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마렐…“나도 그 세계를 알죠” [크리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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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렐은 북부 사투리로 '조그만 남자'라는 뜻으로, 가벼운 농담조로 사용되었다.
알다시피 그 세계는 매혹적이지만, 외부인에게 닫혀 있다.
그러나 출입금지나 은폐가 거의 불가능한 곳이 있으니, 건물을 짓거나 도로를 보수하는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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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 | 전 열린책들 편집이사
동네 공사 현장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을 이탈리아에서는 ‘우마렐’(Umarell)이라고 한다. 이들은 대개 뒷짐을 지고 서서 작업을 구경한다. 간간이 요청하지도 않은 조언을 제공하기도 한다. 2005년 볼로냐의 한 작가가 처음 사용한 이 단어는 2017년 이탈리아어 사전에도 등재되었다. 우마렐은 북부 사투리로 ‘조그만 남자’라는 뜻으로, 가벼운 농담조로 사용되었다. 공사장 앞에 출몰하는 요정 같은 존재랄까. ‘올해의 우마렐’을 선정하는 도시도 있다. 단어의 발상지 볼로냐는 소유권을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고 느꼈는지 시청 옆 공터에 ‘우마렐 광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런 이야기가 유쾌하기는 하지만, 공사장 앞에 종일 서 있는 노인의 모습에서 복잡한 느낌을 받지 않기는 어렵다. 왜 하필 공사장일까? 노인들은 은퇴 전에 생산직이었든 사무직이었든 간에, 지금은 작동과 제작의 세계로부터 배제되어 있다. 알다시피 그 세계는 매혹적이지만, 외부인에게 닫혀 있다. 구경 좀 하겠다고 공장이나 사무실로 마구 들어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출입금지나 은폐가 거의 불가능한 곳이 있으니, 건물을 짓거나 도로를 보수하는 현장이다. 그래서 건설업 출신이 아닌 노인들조차 공사장으로 향하게 된다. 거기서 이들은 작동-제작의 세계를 보며 마음의 평안을 찾는 게 아닐까. 다만 뒷짐 진 자세는 자신이 구경꾼에 불과함을 안다는 뜻이며, 그들이 던지곤 하는 조언도 꼭 들으라는 것이라기보다 이런 뜻에 가까울 것이다. “나도 이런 세계를 알죠.”
작동과 제작의 세계가 매혹적이라는 건 꼭 일을 해봐야 아는 건 아니다. 트루먼 커포티의 단편 ‘생일을 맞은 아이들’(1948)에는 학교 끝나면 곧장 자동차 수리점에 진을 치고 구경하는 꼬마들이 나온다. 사실 평범한 모습인데, 나도 비슷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지각이 잦았는데, 통학길 공사장에 벽돌 찍는 기계가 있었다. “크르륵!” 하면서 벽돌이 한판씩 찍혀 나오는 거 구경하다가, 조금 더 가면 쌀가게가 나왔다. 석발기(쌀에서 돌 골라내는 기계)가 철커덩철커덩 움직이는 걸 한참 보고 있으면 주인 아저씨가 “아홉시 넘었다”고 알려주곤 했다. 이 기계들은 가끔 꿈에도 나온다.
꼬마들이 이런 것에 사로잡히는 이유는 뭘까. 뭘 알아서도 뭘 경험해서도 아니라는 건 명백하다. 노인이 직장생활이 그리워서 공사장을 구경한다는 설명은 좀 부족하다. 익숙함이나 실용성과는 무관한 뭔가가 우리를 작동과 제작에 끌리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건 노인이든 아이든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몇해 전 북촌을 걷다가 실로 수십년 만에 석발기가 돌아가는 쌀가게를 보았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일본 여자애와 그 아버지가 그 앞을 떠나지 못하고 한참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낡은 기계에 홀린 부녀의 모습을 구경했다. 지브리 영화 같기도 했고 내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이들은 사진을 찍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그게 나를 좀 감탄시켰다. 이들은 현재의 몰입을 택한 것이다. 장작불 사진을 찍어 간들 그걸 나중에 ‘불멍’에 쓸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오늘날 많은 이들이 정반대로 할 것이란 것도 안다.
우마렐이 환기하는 것은 이런 것 아닐까. 은퇴자가 느끼는 직장생활의 향수. 어렸을 때부터 우리를 사로잡았던 작동-제작의 매혹.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이로운 장면 앞에서 사진기를 꺼내는 대신 자신의 시간을 줄 수 있었던 시절의 기억. 뒷짐은 그저 보고 있다는 표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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