 행동만을 할 수 있으며, 나 또한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타인은 이해의 영역이 아니다. 나는 타인을 알 수 없다. 그 어떠한 설명도 그럴듯한 설명일 뿐이다.
보편이란 말을 끌어다 쓰지 말자. 보편이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어떤 것들을 모아서 보편이라고 하고, 그 보편에 속하지 않을 경우, 자신이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위선이라 하기도 하고, 작위적이라고 하기도 한다. '소식하는 이유가 나비에 있다고/ 말하면 위선입니까/ 뒤꿈치를 들고 걷는 일도 작위적입니까'하고 말한다. 여기서 시적 화자의 항변이 보인다.
'가까워서 자주 불친절했습니다'처럼 우리는 가장 사랑해야 하고, 친절한 사람에게 불친절하다. 나를 무한히 이해해 줄 거라고 믿어서일까. 감정이 무뎌져서 그런 것일까. 일상과 고루함에 젖어서 가까이 온기를 나눠야 할 사람에게 마구 불친절할 때가 있다. 그것이 가까운 사람이 가지는 특권처럼 말이다.
이규리 시인의 시 '당신의 허기를 먼저 말하지 말아요'는 통념에 젖은 나를 살짝 혼내는 느낌이다. 혼나는 느낌이 참 좋다. '왜 나는 그렇게 가까운 사람에게 불친절했나'를 묻는 봄날에 마침 시에서처럼 비가 내린다.
당신의 허기를 먼저 말하지 말아요
나비는 무게가 있습니까
이 의자에 앉으면 보지 않아도 봅니까
얼마나 이해해야 우리 밖으로 나가게 될까요
나비는
일생 자신의 무늬를 보지 못해요 그리고
사라집니다
당신, 당신의 허기를 먼저 말하지 말아요
소식하는 이유가 나비에 있다고 말하면
위선입니까
뒤꿈치를 들고 걷는 일도 작위적입니까
안개비 내립니다 그리고
가까워서 자주 불친절했습니다
- 이규리 시집 「우리는 왜 그토록 많은 연인이 필요했을까」(2025, 문학동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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