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반도체는 나눌수록 강해진다

허성무 2026. 3. 2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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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축 전략’으로 설계하는 산업안보 지도
수도권-호남-영남 ‘반도체 3축’
위험 분산·잠재력 극대화할 것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은 그간 수도권을 정점으로 한 압축 성장의 길을 걸어왔다. 자본과 인력, 인프라를 한곳에 집약해 세계적 경쟁력을 일궈낸 성과는 눈부시다. 그러나 효율 지상주의가 공고해질수록 그림자도 짙어졌다. 전력과 용수, 인허가부터 인재 확보에 이르기까지 특정 지역에 과도하게 쏠린 구조는 이제 거대한 리스크가 되었다. 공급망 충격이나 지정학적 급변, 예기치 못한 재난 상황에서 국가 실물 경제 전체가 일시에 마비될 수 있는 구조적 취약성을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효율의 시대를 넘어 산업안보의 시대다. 이제는 집적을 넘어선 '전략적 분산'이 국가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호남권 반도체 팹(Fab) 분산은 강력한 설득력을 지닌다. 전남·전북은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잠재력이 압도적이며, 글로벌 기업의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요구에 즉각 화답할 수 있는 최적지다. 지역 생산 전력을 해당 지역 산업에 우선 공급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는 송전망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동시에 친환경 제조 경쟁력을 선점하는 현실적 대안이 될 것이다. 에너지 대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호남은 반도체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전략 거점으로 기능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안보는 에너지 수급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반도체는 정밀 제조와 국방, 모빌리티와 기계 산업을 관통하는 국가 핵심 인프라로서, 수요 산업과 밀착도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여기서 창원국가산업단지를 필두로 한 영남권, 즉 부울경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된다.

창원은 대한민국 공작기계와 정밀가공 산업을 지탱해 온 제조업의 심장이다. 특수강과 정밀부품 생태계가 두텁게 형성되어 있으며, 현대로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방위산업 핵심 기업들이 인접해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의 육체'는 이미 준비되어 있는 셈이다. 그러나 첨단 무기체계와 설비 성능을 결정짓는 핵심은 결국 시스템 반도체와 인공지능(AI)칩이라는 '두뇌'에 있다. 이 지능형 칩을 국외 공급망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한, 기술 패권 경쟁은 언제든 산업 전체를 뒤흔들 리스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만약 영남권에 첨단 시스템 반도체 제조 및 패키징·테스트 인프라가 전략적으로 배치된다면 산업 지형은 완전히 달라진다. 방산 현장에서 국방용 반도체를 설계·제작하고 즉시 실증까지 마치는 '안보 밀착형 생태계'가 구축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생산 라인 확충을 넘어 국가 산업 구조를 안보 중심으로 재편하는 작업이다.

나아가 부울경은 자동차·조선·기계 산업이 집적된 물리적(Physical) 산업의 본거지다. 기계가 AI를 내장해 스스로 진단하고 공정을 최적화하는 '피지컬 AI' 시대로 진입하는 지금, 반도체와 제조의 결합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영남권에 후공정 인프라가 들어선다면 기계 산업 특화 반도체 개발이 가속화되고, 설계와 제조가 유기적으로 맞물리는 혁신적 구조가 열릴 것이다. 이는 창원을 '철의 도시'를 넘어 세계 1등 '디지털 제조업 도시'로 도약시키는 결정적 전환점이 될 것이다.

결국 해법은 기능의 전문화와 유기적 연결에 있다. 수도권은 연구개발(R&D)과 설계, 호남은 재생에너지 기반 생산, 영남은 정밀 제조 및 방산·피지컬 AI 연계 거점으로 역할을 분담하는 '3축 전략(반도체 트라이앵글)'이 핵심이다. 이는 지역 간 경쟁이 아니라 국가적 위험을 분산하고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고도의 국가 경영 전략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구체화한 '반도체 트라이앵글 연속 토론회'가 3회에 걸쳐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매회 산업안보와 지역균형발전을 향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어졌으며, 3회차 토론 발제를 맡은 창원대학교 조영태 부총장은 팹 분산의 당위성과 실행 방안을 체계적으로 제시했다. 토론회를 통해 도출된 결론은 명확하다. 반도체 산업은 특정 지역의 현안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사활이 걸린 생존 전략이다. 이제는 담론을 넘어 과감한 실행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허성무(더불어민주당·창원 성산)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