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韓 ‘유가 덫’… 중동유 3배 폭등에도 미·북해산 대체 어렵다
중동사태 장기화땐 192달러까지
원유질 달라 설비고장·품질 저하
정유사 사정 맞춘 현실 대안 필요

한국 원유 수입의 70% 안팎을 차지하는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 당 160달러 선을 돌파하는 등 연초 대비 3배까지 폭등했다. 서부택사스산원유(WTI),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 상승세에 비하면 압도적이다.
정부는 미국·러시아산 원유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두바이유 대체 효과가 그렇게 크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산 셰일원유는 경질유, 두바이유는 중질유, 러시아산 원유는 중간 수준에 해당한다.

이처럼 기름의 질이 각각 다른데 국내 정유시설은 대부분 중질유에 맞춰 설계됐다. 이 설비에 경질유를 넣을 경우 부식이 발생하거나 원하는 품질의 제품을 만들지 못할 수 있다.
여기에 중동산과 비교해 이동거리도 멀고, 중간 가공 과정을 거치거나 두바이유와 섞어써야 하는 등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아 대체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게 현장의 하소연이다.
업계에서는 좀 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현실적인 대안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양기욱 산업통상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25일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에서 “러시아산 원유·석유제품 도입과 관련해 달러화 외에 위안화(중국), 루블화(러시아), 디르함화(아랍에미리트) 결제가 가능하며, 이에 따른 2차 제재도 없다는 점을 미국 재무부로부터 확인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러시아산과 미국산 등을 적극 검토하는 이유는 중동 전쟁에 따른 파장이 길어질 수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중동 전쟁이 이달 안에 끝나더라도 정상화까지 최소 몇달은 더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아시아 국가들에게 치명적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2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배럴당 179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하루 약 2100만배럴이 통과해 세계 해상 원유 교역량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한다.
6월말 사태가 종결되는 시나리오에선 배럴당 168달러에서 최고 192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진단했다. 봉쇄 기간이 4개월간 지속되면서 공급부족 누적·전략비축유 소진 가속으로 가격 인상 압박이 그만큼 커질 수 있어, 정상화까지 시간이 상당기간 소요될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로 산업부 원자재가격정보에 따르면 전날 싱가포르에서 거래된 두바이유 현물 가격은 배럴당 157.3달러를 기록했다. 전일인 지난 23일엔 169.75달러까지 치솟았다.
지난 1월 평균 거래가격(61.97달러) 대비 274%나 오른 가격이며, 한 달 전과 비교하면 120%가량 오른 셈이다. 그에 비해 WTI와 브렌트유의 한 달 전 대비 가격 상승률은 30%대다. 연초와 비교해도 상승률은 50~60% 수준이다.
정부는 수급과 가격 모두 최악인 상황인 만큼 원유 다각화를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정유업계 안팎에서는 “원유 자체의 수급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중동산 석유의 수입이 중요하다”라는 말이 나왔다.

이유는 원유 질 때문이다. 정제를 거치지 않은 석유는 일반적으로 ‘원유’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지만, 정유업계에서는 석유의 비중이나 황 함유량 등 원유가 품은 내용물에 따라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석유의 비중을 판단하는 기준은 미국석유협회(API)가 정한 기준을 따르는데, 물(10도)을 기준으로 석유가 얼마나 가벼운지(경질), 무거운지(중질)를 계산해 척도로 나타낸다.
정유사들은 탈염시설, 탈황시설을 거쳐 불순물을 걸러낸 뒤 끓이거나(증류 공정) 중질유분해(크래킹) 공정을 거쳐 원유를 생산한다. 하지만 유종에 따라 원유가 품은 내용물과 불순물의 편차가 크기 때문에 정유사들은 유종에 맞춰 각각 다른 시설을 쓴다.
만약 중질유에 맞춰진 정유시설에 갑자기 경질유 비중을 높이면 증류 과정에서 나프타 등 가벼운 성분이 설비용량에 비해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오는 등의 현상이 발생한다.
이 경우 응축기 용량을 넘어서거나, 증류 공정 탑 내부의 액체가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 등 공장 가동에 차질이 생긴다.
이를 막으려면 휘발성 가스와 나프타를 안정적으로 분리하고 나누어 담는 설비인 스플리터나 스테빌라이저 등의 보조설비를 더해야 한다.
여기에 중동산보다 오래 걸리는 운송 기간, 중간 가공과 추가 설비에 드는 비용 등을 고려했을 때 정유사들이 이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기름을 구해와도 정유사들이 잘 활용하려면, 설비에 맞는 기름을 찾아 수급하는 디테일이 필요하다”면서 “각 정유사마다 다른 사정에 알맞게 적절한 가격에 적절한 기름을 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관건이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부도 이 같은 문제를 어느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양 실장은 “원유는 성상문제, 신뢰 거래자 문제, 한 달 내에 거래를 마무리할지 등에 대한 문제가 있어서 정유사 반응을 체크해야 한다”며 “나프타는 상대적으로 원유보다 도입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임재섭 기자 yj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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