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 한 그릇, 그림 한 점···시장통 노포, 예술로 노나다
국밥집에서 비엔날레까지
“이왕 술 마실 것 그림도 보자”
술잔 속 제안 자생 프로젝트로
담양 장에서 말바우시장까지
갤러리가 된 ‘삶의 터전’ 눈길
장 보러 나왔던 이장도 감상평
할매들도 “귀경 잘했다” 호평
싸납쟁이 아지매 얼굴엔 웃음꽃
생활 변화시키는 ‘미술의 힘’

올해는 광주비엔날레가 열리는 해다.
가까이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미술축제를 기꺼이 관람하게 되는데 요즘에는 진행하고 있는 어린이 미술 프로그램(땅과 예술) 아이들을 대동한다. 관람 시에는 메모장을 준비하게 해서 작가명, 작품명, 작품 감상문 등을 작성하게 하는 미션이 주어지는데 괜한 주문은 아닌지 아이들의 메모장을 곁눈질하면서 관람을 대신하기도 한다.
나는 두 번의 본 전시 참여 경험이 있다.
멈춤(2002), 복덕방 프로젝트(2008)이 그것인데, 첫 번째는 모내기 들판에서 시작해 참가하게 되었고 두 번째는 국밥집에서 시작해 참가한 것이다. 돌이켜보니 그 여정이 읽히기도 해서 몇 회에 걸쳐 다뤄보려 한다.
세상은 또 봄이다.
꽃이 피었다고 난리
꽃이 안 피었다고 난리.
술집에서는 꽃이 피었다고 한 잔 꽃이 안 피었다고 한 잔.
산비탈에 홍매 백매, 국밥집에는 금방 산행 다녀온 중년들 몇이서 얘기 꽃이 활짝 피었다. 무등산 동조골 코스로 탔는데 그늘져 꽃이 아직 안 피었다는 둥 하면서 탁배기 사발 목 넘김이 시원하다. 여기에 안주꽃이 없을쏜가. 삶은 머릿고기 누름머리 새우젓에 꾹 찍어먹으면 입안에서도 꽃이 핀다는 것 아닌가.
언젠가 나도 시장통 국밥집을 풀방구리마냥 드나들 때가 있었는데 후배와 술잔 놓고 앉아 “우리 맨입으로 이럴 게 아니라 그림 걸어놓고 마셔보세” 한 것이다. 화실에 먼지 낀 그림 액자들 꺼내어 먼지도 털 겸 바깥 구경 좀 시키자는 것이었다. 그림이 꼭 미술관에서 보여야 하는 것도 아니라면서 기왕 술 마실 바에는 그림도 보고 국밥도 먹고 국밥집에 그림 걸어놓고 걸판지게 마셔보자는 제안이었다. 같이 한 후배도 맞장구를 치고 해서 뜬금없는 시장 국밥집에서 전시회를 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소박한 생각이었는데 주변 작가들도 재밌다는 반응이어서 작가 그룹이 형성되고 격식 갖춘 전시회를 하기에 이른다.
막상 그림을 걸어놓고 보니 반응이 괜찮다. 장 보러 나온 마을 이장님도 들려 탁배기 한 사발 자시고 후한 감상평도 하시고 아짐 할매들도 “오메 귀경 한 번 잘했어라!” 미술 관계자들도 상찬을 아끼지 않는 것이었다.
시장통 허름한 국밥집이 뜻밖에 노가 난 것이다.
주인도 작가도 주인 순창댁은 얼굴이 해낙낙해졌음은 물론이다. 평소 욕쟁이 싸납쟁이로 소문이 자자한 아짐인데 말이다.
작가들도 전시회 핑계 삼아 노닥거리게 되고 장날이 아닌 날도 관람객이 생기다 보니 국밥집 손님이 늘어난 것이다.
‘장전’이라는 명제로 2003년에 시작해 2005년까지 연 3회로 치르고 광주로 이동하게 된다.
이 전시회를 필두로 담양시장 프로젝트가 이어지게 되는데 미술이 시장에 개입하는 전국적으로도 흔치 않은 사례로 꼽힌다. 작가들의 자발적인 감성이 만든 결과라고 본다.
첫 번째 국밥집 전을 끝내고 다음 전시 계획을 세우는데 더 확장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왜냐면 시장통에 국밥집이 여럿인데 한 곳에서만 전시회를 했더니 한집만 장사가 잘되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다른 국밥집들도 참여 의사가 있으면 같이 하자 한 것인데 문제가 생긴 것이다. 싸납쟁이 아짐이 전처럼 또 할 것 같으면 자기 집에서만 하자고 우긴 것이다.
그러나 작가들 입장은 전시회를 확장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 것이다. 당시 현장 미술이라는 개념이 막 생길 때고 우선은 주변 집들에게 미안한 것이었다. 또 참여 작가도 늘고 해서 다음 해부터는 운집된 국밥집 전부 다 참여하게 된다. (참여 작가 고재근, 박문종, 박수만, 전현숙, 윤남웅)
국밥집 전시회는 생각보다 간단한 것이었다. 액자를 걸고 떼고 하는 게 전부라서 국밥집이라는 특정 지을 수 있는 분위기에 숟가락만 올리는 식이니 차림표는 물론이고 시계 거울 에어컨 등 기물들을 그대로 놔두고 빈 벽에 맞춤형 액자 그림을 걸었다 떼면 됐으니 말이다. 그림도 현장과 어울리는 현실적 내용이면 했는데 전시회가 거듭되면서 작가의 현실 인식이 작품에 반영되지 않았을까.
그러니 작업의 토대가 이런 전시회를 통해 이뤄지게 되는 것이므로 작가도 애써 ‘현장미술’을 참여하는 이유인 것이다.

예전에는 제방을 등받이 삼아 국밥집들이 뚝방(관방제) 아래 다닥다닥 붙어있을 때였으니 지인들과 종종 국밥에 술을 마시곤 했었는데 그러다보니 ‘선술집 풍경’이 내 작업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한 번은 뚝방아랫집 돼지곱창집에서 지글지글 연탄불에 돼지 굽는 냄새가 진동하고 매번 먹던 거라 입에 물린 탓도 있고 해서 마침 바로 앞이 어물전이었다. 채반에 삐들하게 말리고 있는 황실이(황석어)가 있어서 “어이 저거 여기 불판에 몇 마리 올려보세” 했다. 난리가 났다. 육지 것과 바다 것이 만나 맛을 내니 꼬순내에 보드라운 생선 맛이 일품이어서 이후 그 집은 곱창집에서 황실이 집으로 탈바꿈하게 되고 같이 한 윤남웅 작가는 비릿한 생선을 그림판에 올리게 되는 계기가 된 것으로 안다.
이런 류의 ‘우리네 삶과 직결되는 미술’(현실주의)은 향후 작가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미쳐 확대 재생산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담양 국밥집 전은 여러 의미 지을 수 있는 사례가 되는데 민간 주도 자발적인 프로그램이라는 점, 이후 이뤄지는 재래시장 도심 공동화 지역 등 프로젝트에도 도움이 됐을 거라는 점이다.
담양장에서의 장전은 연 3회(2003~2005) 치렀다.

말바우시장으로의 진출은 단순한 이동이라기보다 시골장에서 도시의 장으로 이동인데 같은 사람이 모이는 장이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말바우장은 2, 4, 7, 9 열리는데 큰 장이 2, 7 장이고 담양장도 2, 7 장이다. 두 장이 겹치게 되는데 300년 이상인 담양장과 후발주자인 말바우장(장 형성이 1970~1980년대쯤)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접지인 것을 감안하면 인구 밀집 지역인 말바우장이 유리하지 않을까. 장 서는 날짜를 비켰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괜한 생각도 해본다.
말바우장에서의 전시는 그전 경험을 토대로 치르기 때문에 수월했다. 급선무는 전시회 장소 물색이었다.
가급적 국밥집이 운집된 곳을 택하게 되는데 시장 남부에 골목집들 서너군데가 행사 치르기에 마치 맞은 공간이다.
그전에 종종 드나들던 집들이라 쥔장에게 이만저만한 미술 행사가 있는데 의향을 떠보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얼른 대답을 않는 것이었다. 느긋이 들어앉아 국밥에 막걸리 시키고 술잔이 비워지기를 몇 번, 생각해보자는 것이었다.
시장은 이문을 남기는 곳이므로 여기에도 어김없이 시장논리가 적용된다고나 할까.
주인 입장에서는 번거로운 일일 수도 있지 않은가. 말바우장이 그랬다. 장 전체가 시장 보는 사람들로 넘치는데 아쉬울 게 없는 것이다.
어렵사리 한 집의 승낙이 떨어지자 덩달아 다른 집들도 가세하게 되는데 단서가 붙기를 국밥집 내 시설물을 건들지 않는 조건이었다. 오케이!였다. 기존 시설물을 건들지 않고 진행하는데 우리가 선수였으므로….

글·그림=박문종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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