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혁칼럼] 노란봉투법의 역설

황인혁 기자(ihhwang@mk.co.kr) 2026. 3. 2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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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사장 나와라."

교섭을 촉구하는 하청 노조의 외침에 대기업 노무 담당자들의 한숨이 깊어진다.

지난 10일 시행된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에 경영계가 몸서리치는 이유는 법 해석의 모호함과 노조의 과잉 행동 때문이다.

노란봉투법에서 첨예한 쟁점은 '사용자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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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 불확실성 커진 원청들
'하청업체 솎아내기' 착수
기업 생존본능 탓할 수 있나
현장 혼선 줄일 보완책 시급

"진짜 사장 나와라."

교섭을 촉구하는 하청 노조의 외침에 대기업 노무 담당자들의 한숨이 깊어진다. 지난 10일 시행된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에 경영계가 몸서리치는 이유는 법 해석의 모호함과 노조의 과잉 행동 때문이다.

한화오션의 급식·청소 하청업체인 웰리브 노조는 거제사업장 앞에서 천막 시위를 벌였다. 한화오션이 선박 생산 하청업체에 지급한 성과급을 '우리한테도 달라'는 요구다. 한화 측은 선박 생산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고 다른 기관들과 거래 실적이 있는 웰리브가 성과급 지급을 주장하는 건 부당하다고 반박한다. 노란봉투법에서 첨예한 쟁점은 '사용자성'이다. 원청 사용자가 하청 노동자들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하는지를 판단해야 하는데 노사 양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린다.

교섭 의제도 민감한 사안이다. 하청업체의 임금까지 관여할 수 없다는 게 원청기업의 강경한 입장이다. 실제로 고용노동부가 공개한 '개정 노동조합법 해석지침'은 임금 문제가 원칙적으로 교섭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특별한 상황에서는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예외를 둬 노사 갈등의 빌미가 될 수 있다고 경영계는 우려한다.

급기야 기업의 방어 본능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한국 굴지의 A대기업은 협력사를 추려내는 작업에 곧바로 착수했다. 원청은 노무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협력사 숫자를 줄이고 통제 가능한 협력사만 남기는 게 합리적 선택이 된다. 자체적인 노무관리가 되는 대형 협력사는 살아남겠지만 중소 협력업체는 생사의 벼랑 끝에 놓인 셈이다.

기존 하청업체만 타격을 입는 게 아니다. 납품을 원하는 신생 업체들의 신규 진입 기회도 줄어들 개연성이 농후하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내부자·외부자 문제'로 설명한다. 기득권을 지닌 내부자의 보호 장치가 강화될수록 기업은 외부자의 신규 채용과 거래에 소극적으로 대응한다. 프랑스도 유사한 일을 겪었다. 사용자 책임과 근로자 보호를 강화하자 기업 신규 채용의 상당수가 단기 계약에 집중되면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심화됐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려던 법이 오히려 약자를 밀어내는 역설은 한국에서 종종 발생했다. 비정규직 보호법이 그랬다. 비정규직으로 2년 이상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의무화한 법이 비정규직을 2년 만에 잘라내도록 만들었다. 최저임금을 올려 저임금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려고 했더니 알바생 일자리가 줄어든 것도 같은 이치다.

노란봉투법에 대한 원청기업의 대응은 단순히 '협력사 솎아내기'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참에 피지컬 AI(인공지능)를 비롯한 자동화와 내재화에 한층 속도를 낼 태세다. 원청과 하청이 상생하면서 두툼한 산업 생태계를 조성한다면 좋겠지만 생존을 위한 대기업들의 고군분투를 비정한 결정이라 매도할 수는 없다.

기왕 시행된 노란봉투법의 본래 취지를 살리기 위해 법 해석의 불확실성을 최대한 덜어줘야 한다. 정부가 매뉴얼을 배포하고 수차례 설명했다고는 해도 산업 현장에선 해석상의 혼선이 여전하다. 기업의 정당한 방어권이 흔들릴 것이란 지적도 많다. 특히 원청과 무관한 사안에 대해 노동쟁의가 촉발될수록 한국은 '노조공화국' 오명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

물론 원청이 우월적 위치에서 하청을 불합리하게 다루던 관행은 바뀔 필요가 있다. 노란봉투법이 이러한 구조적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긍정적이다. 하지만 원청이 노무 위험을 회피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든다면 그 법의 설계는 잘못된 것이다.

[황인혁 국차장 겸 디지털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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