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진 전쟁에 '쓰봉' 대란까지… "사재기 그만, 재고량 아직 넉넉해요"
7곳 중 4곳은 '품절'… 2곳도 대용량만
입고 즉시 소진, 편의점 판매 234%↑
사재기 열풍에 '인당 구매 제한' 조치도
"전국 지자체 재고, 평균 3개월 사용량"
원료 1년 치 이상 확보 "공급 문제없어"

"종량제 봉투 품절입니다. 전쟁 때문에 하도 많이 사 가서요."
24일 서울 마포구 한 편의점. 60대 손님이 종량제 봉투를 찾자, 직원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틀 뒤에나 물건이 새로 들어온다"는 안내에 손님은 쓴입을 다시며 발길을 돌렸다. 직원 이모(37)씨는 "요 며칠 사이 방문한 손님들은 기본적으로 30장씩 산다"며 "주변 편의점들도 전부 재고가 부족해 발주를 서두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미국·이란 전쟁 장기화로 비닐 원료인 나프타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종량제 봉투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은 일부 매장에선 품절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날 한국일보가 서울 시내 편의점과 마트 7곳을 둘러보니, 4곳은 종량제 봉투가 이미 동났고 재고가 있는 3곳 중 2곳도 가정집에서 거의 쓰지 않는 75리터 대용량만 겨우 남아 있었다.
서울 강서구 소재 편의점 점주 허모(49)씨는 "물건을 들여와도 사나흘이면 다 팔린다"며 "하루에 10명 넘게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또 다른 편의점 점주 조모(52)씨도 "전쟁 걱정을 하며 75리터 봉투 40장을 한 번에 사 간 손님도 있었다"고 전했다. 사재기를 막기 위해 1인당 구매 수량을 제한하는 매장도 많다.
실제로 25일 편의점 CU에 따르면 전국 매장에서 22~24일 음식물 쓰레기 봉투는 지난주 같은 기간과 비교해 153.3%, 일반 종량제 봉투는 216.4% 더 팔렸다. GS25에서도 이 기간 판매량 증가율이 음식물 쓰레기 봉투 182.7%, 일반 종량제 봉투 234.5%였다. 세븐일레븐과 이마트24 역시 같은 기간 두 종류 봉투의 합산 판매량이 각각 169%, 177% 늘었다.

종량제 봉투는 생활필수품이라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이 유독 크다. 서울 용산구 주민 이모(55)씨는 "집 앞 편의점에 갔더니 품절이라 15분 거리 마트까지 가서 20리터 봉투 30장을 샀다"며 "곧 동날까 봐 마음이 급해지더라"고 했다. 직장인 최모(34)씨도 "코로나 때도 처음에는 마스크 물량이 충분하다고 했지만, 결국 품절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냐"며 "미리 대비하는 차원에서 대량 구매했다"고 말했다.
비닐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소상공인들도 걱정이 많다. 서울지하철 9호선 가양역 인근에서 떡집을 운영하는 이준경(45)씨는 "최근 거래처에서 비닐 가격을 10% 정도 올렸다"며 "어쩔 수 없이 봉투값을 50~100원 받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밥전문점을 운영하는 김지원(43)씨도 "포장 장사를 하는 입장에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라며 "손님에게 참기름 묻은 포일 포장을 맨손으로 들고 가라고 할 수 없으니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정부는 안정적인 공급에 전혀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228개 지방자치단체를 전수조사한 결과 종량제 봉투 완제품 재고량은 전국 평균 3개월 사용 분량으로, 6개월 치 이상 보유한 지자체도 절반이 넘었다(123곳). 나프타 외에 종량제 봉투 생산에 추가 투입 가능한 재생원료(PE) 보유량도 2024년 종량제 봉투 총판매량(17억8,000만 매)을 상회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문가들은 사재기 현상이 실제 공급 부족보단,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고 분석한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사지 않으면 손해'라는 인식, 즉 손실 회피 심리가 집단적으로 확산한 결과"라며 "정부가 대응 방안을 구체적으로 공개해 불확실성을 줄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공급망 불안이 증폭되자 국민 생활과 산업 전반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품목을 지정해 집중 관리하기로 했다. 종량제 봉투를 포함해 △차량용 요소수 △발전소 기동용 유류·암모니아수·무수암모니아·요소수 △수송용 수소 △집단에너지용 액화천연가스(LNG) △풍력발전·태양광 핵심 기자재 등이다.
권정현 기자 hhhy@hankookilbo.com
남병진 기자 south@hankookilbo.com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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