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 불가능, 불운은 장애 때문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중증 뇌병변 장애를 가진 Moon이 스쿠버 다이빙을 시작했다. 장애인 스쿠버 다이빙을 지원하는 감태 씨를 만나고 나서다. 활동지원사인 나, 이 과정을 다큐멘터로 기록하는 방준식 영화감독도 합세했다. 우리 팀의 이름은 “스쿠버 다이빙 어벤저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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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혜화역 지하철 선전전을 하고 돌아가는 길. Moon이 마로니에 공원의 휠체어 그네를 타고 있다. 집에만 있다가 25살에 사회에 나온 Moon은 아직 그네 타는 걸 좋아한다. “물리적 나이는 50대지만, 사회적 나이는 20대예요. 사회적 시간은 집을 나와야 흐르더라고요. 그래서 내 안에는 20대의 나와 50대의 내가 같이 있어요.” 20대의 Moon에게 스쿠버 다이빙은 시작에 불과하다. (사진 제공-호미) |
제주 잠수풀에 입수하기까지
스쿠버 다이빙 첫 연수는 올해 2월 초, 제주 잠수풀이었다. Moon, 방 감독과 나까지 셋은 새벽부터 서두른 덕에 한 시간 반 일찍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탑승권을 발급받았지만 한 시간이 넘게 대기해야 했다. 전동휠체어 사양을 이미 확인해주었는데도, 단종된 제품이라 기종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출발이 임박해지면서, ‘못 갈 수도 있겠다’ 싶을 즈음, 그제야 항공사에서 확인이 되었다고 출발하란다. 급히 휠체어를 수하물로 보내고 보안 검색대를 향해 뛰었다.
도착한 제주는 전날 온 눈이 쌓여있고 풍랑주의보가 내려져 있었다. 40분을 기다려 장애인 콜택시(이하 장콜)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장콜 창 밖으로 펼쳐진 바다는 풍랑주의보가 무엇인지 보여주려는 듯 우람했다.
엘리베이터가 있고 현관에 턱이 없는 숙소를 예약했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현관에서 거실로 오르는 데 턱이 있었다. 신발들을 경사로 삼아 깔고서야 휠체어가 올라갈 수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잠수풀까지 가려는데 장콜이 잡히지 않았다. 안내센터에서는 외진 지역이라 언제까지 기다릴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숙소에서 잠수풀까지는 걸어서 25분. 걸어가기로 했다. 담요로 Moon의 몸을 감쌌지만 제주 바다 바람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휠체어를 쌌던 커다란 비닐 속에 다리를 넣고 싸맸다. 좀 우스꽝스러웠지만, 이틀 내내 몸이 날릴 듯한 매서운 추위 속을 다닐 수 있었던 건 비닐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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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에 풍랑주의보가 내려 매서운 바람에 눈까지 흩뿌린 날. 장애인 콜택시가 잡히지 않아 숙소에서 잠수풀장까지 25분 거리를 걸어 다녔다. 다리를 담요로 덮고 비닐로 감쌌다. (사진 제공–호미) |
잠수풀장에 들어가는 경사로에서 우리는 또 멈췄다. 경사가 40도는 되는 것 같았다.(권장기준은 5도 이내이다.) 전동휠체어로는 올라갈 수가 없었다. 마침 다른 다이버들이 있어 도움을 요청했다. 네 명이 휠체어를 밀고 Moon이 휠체어 기어를 올리자, 굉음을 내며 휠체어가 경사로를 올라서서 앞으로 튀어 나가다, 맞은 편 기둥 바로 앞에서 극적으로 멈춰섰다. Moon이 순간적으로 휠체어 전원을 끄지 않았다면 부딪혔을 상황이었다. 아찔했다. 옆에서 지켜본 나는 오랫동안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잠수풀은 5미터 깊이였다. 줌으로 두 번에 걸쳐 이론 수업을 받았고, 유튜브로 기본 장비 이름도 외웠지만 머릿속이 하얘졌다. 감태 씨에게 장비 설명과 이용법을 다시 듣고, 이퀄라이징(물 속으로 내려가며 수압이 높아지므로 귀의 압력을 맞추는 것. 코를 막고 숨을 불어넣으면 귀 안쪽 압력이 팽창하면서 압력 균형이 맞춰진다.) 연습을 했다. 그리고 탱크와 BCD(Buoyancy Control Device, 조끼처럼 입는 부력조절기)를 맸다. 레귤레이터(호흡기)를 통해 입으로 숨을 쉬는 연습. 그리고 드디어 다이빙 마스크를 쓰고 입수!
식당, 카페, 편의점, 지하철에서 늘 뒤로 밀리는 몸
이틀 맹연습을 마치고 다 같이 식사를 하러 갔다. 다행히 이틀을 오가며 Moon이 숙소 근처에 턱없는 식당을 이미 봐두었다. 실은 그 곳 뿐이었다. 제주는 눈이 많이 오고 풍랑주의보가 뜨는 날에는 문 닫는 가게가 많다. 식사를 마치고 회의를 하기 위해 카페를 찾아봤지만, 문 연 곳도 적고, 턱 없는 카페는 없었다. 할 수 없이 식당 사장님께 봉지 커피를 몇 개 얻어 숙소에서 회의를 했다.
회의를 마치고 감태 씨를 보냈다. 저녁 7시를 넘은 시간, Moon이 꼬냑 한 잔을 하자고 한다. 장콜이 집힐 리 없고, 잡히더라도 카페 문 연 곳이 없을 테고, 있더라도 그 카페에 턱이 없으란 보장이 없다. 턱이 있는 카페를 찾더라도 숙소로 돌아올 차량이 있겠는가. 내가 망설이는 동안 들려오는 방 감독의 통화 목소리.
“카페 입구에 턱이 있나요? 휠체어 이용자와 갈 거라서요.”
한참 동안 통화하더니, 방 감독이 턱도 없고 9시까지 하는 카페를 기어이 찾아냈다. 이미 Moon이 장콜을 예약한 모양, 잡혔다는 연락이 온다. 카페는 숙소에서 30분 거리, 가면 카페 문 닫을 시간이다. 방 감독이 다시 전화를 걸어 30분만 더 영업을 할 수 있는지 묻는다. 직원이 사장한테 물어보겠다며 전화가 끊기고, 다시 전화가 온다. 카페 사장이다.
“직원에게 연장근무 부탁해놨어요. 오세요.”
급히 장콜을 타고 카페를 향한다. 카페는 근사했다. 조명도 멋스럽고, 세련되고 정갈한 꾸밈새, 무엇보다 턱없이 매끄러운 입구! Moon이 말하길, 가장 맛있는 커피는 턱없는 카페 커피라던데, 이 밤에 턱도 없고, 휠체어 이용자를 위해 문을 연 카페의 꼬냑 맛이 어땠겠는가. 향기롭고 부드럽고 동시에 묵직한 목 넘김이라니! 우리는 장콜이니, 시간, 추위 따위는 잊고 꼬냑 맛과 서로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5미터 아래 세계, 물 속에서 전혀 다른 중력 속을 누비던 이야기, 깃털처럼 가볍던 몸의 감각들, 처음에는 어색했던 눈맞춤이 점점 익숙해지던 것...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30분은 쏜살같이 흘러갔고, 카페 직원은 정리를 시작했다. 물론 접수한 장콜은 오지 않고 있었다. 카페 직원은 밝게 웃으며 더 있어도 좋다고 말해주었지만, 30분이 지나자 차마 더 있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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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쿠버 다이빙 연수를 마친 날 저녁, 꼬냑 한 잔을 하기 위해 찾은 카페, MOTIFF COFFEE. 휠체어 이용자가 이용하기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장애인 콜택시가 잡히지 않아 마감 시간이 다 되어서야 도착했는데도 환대해주었고, 돌아갈 장애인 콜택시를 기다리도록 해주었다. 꼬냑 맛도 좋았다. 다시 가고 싶은 곳. (사진-호미 제공) |
밖으로 나오자 2월 초, 제주의 어둠이 매서운 바람과 함께 덮쳐왔다, 추위로 5분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도 알 수 없다. 누군가 외쳤다.
“24시 편의점으로!”
근처 편의점을 검색했다. 신나서 달려갔는데, 다행히 편의점 입구에는 턱이 없었다. 그러나, 편의점은 경사로 없는 보도블럭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럴 수가! 편의점 직원분이 나오셔서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좌절하고 있기에는 너무 추웠다. 우리는 전동휠체어를 들기로 했다. 직원도 합세했다. (전동휠체어를 드는 일은 선의라도 위험천만한 일이다. 사고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휠체어가 들리는 순간, 이용자는 통제력을 잃고 순식간에 사물로 전락하는 느낌을 받는다. 휠체어는 이용자에게 몸이기 때문이다. 사지가 번쩍 들려본 경험이 있다면 알 것이다. 그러므로 휠체어를 들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더욱이 이용자의 허락 없이 휠체어를 드는 것은 폭력이다.)
겨우 들어간 편의점. Moon이 아이스크림을 찾았다. 하지만 매대 간격이 좁아 휠체어는 아이스크림 매대까지 갈 수가 없었다. 매대 속 아이스크림들을 사진 찍어 보여주어야 했다.
Moon과 함께 길을 나서면 늘 뒤로 밀린다. 기차 오르내릴 때도 승객이 다 내리고야 리프트를 대준다. 엘리베이터 줄을 서도 양옆에서 오르는 사람들 뒤로 밀린다.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고장 날 경우는 가고자 하는 역의 반대 방향 지하철을 타고 한 정거장 뒤로 가서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장애몸은 그렇게 계속 뒤로 밀린다. 턱이 있는 곳은 줄에 설 수조차 없다. 이동이 힘드니 학교에 가기 힘들고, 교육을 받기 힘드니 직업을 가질 수 없다. 누구도 대놓고 뒤로 가라고 하거나, 차별을 선택하지 않는다. 가만히 있어도 끝없이 뒤로 밀린다.
구조라는 에스컬레이터는 장애몸을 끝없이 뒤로 보낸다. 단종된 전동휠체어를 타서, 보도블럭에 경사면이 없어서, 가게에 턱이 있어서, 엘리베이터가 수리 중이라서, 경사로가 30도라서, 장콜이 없어서, 점포의 매대가 좁아서.... 이렇듯 사소해 보이는 ‘부주의’와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은 서로 결합하고 부추기며 장애몸을 밀쳐낸다. 보이지 않는 곳, 존재가 지워지는 곳. 시민이 아닌 자리로. 그 곳에서 장애는 장애 이상의 것이 된다. 장애몸에 또 다른 장애를 덧입히며, 결핍과 무능으로, 불가능과 불운으로 만든다.
장애몸이 더는 밀리지 않게 붙드는 힘들, ‘돌봄의 시민성’
스쿠버 다이빙에서 제일 어려운 것은 부력을 조절하는 것이다. 갑자기 위로 솟구치면 감압병으로 폐 손상이 올 수 있고, 가라앉는 것 역시 사고 위험이 있다. 가라앉지도 떠오르지도 않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부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호흡과 함께 부력조절기(BCD)를 사용한다. 숨을 마시거나 BCD에 공기를 넣으면 몸이 떠오르고, 반면 숨을 내쉬거나 BCD에 공기를 빼면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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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퀄라이징(귀의 압력 균형 잡기)과 호흡을 해가며 기어코 5미터까지 내려간 Moon과 Moon에게 끊임없이 물으며 지원해주는 감태 씨, 본인도 초보인데도 늠름히 촬영하는 방준식 감독... 세 사람의 모습이 놀랍고 아름다웠던 이유는 ‘돌봄 시민성’의 압축적 장면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호미 제공) |
끝없이 뒤로 밀리는 Moon의 삶이 일상이라는 부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잡아당기는 또 다른 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스쿠버 다이빙을 하고 싶다는 장애인 친구와 놀기 위해 스쿠버 다이빙을 시작하고, 외부의 어떤 지원도 없이 6년째 장애인 스쿠버 다이빙을 지속해온 감태 씨, 이 다큐를 찍기 위해 달려온 방준식 감독, 늦은 시간에도 카페 문을 열고 환대한 카페 사장과 직원, 편의점이 경사로 없는 보도블럭 위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했던 편의점 직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나타나 함께 휠체어를 들어주었던 손길들.
이 손길들은 선의나 시혜가 아니라 보편적 윤리이며, 시민성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기존의 ‘시민성’-생산과 노동, 대의정치 참여로 좁게 정의되어온 시민성-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인간의 취약성과 의존성, 상호관계성이 누락되었던 것이다. 페미니즘 특히, 돌봄 윤리 연구는 인간이 다른 인간과 비인간 물질에 의존하고 관계 맺지 않으면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다는 것, 그러므로 시민성의 핵심에 서로를 존재하게 하고 사회를 지탱하는 ‘관계성’과 ‘돌봄의 윤리’가 있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지적해왔다. 이를 ‘돌봄의 시민성’이라고 한다. Moon들의 삶이 더이상 뒤로 밀리지 않도록 붙들수 있었던 것은 ‘돌봄의 시민성’의 힘이었다.
제주 잠수풀, 5미터 아래의 물 속에서 부력을 유지하기 위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분투하는 Moon, Moon에게 괜찮은지 끊임없이 신호하며 한 호흡, 한 호흡을 기다려주던 감태 씨, 처음이라 흔들리면서도 Moon의 다이빙 전 과정을 찍어낸 방 감독.... 세 사람의 모습이 놀랍고 아름다웠던 이유는 ‘돌봄 시민성’의 압축적 장면이기 때문일 것이다.
제주 2박 3일의 연수 이후에도 우리는 서울로, 용인으로 연수를 이어가고 있다. 용인 잠수풀에서는 15미터 아래까지 내려갔다. 4월이면 제주 바다로 나간다.
우리의 이야기는 영화 〈제주 빌덜은 바당 소곱에도 뜨메〉(제주 별들은 바다 속에도 뜨네)로 만들어질 것이다. 영화 제작을 위한 펀딩이 진행되고 있다. Moon의 다이빙 장면이 담긴 예고편도 볼 수 있다. 영화 엔딩 크레딧에 오를 긴 이름들의 행진, 누구도 뒤로 밀쳐지지 않게 서로를 붙들어 매며, ’다이빙을 하고 싶다‘는 동료 시민의 소원을 가능하게 해주는 ‘돌봄 시민’들의 다정한 행진을 기다린다.
-카카오같이가치 펀딩
-영화 예고편
[필자 소개] 호미. 장애활동지원사이며 동화 집필 노동자. 전국귀농운동본부 ‘귀농통문’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장애활동서비스 이용인’ Moon을 돌보고 Moon으로부터 돌봄을 받으며 하루하루 연명합니다. 일하고 사랑하며, 투쟁하고 놀며 새로운 몸으로 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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