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면 보물, 안 쓰면 고철…오늘도 쇠붙이에 혼 불어넣어 [경남 무형유산을 찾아서]

류민기 기자 2026. 3. 25.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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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두석장
소목장과 ‘바늘과 실’, 떼려야 뗄 수 없어
아파트 선호 흐름 속 함께 쇠락의 길
정한열 보유자 뒤 이은 정태교 이수자
황동 도장 판매 등으로 수입원 다변화
경상남도 무형유산 '두석장' 정태교 이수자가 전통 촛대를 설명하고 있다. /류민기 기자

교과서와 여행안내서, 미디어를 통해 자주 보게 되는 국가유산은 이미 상식처럼 익숙하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지역으로 시선을 돌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경상남도에만 모두 41건의 무형유산이 지정돼 있다. 하지만 이름과 내용, 그것을 지켜온 사람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지역 유산을 조명하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고, 그때마다 '기록의 필요성'과 '계승의 위기'가 이야기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관심은 쉽게 흩어진다. 이 기획은 단순히 지역 유산을 나열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지역의 시간과 감각 그리고 그것을 오늘까지 이어온 사람들의 현재를 차분히 따라가며 응원과 격려를 보내는 일이다.

2012년 5월 14일 자에 '경남의 맥을 찾아서-김극천 통영 장석 무형문화재 보유자'라는 제목으로 두석장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에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

"장석은 시대 흐름에 따라 문양이 바뀌고 재료가 바뀌지만, 쇠락으로 접어든다. 가구 크기도 변한다. 아파트나 양옥으로 주거가 바뀌던 시절부터 서양 가구가 이 공간을 차지한다. 장석 가구는 장식용으로 변한다. 서양 가구는 자꾸만 커졌다. 장석 가구는 1m 20㎝ 정도 되던 것이 70㎝ 정도로 자꾸만 작아진다."

여기서 장석은 전통 목가구에서 자물쇠, 들쇠 등 금속 장식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장석이 있어야 가구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시간이 흘러 2026년, 시대가 다시 바뀌었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 주택의 65% 이상이 아파트다. 신축 아파트마다 붙박이 가구와 팬트리가 보편화되며 가구 수요는 줄어들었고, 장석이 들어설 공간조차 없다시피 하다.

"쓰면 보물이 되고 안 쓰면 고철이 되는 것들이에요."

이달 초 진주시두석장전수교육관에서 경상남도 무형유산 '두석장' 정태교(44) 이수자를 만났을 때 그가 장석 제작 도구를 가리키며 한 말은 이런 시대를 잘 보여준다. 그는 "지금은 명맥을 유지만 해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진주시두석장전수교육관 모습. /류민기 기자
진주시두석장전수교육관 모습. /류민기 기자

목가구 기능 보강하고 장식 효과 살려

국가유산청에서는 두석장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목가구의 결합 부분을 보강하고 열고 닫을 수 있는 자물쇠 등의 금속제 장식을 장석이라고 하며, 구리와 주석을 합금한 황동(놋쇠) 장석을 만드는 장인을 두석장이라고 부른다. (중략) 장석만으로는 하나의 완성품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소목장의 주문에 따라 특별 제작되었다."

앞서 언급했던 2012년 5월 14일 자 기사에서는 두석장을 이렇게 설명했다.

"밋밋한 가구에 화려한 꽃을 다는 일, 두석장의 일이다. 장석은 목가구의 약한 부분을 보충한다. 가구의 아름다움을 극적으로 미화하는 소품이 장석이다. 고가의 사치품이고 가구를 예술품으로 바꾸는 일이다."

이처럼 두석장은 목가구의 기능을 보강하고 장식 효과를 살리는 일을 한다. 경남에서는 경상남도 무형유산으로 정한열 보유자가 있었으며, 정 보유자가 2019년 작고한 후 그의 아들인 정태교 이수자가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다. 국가무형유산으로는 김극천 보유자가 있다.

두석장과 소목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진주는 지리산과 인접해 양질의 목재를 구할 수 있어 소목이 발달했다. 소목은 전통 한옥의 목가구 제작 기술에서 발전했으며, 조선시대 후기 목가구 제작이 성행하면서 두석장도 함께 성장했었다.
정태교 이수자가 아버지 정한열(오른쪽) 보유자와 함께 작업하고 있다. 정 보유자는 2019년 작고했다. /정태교
진주시 신안동 공방에 있는 정태교 이수자. 이곳은 고 정한열 보유자의 작업실이기도 했다. /정태교

전통 방식 고수한 아버지와 마찰 빚기도

"생전에 아버지께서 언론 인터뷰하실 때도 그렇고 '후계자가 없다', '내 죽으면 할 사람이 없다'고 하셨지만 저한테 '이 일(두석장)을 해라', '이 일을 해야 한다'는 말씀은 안 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느껴 보니까 아버지께서 쓰시던 도구나 이런 것들이 너무 아깝더라고요. 제가 쓰면 보물이 되고, 제가 안 쓰면 다 고철이 돼서 고물상으로 가야 되잖아요. 그래서 고민, 고민하다가 아버지한테 '이 일을 한번 해보겠다'고 말씀드려서 시작한 거예요."

정 이수자는 2010년에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자신이 물려받지 않는다면 당신의 역사가 사라질 것 같았다고. 전화 주문 방식을 벗어나 온라인 판로를 개척하겠다는 생각과 함께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상품을 개발하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전통 방식을 고수하신 아버지와 마찰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장석은 가구에 붙어야 한다'는 생각과 '장석을 현대적으로 변용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부딪쳤다. 의견 대립은 정 보유자가 타계할 때까지 이어졌다.

정 이수자가 소목 일을 배워 목공예품을 만들어 장석을 부착해 판매하고자 했으나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신 이후에는 두 가지 일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관광 기념품을 만들어 판매해보려고도 시도했지만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그는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많이 해봤다"는 말로 지난했던 시간을 되돌아봤다.
정태교 이수자가 장석의 재료인 황동을 활용해 만든 인감도장 '찍지'. /정태교
정태교 이수자의 작품. /정태교

상품 판매 등 수입원 다변화

현재 정 이수자는 어떻게 명맥을 이어가고 있을까. 그는 두석장 본연의 일인 장석 제작 외에도 현대적으로 변용해 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장석의 재료인 황동을 활용해 만든 인감도장 '찍지'가 대표적이다. 이 황동 도장은 2020년에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우수문화상품'으로 선정됐다.

2021년에는 정 이수자가 운영하는 '고전장석'이 경남지방중소벤처기업청의 백년소공인에 선정됐다. 그는 진주중앙지하도상가(에나몰)에 있는 고전장석에서 상품을 판매하면서 에나몰을 오가는 시민들에게 두석장을 알리고 있다. 시민을 대상으로 한 '전통 촛대 만들기' 수업도 하고 있다. 진주시는 무형유산을 체험하는 교육을 무료로 하고 있는데, 정 이수자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수업을 맡고 있다.

'무형유산 토요상설공연'도 있다. 2007년부터 진행된 무형유산 공연은 올해로 19회째를 맞았으며, 4월부터 9월까지 진주성 야외무대에서 열린다. 정 이수자는 장석 제작 시연과 함께 시민 체험 활동을 한다. 토요상설공연에서는 예능 종목으로 국가무형유산인 진주검무·진주삼천포농악을 비롯해 경상남도 무형유산인 진주포구락무·신관용류가야금산조·진주오광대를 선보인다. 기능 종목으로는 두석장과 함께 장도장이 참여한다.
정태교 이수자의 작품. /정태교
고 정한열 보유자의 작품. /정태교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되나?'는 고민도"

정 이수자는 현재 두석장으로서 살길을 모색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는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되나?'는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며 "제가 안 하면 누가 하겠느냐. 지금은 명맥이라도 유지하니 잘했다고 박수받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전수교육관 한편에는 '목가구 장식의 분류'라는 제목으로 경첩·들쇠·감잡이·귀잡이 등이 나열된 안내판이 붙어 있다. 지금은 옛이야기가 됐지만 한창 인기가 있을 때는 두석장도 분화돼 있었다고. 쇠락의 흐름 속에 있는 두석장, 그렇지만 정 이수자는 K문화를 언급하며 희망을 놓지 않았다.

"매일매일 황동 도장 작업하고 장석 주문 들어오면 또 열심히 견적 내주고 그렇게 합니다. 지난해에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흥행하며 전 세계적으로 갓이 주목받았잖아요. 제 생각에는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장석이 뜰 때가 안 있을까 싶어요."(웃음)

/류민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