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최저 지지율에 ‘마러라고’마저 패배… 출구없는 전쟁에 궁지 몰린 트럼프
1년전 것 재탕한 ‘15개 요구안’ 실효성 논란
동맹국들도 등돌리며 국제적 고립 심화
협상과 지상군 투입 사이 위험한 줄타기
‘5일간의 유예’는 트럼프 자신을 위한 시간

그만두고 싶은데 출구가 없다. 협상을 말하며 승리를 공언하지만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안으로는 미국 국내 민심이 등을 돌렸고, 자신의 정치적 고향이자 '겨울 백악관'이라 불리는 마러라고 인근 선거구에서의 보궐선거도 패배했다. 이란을 굴복시키려 했으나 오히려 마러라고가 함락됐다. 밖으로는 전통적인 동맹국들이 등을 돌렸다. '5일간의 유예'가 끝나는 27일을 향한 시계는 무심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야말로 궁지에 몰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격 개시한 이란과의 전쟁이 한 달을 향하고 있다. 중동 전황은 이제 장기 소모전 양상으로 변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처럼 속전속결로 마무리하려던 트럼프의 구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지난 24일(현지시간) 치러진 플로리다주 하원 87선거구 보궐선거 결과는 단순한 지역구 상실 이상의 정치적 함의를 갖는다. 이곳은 트럼프 대통령의 자택인 마러라고 리조트가 위치한 상징적 요충지다. 2024년 대선 당시 트럼프가 11%포인트(p) 차로 낙승했던 공화당의 강세 지역이다. 여기가 민주당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은 지지층 내부에 발생한 심각한 균열을 의미한다.
로이터와 입소스가 실시한 최신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36%로 급락했다. 이는 재집권 이후 최저치다. 특히 물가 대응에 대한 긍정 평가는 25%에 불과하다. 핵심 지지층인 공화당원 사이에서도 부정 여론이 34%까지 치솟았다. 이란과의 전쟁으로 촉발된 유가 급등과 인플레이션이 '트럼프즘'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이란 측으로부터 "에너지와 관련한 매우 큰 선물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외교적 해결을 낙관했다. 밴스 부통령과 루비오 국무장관, 사위 쿠슈너 등 핵심 측근들이 총동원된 '15개 요구 목록'이 파키스탄을 통해 이란에 전달되었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그러나 외교 전문가들은 이 목록이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실패한 과거의 재탕'이라고 분석한다. 핵 능력의 완전한 해체, 우라늄 농축 금지, 호르무즈 해협의 무조건적 통항 보장 등은 이란 입장에서는 국가 주권을 포기하라는 항복 문서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란 정부가 "미국과의 직접적인 대화는 없었다"며 트럼프의 발표를 정면 반박하고 있다. 최근에 내놓은 트럼프의 발언은 그 진실성도 의심받고 있다. 백악관의 '이란 선물론'은 추락하는 지지율을 방어하기 위한 국내 정치용 수사일 가능성이 크다.

협상을 언급하는 트럼프의 발언 이면에는 대규모 병력 증강이라는 군사적 압박이 도사리고 있다. 미 국방부는 육군 최정예 부대인 제82공수사단 소속 3000명 규모의 병력을 중동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명령 즉시 24시간 내에 작전지에 투입되어 비행장과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는 신속대응군이다.
동시에 일본에 주둔하던 상륙함 트리폴리함과 뉴올리언스함, 제31해병원정대 소속 2200명의 병력도 27일쯤 중동 작전 구역에 진입할 예정이다. 이는 트럼프가 설정한 '5일간의 에너지 시설 공격 유예' 시한이 끝나는 시점과 맞물린다. 협상 테이블에서 최대치를 얻어내지 못할 경우 하르그 섬 점령 등 지상전으로 즉각 전환하겠다는 신호다.
트럼프의 이같은 일방적인 행보에 대해 미국 국내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의 시선도 차갑다. 미국의 오랜 동맹국들인 G7 내부에서는 이미 균열이 가시화되고 있다.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주요 동맹국들은 미국의 이번 군사 작전이 "불법적이고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외교적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정권 교체를 이뤘다"며 전쟁의 승리를 선언하고 있지만 누구도 트럼프의 발언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란의 미사일 공습은 여전히 이스라엘 주요 도시를 타격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이 장악한 가운데 긴장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동맹국들의 협력 없이 독자적인 지상전을 감행할 경우 미국은 베트남이나 아프가니스탄 전쟁보다 더 가혹한 늪에 빠질 위험도 있다. 지금 누구보다 협상 타결을 원하는 사람이 바로 트럼프 대통령일 가능성이 큰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5일간 공격 유예'를 선언한 것도 그의 본심이 지상군 투입을 피하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란의 민간 발전소와 에너지 인프라를 타격할 경우 이는 중동에서 전면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걸 의미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등 우방국의 경제까지 마비시킬 수 있다. 실제로 이란은 국제해사기군(IMO)에 서한을 보내 '비적대적 선박'만 통과를 허용하겠다고 밝히며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무기화하고 있다.
에너지 가격 폭등은 트럼프에게 치명적이다. 공화당 지지층 내부에서도 물가 불안에 대한 불만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가 상승을 억제하지 못할 경우, 트럼프가 내세웠던 '경제 재건'의 구호는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5일간 유예'는 이란을 향한 자비가 아니라, 미국 경제 붕괴를 막기 위한 트럼프의 고육지책에 가깝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쟁을 통한 승리'와 '경제적 안정'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과제 사이에서 외통수에 몰린 형국이다. 군사적 성과를 강조하기엔 전황이 불투명하고, 유가 폭등을 막기 위해 무조건적인 회군을 택하기엔 지도자로서의 권위가 실추된다.
27일은 이번 사태의 중대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증원 병력의 도착과 공격 유예 시한이 겹치는 이 날, 트럼프가 협상의 극적인 타결을 이끌어내느냐, 아니면 도박에 가까운 지상전의 방아쇠를 당기느냐에 따라 그의 재집권 운명은 물론 중동의 지도가 다시 그려질 것으로 보인다. 이때까지 실질적인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트럼프는 집권 이후 최대의 통치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권순욱 기자 kwonsw8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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